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후보 경선 공정관리'란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할 한나라당의 새 대표가 사실상 박근혜-이명박 두 차기대선후보의 힘겨루기를 통해 선출됐다.

    "걱정하지 말라"는 강재섭 대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 후유증은 새 지도부 구성 첫날부터 시작됐고 당분간 진통은 불가피할 것이란 게 당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강재섭 후보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이재오 후보를 각각 민 것으로 알려졌다. 강 후보의 승리로 8일간의 혈투가 마무리 되자 당내에선 이번 전당대회 결과를 '박근혜의 압승'으로 분석했다.

    새 지도부가 친(親)박근혜 성향인 강재섭-강창희-전여옥 등으로 구성되자 당내에선 박 전 대표의 당 장악력은 물론 대선경선에서도 박 전 대표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박 전 대표는 대선경쟁자인 이 전 시장에게 자신의 힘을 확실히 과시했다. 무엇보다 조직싸움에서 크게 앞선 점은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에 비해 당 장악력이 더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재오 최고위원측도 "박근혜의 조직에 밀렸다"고 말한다. 이 최고위원의 경선을 도와준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의 지원을 받은 강재섭 후보가 7대 3정도로 조직에서 앞섰다"고 했다. 일단 박 전 대표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텃밭인 영남에서 확실한 우위를 선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지역기반은 영남이다. 경쟁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 역시 지역기반은 영남이고 박 전 대표의 지원사격을 받아 당선된 강 대표도 영남에 기반을 두고 있다. 때문에 당내에서는 강 대표의 승리로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과의 텃밭경쟁에서 크게 앞서나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재오 최고위원은 당의 텃밭인 영남에서 크게 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최고위원측도 영남 출신인 이방호 후보와 연대를 모색했지만 이방호 후보의 세가 약해 영남 공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수도권의 대의원 분포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영남을 잡지 못하고는 당을 장악한다는 게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므로 당의 대선 후보를 준비하는 박 전 대표의 텃밭사수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당 사정에 밝은 당직자 역시 "이번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의 실익은 영남의 주도권을 쥐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 결과가 '박 전 대표의 대선레이스에 플러스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긴 힘들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텃밭사수란 실익도 있었지만 이번 전당대회가 박 전 대표에게 이득만을 준 게임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이 전 시장의 개입으로 박 전 대표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박 전 대표가 '경선중립' 원칙을 스스로 깬 셈이 됐고 그동안 만들어 온 '클린이미지'도 상당한 손상을 입게됐다. 당장 '강 대표가 공정한 대선후보 경선 관리를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올 만큼 대선후보 경선의 불공정 시비는 이미 시작됐고 2007년 당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털어놓은 채 첫 회의부터 불참을 했다.

    당 일각에서는 분당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 관계자는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이번 전당대회가 이 전 시장에게 탈당 명분을 제공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재오 최고위원도 경선 직후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한나라당이 새로 태어나지 못하고 내부 분열을 조장하고 특정후보의 대리가 돼 당을 쪼개려 한다면 온 몸으로 싸워 새 한나라당을 건설하겠다"고 소리쳤다.

    또 당 지도부가 박근혜 색깔로 꾸려진 점도 장기적으로 볼 때 박 전 대표에게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박형준 의원은 "선거 막바지에 박 전 대표 측근들이 그런 방식으로 선거전략을 짠 것은 박 전 대표 개인에게도 좋지 않다.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한 당직자 역시 "지금 당장은 박 전 대표가 크게 앞선 것 같지만 오히려 친박 일색의 지도부 구성이 박 전 대표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이런 점을 고려해 한때 이재오 의원을 대표로 지원하려 했다는 뒷얘기마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