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7·11전당대회에 대해 ‘엄정 중립’을 강조하면서 침묵으로 일관해 오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에 하루 앞으로 바짝 다가온 당 대표 경선의 ‘박근혜-이명박 대리전’ 색채가 더욱 강해지는 모습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전대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온 반면 별다른 언급을 피해오던 박 전 대표였다. 그런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 쪽의 이재오 후보 지원 움직임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불쾌함을 나타냈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승민 의원은 9일 “최근 이 전 시장 쪽의 이 후보 지원 움직임을 보고 받은 박 전 대표가 심각한 반응을 보였다”며 “이런 식으로 해서 이 후보가 대표가 되면 당이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 쪽이) 향후 공천까지 거론한다는 보고에 ‘나도 공천에 개입을 안했는데 당이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며 “박 전 대표가 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행정도시법 등에 대한 염려도 밝혔다”고 했다. 이는 이재오 후보에 대한 반대 의사로도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 문제 제기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측근들이 만류했다”며 박 전 대표가 측근들에게 매일 전화로 경선 관련 보고를 받고 있으며 일부 지역당원협의회장들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등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강재섭 후보를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 의원이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을 공개한 것은 이 전 시장에 대한 견제와 함께 강 후보에 대한 측면 지원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여 이번 전대를 둘러싼 ‘박(朴)-이(李) 대리전’ 양상이 더욱 굳어지는 모습이다.

    강재섭 후보도 이날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재오 후보가 아니라 이 전 시장과 싸우고 있는 느낌”이라며 이 후보를 강하게 비난했다. 강 후보는 “이 전 시장의 대권 사조직이 전국적으로 이 후보를 응원하고 연설회장에 차량을 수십대 동원하고 있다”며 “심지어 나와 확실히 가까운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들에게까지 이 전 시장이 직접 전화를 걸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저쪽에서 먼저 대리전을 선포하니까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진영과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나를 도우려고 나서는 것이다. 솔직히 대리전 맞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이 전 시장측와 이 후보는 “이 전 시장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단 하나라도 있느냐”며 발끈하고 있다. 이 전 시장 측근인 정두언 전 의원과 조해진 전 서울시 정무보좌관은 이날 당사를 찾아 “(이 전 시장의) 경선 개입 주장은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이 후보에 대한 이 전 시장의 측면지원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정 의원은 “이 전 시장은 ‘당내 경선이 이런 식으로 가면 전대 이후에도 후유증이 심할 것’이라고 걱정한다”며 “각종 의혹 제기에 대해 이 전 시장은 기가 막혀 혀만 차고 있다”고 전했다.

    이 후보도 “대리전 주장은 한나라당을 깨부수려는 거대한 음모”라며 “이 전 시장과 싸우려면 강 후보는 원래 생각대로 대선에 나서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시장 때 선대본부장을 지냈지만 도움 하나 받은 일이 없었다”며 “전당대회를 앞두고 실무적 지원이라도 해 주겠다는 것을 ‘얼씬도 말라’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정인의 그늘에서 당 대표가 나오면 당이 제대로 되겠느냐”며 “당사자들이 부인하고 증거도 없는데 계속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나에 대한 음해이고 당을 분열시키는 거대한 음모”라고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