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경제초점'란에 손성원 LA한미은행장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주 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다. 늦은 오후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가는데 갑자기 젊은 청년 2~3명이 나타나 플래카드를 펼치며 이렇게 소리쳤다. “미국과의 FTA 협상에 반대한다!” 청년들은 FTA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지하철 승객을 상대로 FTA 체결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청년들에게 “나는 자유무역에 찬성하니 사인을 할 수가 없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20대 대학생풍의 여성은 서명서를 자기 앞으로 당겨 서명을 하며 “전, 미국을 도와주는 일이라면 뭐든지 반대해요”라고 했다.

    그 젊은 여성의 반응에 처음엔 충격을, 조금 후엔 막막함을 느꼈다. FTA에 반대하는 이유가 경제적 논리가 아니라 미국에 대한 증오 때문이라니. 나는 3년 전 미국 CBS에서 방영된 한 서울 시민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방송기자가 부시 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에 대해 묻자 그 시민은 “부시는 나쁘고, 김정일은 좋다”고 말했었다. 자유무역. 이것은 경제 규모가 큰 나라와 할수록 한국에 좋은 일이다. 수십년 전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의 1인당 소득은 100달러가 채 못됐다.

    그런 한국을 10대 경제 대국으로 끌어올린 데에는 뜨거운 교육열과 근면 성실한 국민성이 한 몫을 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고속 성장의 핵심 요소는 바로 ‘무역’이었다. 한국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수천억달러의 외화자금을 쌓아 올릴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기업들의 수출이 파괴력 있는 엔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FTA 반대론자의 주장대로 정말 자유무역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질까? 어떤 거래든 승자와 패자가 있게 마련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사이에 체결됐을 때 많은 미국 농민들이 멕시코산 농산물 때문에 다 죽게 될 것이라고 아우성쳤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자국 농민들에게 특수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교육을 시키고 보조금도 지급했다. 결과적으로 그들 대부분은 고품질의 농산물을 재배하게 돼 훨씬 비싼 값으로 과일과 야채를 팔았다. 자유무역 협정 이전보다 더 잘살게 된 셈이다.
    경제학에서의 자유무역은 대체로 참가자 대부분을 더 부자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물론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 해결책은 자유무역으로 인해 생기는 부를 거둬 이들에게 좀 나눠주면 된다.

    그런데 한국은 자유무역이라는 글로벌 흐름에서 비켜 나와 홀로 떨어지려고 한다. 절대 그래선 안 된다. 이것은 진심이다.

    한국은 칠레와 FTA를 맺고 있다. 칠레와 FTA 협정을 맺기 전 칠레에서는 한국 자동차가 높은 가격 때문에 잘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국 자동차들이 남미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며 수익을 한국으로 끌어가고 있다.

    점점 불어나는 세계 번영은 자유무역협정에 의한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이 무역에 덕을 보며 수십년 전보다 더 잘살게 됐다. 이런 속담이 있다. “무역은 교류지, 원조는 아니다.” 원조는 써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교류는 구성원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미국은 현재 점점 더 많은 나라와 자유무역 협정을 맺고 있다. 만약 한국이 여기서 미국과 무역 협정을 거절한다면 세계 트렌드에 뒤처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조만간 일본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사인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이 과연 미국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와 경쟁이나 할 수 있을까? 한국 수출업자들은 관세 장벽에 묶여 아무것도 못할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한국인들이여, 진정 직장을 잃을 준비가 됐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