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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일 사설 '대통령은 사실을 왜곡(歪曲)하고 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은 31일 KBS 회견에서 “2000년쯤까지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한나라당 정부들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이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고 있다. 지금 반대하는 일부 신문들도 그때는 전작권을 빨리 환수해야 한다고 했다가 지금 와서 뒤집는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은 작전 명령이나 작전 계획 같은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권한이다. 현재 우리 군에 관한 작통권은 ‘데프콘(방어 준비 태세) 4’인 평시에는 우리 합참의장이, 데프콘 3으로 안보 위기 수준이 높아지면 한미연합사령관이 각각 갖게 돼 있다.
과거 정부들이 ‘2000년 이전에 전작권을 단독 행사한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은 사실이다. 2000년쯤에 북한의 군사 위협과 우리 군의 능력을 고려해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이 사라졌다는 여건이 갖춰지면 전작권을 찾아오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북한 핵 개발, 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반도 안보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판단하고 전작권 단독 행사 추진을 중단했다. 김대중 정부 때 재임했던 황원탁 전 외교안보수석은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그 바탕인 한·미동맹에 언짢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전작권 문제를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평시 작통권 단독 행사가 이뤄진 1994년 12월 1일자 사설에서 ‘되도록 빨리 전시 작통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작전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국민 정서만 내세워 단김에 모두 달성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전시 작통권까지 수행할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대통령은 마치 야당과 언론이 과거엔 ‘여건과 관계없이 2000년 시한을 정해 전작권 단독 행사를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이제 와서 반대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해 국민을 속이고 있다.
대통령은 “2020년까지의 국방예산 621조원은 전작권을 환수하지 않더라도 다 들어가게 돼 있는 것이다. 전작권 환수와 이 비용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다. 국방장관은 지난 6월 국회에서 “F 15기를 겨우 40대 들여오고 조기경보체계, 이지스체계도 없는데 어떻게 전작권을 찾아온다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5년쯤이면 어느 정도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방장관은 전작권 단독 행사를 위해선 F 15기 20대 추가 도입(약 3조원), 이지스 구축함 3척(3조6000억원), 공중조기경보통제기 4대(1조6000억원) 등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예를 든 것이고, 이 첨단무기 구입 예산은 모두 621조원의 국방예산에 포함돼 있다.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는 자주 국방의 핵심”이라고 말해 왔고, 국방부는 이런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621조원을 ‘자주 국방예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와 관계된 국방예산은 한 푼도 없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책임한 말이다. 전작권을 단독 행사하면 한미연합사가 해체된다. 그동안 나라 안보를 지탱해 왔던 한·미 연합 전력을 우리 군의 독자적 군사력으로 대체하겠다면서 국방예산을 확충하지 않는다면 나라를 보위할 대통령의 책임을 저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한·미관계가 문제가 ‘많다, 많다’하는데 내가 부시 대통령을 만나보니까 만날 때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다”라고 했다. 나라 사이에 심각한 이견이 있어도 공석에선 아무 문제도 없는 척하는 건 외교의 ABC에 해당하는 상식이다. 실무 외교관 사이에서도 그럴진대 정상회담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상대 대통령이 “양국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 정권 사람들에게 좌파 역사관을 심어준 브루스 커밍스 미 교수가 “한·미동맹은 1950년대 이래 최악이다. 워싱턴에는 동맹 악화의 모든 책임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는 견해가 민주·공화 할 것 없이 퍼져 있다”고 하는 게 한·미관계의 현주소다.
대통령은 “주가가 취임할 때보다 두 배 이상 올라가 있으니 ‘경제는 정상이다’고 말할 수 있다. 물가, 수출, 외환보유고라든지 여러 경제지표, 성장률이 아주 좋거나 또는 정상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 말을 들으면서 국민들은 ‘어느 나라 대통령이 한 말’인지 헷갈렸을 것이다. 앞으로의 경기 추세를 보여주는 경기선행지수가 6개월 내리 하락세이고, 7월 생산과 소비가 모두 6월보다 줄었다. 경제부총리는 최근 내년 경제성장률이 4%대 중반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회복 기미를 보이던 경제가 1년도 못 버티고 다시 꺾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또 다시 불경기의 찬바람에 떨 생각에 가슴이 내려앉는데 대통령은 ‘경제는 정상’이라고 태평이다.
전작권을 서둘러 단독 행사하면 나라 안보가 위험해지는데 대통령은 걱정할 것 없다고 하고, 한·미관계는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는데 대통령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고, 국민은 먹고 살기가 힘든데 대통령은 경제는 정상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데서 이 나라의 불행이 비롯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