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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에 중앙대 박철화 교수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내 어머니는 과묵한 분이다.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아주 안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놀랍도록 조리 정연한 발언을 하신다. 초등학교 교육만 받은 분이 어떻게 저런 말씀을 다 하실까 싶어 놀랄 정도다. 물론 그 경우 어머니의 말은 책에서 얻은 지식이 아니다. 삶의 원칙, 세상 살이의 지혜 같은 것이다. 가난한 집 10남매의 맏이에게 시집와 말썽 없이 집안을 꾸려온 힘은 어머니의 그 과묵한 지혜에서 나왔다.
어머니의 말씀 가운데 빠지지 않는 하나는 세 치 혀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쓸 데 없는 말은 화를 부르니,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라. 꼭 해야겠거든 따듯하게 말해라. 그것이 말 많고 탈 많은 장손집 대가족을 조용히 이끌어온 어머니의 원칙이다. 세상일에 휘말려 혼란스러워 할 때마다 내게 떠오르는 것 역시 그 원칙이다.
지난 13일 대통령이 몇몇 일간지 논설위원들과의 모임에서 임기 중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꼽아보라고 했단다. 그 말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나는 어머니의 원칙이 생각났다. 대통령의 잘못 가운데 분명한 한 가지는 말을 너무 많이, 그것도 험하게 했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대통령은 준비된 후보가 아니었다. 잃을 게 없었던 그는 자신의 입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돌출 발언을 해댔다. 그런데 정치적 주류를 거스른 그의 감성적 발언이 지지 세력에 신선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고무된 말은 갈수록 수위를 높였고, 결국은 그 덕분에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한 개인으로 보아서는 축복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통령이 되고서도 그 말은 멈추지 않았다. 국민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 말 안에 한 정파의 우두머리는 있었으되, 온 국민의 대표자의 모습은 들어 있지 않았다. 스스로 국민 전체의 지도자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러니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국민 감정에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정권은 사회를 둘로 갈라놓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등등. 그리고 앞에다가 비도덕의 꼬리표를 붙였다. 수적으로는 당연히 많은 뒤의 다수에게 앞의 소수에 대한 미움이라는 씨앗까지 뿌렸다. 공동체의 통합에 힘써야 할 지도자의 언어가 더 거칠고 험악해지면서 분열과 갈등을 키운 것이다. 그게 과연 대통령에게 걸맞은 도덕일까?
이렇다보니 그 밑의 사람들도 흉내를 낸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상대로 막말을 일삼는 총리와 장관들, 국민은 무시하고 언론사를 상대로 소모성 정쟁을 벌이고 있는 청와대의 참모들이 그렇다. 얼마 전 참모 출신의 교육부총리가 불명예 퇴진을 했다. 평소 그가 신중한 언행을 보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여론의 뭇매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요 며칠은 “배를 째드리겠다”는 말까지 흘러나온다. 그 말을 정말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억울해도 할 수 없다. 오죽하면 그럴까.
제일 위험한 말은 ‘자주’다. 누가 자주적 삶을 원치 않겠는가. 하지만 그 말을 가장 열심히 쓰는 주인공은 기가 막히게도 늘 다른 나라에 도움을 구걸하는 북한이다. 그들의 자주야말로 주민들을 굶주림에 구속시킨 핵심 요인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북한 주민들은 이 위험한 언어의 비용을 너무 비싸게 치르고 있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자주인가?
이제 미움과 오기의 수사학을 버리자. 탄핵사태 때 국민은 대통령을 지켜주었다. 지금은 그들도 다 떠났다. 겸손과 반성의 언어만이 떠나간 국민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 마음을 얻지 못하고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그러니 국민을 위해서 행동으로 보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