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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문창극 주필이 쓴 '표류는 막아야 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크고 튼튼한 배로 비유하면서 배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다음 선장이 눈에 안 띈다고 배를 버려서야 되겠느냐며 당을 고수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라는 더 큰 배의 선장을 맡고 있다. 당도 걱정을 해야겠지만 대한민국호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선장이 챙겨야 한다.
대한민국호는 노 대통령이 선장이 된 후 3년반을 항해해 왔다. 국민은 그가 번영과 안전의 항구로 이 배를 몰아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 와서 배의 위치를 내보니 그 항구와는 동떨어진 바다를 헤매고 있다. 그동안 몇 차례 선거를 통해 배가 잘못된 항로를 가고 있음이 확인됐다. 선거 결과만이 아니다. 선장이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이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손님이 없어 길에 늘어선 택시들, 과외비로 허리가 휘는 학부모들, 졸업을 하고도 직장을 못 구해 어깨 처진 청년들을 눈여겨보았다면 배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배라는 것은 방향을 제대로 잡고 가도 파도와 바람에 의해 항로를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배의 위치를 자주 확인해야 한다. 항로를 잘못 잡았다면 속히 뱃머리를 돌려야 한다. 남은 기간 전속력을 내면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도 있다. 항구까지는 못 들어가도 제 길로는 들어설 수 있다. 항해사들은 이를 '온 코스(On Course)'라고 한다. 그만한 시간은 남아있다.
문제는 배가 추진력까지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사람들의 입에서 '국정의 표류'를 걱정하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교육부총리가 낙마하고 법무부 장관 임명도 순탄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리라. 국민은 이미 표류를 감지하고 있다. 세금 폭탄을 맞은 사람들, 사립학교운영자들, 기업하는 사람들, 모두가 세월이 흘러가 주기만 바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배가 표류하고 있는 증거다. 배가 추진력을 잃으면 조그만 파도와 바람도 견디지 못하고 난파한다. 추진력이 있어야 파도를 가르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배를 구하려면 표류는 막아야 한다. 추진력을 살려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정권을 미워한 나머지 철저하게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 배가 너무 소중하다. 우리가 대한민국호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 왔는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선장이 밉다고 표류하는 배를 방치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인사권 얘기만 하고 있다. 마치 대통령의 인사권이 훼손돼서 국정이 표류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인사권은 부분적인 얘기다. 국민의 눈에는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간의 권력다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사회에서 국정을 운영할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 지지가 곧 국정의 추진력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마음이 떠났기 때문에 추진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추진력을 얻고자 한다면 대통령이 배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평등.자주.미움이 지금까지의 방향이었다면 이를 자유.동맹.아량으로 바꾸어 보라. 남은 항해를 위해서는 해도도 읽을 줄 모르는 선원들을 배에서 내리게 하고 유능한 항해사들을 태워야 한다. 그들로부터 배의 정확한 위치와 항해 방향을 건의받아 보라.
선장의 결심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스스로 방향을 바꿀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누구나 위기에 몰리면 마음에 여유를 잃고 강퍅해진다.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을 무조건 몰아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 대통령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보기 싫다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비판할 것은 하되 감정적인 비판이 돼서는 안 된다. 이런 위기일수록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는 노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가 실패했다는 것은 그의 임기 5년이 허송세월이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지금 한반도 주변의 파도가 예사롭지 않다. 혹시 대한민국호가 표류하다 전복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이 배를 구하기 위해서는 선장의 바른 판단도 중요하지만 배에 탄 모두의 협조도 필요하다. 배가 항구에 제대로 도착할 수 있도록, 최소한 '온 코스'가 되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문창극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