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6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지난날 이단을 용납하지 않는 극단주의 비타협노선이 나라를 분열시켜 왔고 불행한 역사를 낳았다. 해방 후 정부 수립 과정에서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자 했던 통합주의 노선은 좌절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노선의 역사적 가치마저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미·소 초강대국이 맞부딪치는 냉전구도 속에서 한반도의 남쪽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선택한 덕분에 불과 60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력의 나라로 성장해 자유와 번영을 함께 누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1945년 무렵에 함께 독립한 나라, 또는 1960년대의 제3세계 독립의 시대에 독립한 나라 가운데 번영과 자유를 같이 누리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라면 나라를 세우고 지키고 키워온 앞선 세대의 올바른 선택을 평가하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 다음 세계적 동서대결 상황 속에서 비록 실현 가능성은 없었지만 민족의 분단을 막아 보겠다고 몸부림쳤던 좌우합작 노선의 순수한 뜻만은 이제 평가할 때도 되었다고 하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성공한 역사는 분열과 불행의 역사로 비하하면서, 대한민국이 밟지 않았던 좌우합작의 길에만 정통성을 부여하며 매달려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인권도 중요하고 국민의 자존심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최우선을 두고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때론 남북관계에서 자존심을 덮어둘 수도 있다. 그걸 이해하는 대통령이라면 지난 60년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든든하게 지켜온 동맹관계에 있어서도 오로지 자존심 하나만을 앞세워 자주로 일방독주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부가 자주국방을 위해 620조원의 예산을 쏟아 붓는다 한들 동북아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우리의 안보를 지켜낼 수 없다. 그래서 국민 부담을 가능한 한 줄여 가면서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거두기 위해 동맹관계가 필요한 것이다. 대통령의 자주국방 노선은 ‘최대비용으로 최소효과’밖에 거둘 수 없는 국가적 낭비와 실패를 낳을 뿐이다. 

    대통령은 “동북아 지역에 새로운 통합의 질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다른 나라들의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강대국들이 동북아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한국인의 운명에 대한 자율권을 존중하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주변국을 중심으로 국제질서에 대한 구상과 비전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 힘과 주변 국제질서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그래서 그 바탕 위에서 우리 힘으로 국제질서를 어디까지 변경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설계를 한 뒤 시공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능력 범위를 비현실적으로 과대평가하거나 동북아의 상황을 오판해서 힘에 부치는 설계를 무리하게 시공에 옮기려고 하다간 나라를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뜨리게 된다.

    또 국제사회를 향해 우리 자율권을 존중하라고 설득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국제사회가 우리의 실력을 인정하고 그걸 활용하기 위해 우리의 자율권을 존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우리의 교환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입으로 자주를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강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대통령은 “우리는 늘 단결과 통합을 얘기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주장을 따르라고 요구했을 뿐 남의 말을 받아들이거나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아직도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극단주의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다만 그런 말을 하려면 단결과 통합을 얘기하면서 실제론 자신의 주장을 따르라고 요구할 뿐 남의 말을 받아들이거나 타협하려 하지 않았던 지난 3년 반 동안의 대통령 자신의 모습을 국민 앞에 먼저 고백하고 ‘이제 다 같이 달라집시다’고 권유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반성하는 거울로 삼아야 할 말을 태연하게 국민을 향해 던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먼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그 다음 대한민국이 현재 서 있는 위치를 바로 판단하고, 그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의 안보에 대한 선후가 뒤바뀐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나라가 다시 전진의 발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