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륵(鷄肋)'이라는 고사성어를 듣고 '춘천닭갈비'를 떠올리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계륵'은 닭갈비는 먹을 것은 없으나 그래도 버리기는 아깝다는 뜻에서, 얻어도 커다란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후한서 '양수전'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위의 조조와 촉의 유비가 한중 땅을 놓고 싸울 때, 조조가 진격이냐 후퇴냐를 놓고 고민하는 대목에서 나온 말이다. 굳이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 아니라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청와대 이백만 홍보수석비서관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처한 위치가 계륵과 유사하다는 조선일보의 분석기사에 시비걸면서 "국가원수를 먹는 음식에 비유한 것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흥분했다. 조선일보의 이 보도는 현재 여당의원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분석하면서, 노 대통령과 함께 갈 수도, 또 집권여당이라는 프리미엄을 버리기에도 어려운 처지를 '계륵'이라는 고사에 빗대 설명한 것이다.

    이 비서관은 또 노 대통령에 대한 시중의 농담을 소개하면서 '지나치게 희화화된 대통령의 모습은 국가를 위해 바람직하지않다'고 지적한 동아일보의 칼럼에 대해서는 "국가원수를 '저잣거리의 안주'로 폄훼했다"고 성질을 부렸다. 그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마약'에 비유, 이 신문을 보는 국민들을 '마약중독자'로 치부할만한 극언을 쏟아냈다.

    두 언론사는 청와대로부터 '취재거부'라는 보복을 받았고, 31일 청와대의 이같은 조치를 비판하는 사설을 각각 실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청와대가 알아듣지 못한 '용어'에 대한 풀이까지 해주었다.

    수백만 국민 '마약중독자'로 만들며 언론적개심 드러낸 청와대

    조선일보는 "언론 증오는 이 정권의 '청와대 병'"이라며 "이 정권이 줄곧 조선일보에 대해 사실상 취재 거부와 함께 온갖 폭언과 압박을 일삼아 왔기에 더 달라질 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계륵'에 대한 친절한 해석을 청와대 사람들이 알기쉽도록 달아주었다. '마약의 해악성을 연상시킨다'는 이 비서관의 비난에는 "3년 반 동안 청와대 사람들이 해댄 말과 보인 행동에 이보다 더 들어맞는 표현은 없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동아일보는 "두 신문의 수백만 독자를 마약중독자로 만드는 메타포는 고품격이냐"며 "청와대가 취재협조 거부를 발표한 것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고 비난했다. 동아일보 역시 "청와대가 문제 삼은 본보 칼럼의 '약탈정부(Predatory state)'나 '도둑정치(Kleptocracy)' 같은 용어는 학술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며, 조선일보 기사의 '계륵'이라는 표현도 노 대통령과 관련해 다른 언론에서 이미 쓴 말"이라며 '설명'해주었다. 이 신문은 또 "청와대는 노 대통령에 대한 시중의 비판이 글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인 줄 알기나 하느냐"고 덧붙였다.

    포털사이트의 한 네티즌은 이번 사건을 두고 전국닭갈비음식점협회에서 영업방해로 조선일보를 고소할만한 일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침체된 경기로 죽을 맛인데 노 대통령을 닭갈비에 비유하는 바람에 이것조차 장사가 안될 판이라는 비아냥이다. 이반된 민심이 이러한데 언제까지 언론에 시비만 걸고 있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역대정권을 김치종류에 비유한 언론은 그럼…?

    지난해 역대정권을 김치종류에 비유한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인터넷을 떠돌았던 이 유머에서 박정희 정권은 보쌈김치, 전두환 정권은 깍두기, 노태우 정권은 물김치, 김영삼 정권은 파김치, 김대중 정권은 나박 김치에 비유됐다. 노무현 정권은 겉절이다. 겉절이는 '겉도는 정권'이라는 뜻과 함께, 발효나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아 엄밀히 따지면 아예 김치 축에 끼지도 못한다는 의미로 회자됐다. 이 유머도 몇 언론에 소개됐다. 청와대의 주장대로라면 한명의 국가원수도 아닌 역대정권을 모두 '음식'에 비유한 이 농담을 전한 언론은 '취재거부'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몇배는 더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할 것이다.

    '고단한 국정을 돌보느라 파김치가 됐다'는 칭찬은 고사하고, 조선일보의 지적대로 '샌드위치 처지' '찰떡궁합' 같은 표현은 또 어쩔건가. 언론이 하늘의 달은 보지않고 가리키는 손가락 끝만 보고 왈가왈부한다던 고매한(?) 현 정권의 수준이 이 정도다. 언론에 대한 적개심만 드러낸 청와대의 이번 대응은 '무식'했다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