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발언이 행정·수사·선거에 영향 미쳐기관들이 발언을 신호로 해석하며 혼선 촉발'제왕적 대통령제' 아래 절차적 긴장 확대메시지 해석 과정서 시스템 취약성 드러나
  • ▲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수사·선거·종교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기관들의 해석을 거쳐 일종의 '정책 신호'로 작동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한국 행정 환경에서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방향성을 지닌 '정책 메시지'로 번역된다. 이 과정에서 발언의 취지를 넘어 각 기관이 이를 해석·적용하는 방식에서 절차적 긴장과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종교단체 해산 논의 확장 … 행정 절차와 헌법 가치의 충돌

    대통령실 대변인실 언론 공지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특정 종교 단체와 정치인의 불법적 연루 의혹에 대해 여야,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 윤영호 씨가 2022년 대선을 전후해 국민의힘 의원들을 지원했다는 혐의를 조사해 왔는데, 최근 윤 씨가 국민의힘 인사들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 인사도 지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나 특검팀이 여권 인사들에 대해서는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며 '편파 수사' 논란이 제기되자, 대통령이 엄정 수사를 주문한 것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통일교로 추정되는 종교단체를 겨냥해 "정교 분리 원칙을 어기고 종교재단이 조직적·체계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사례가 있다. 이는 헌법 위반 행위"라며 "일본에서는 (유사한 사례에 대해) 종교재단 해산 명령을 했다는데, 이에 대해 검토해 달라"고 했다.

    뒤이은 국무회의에서는 "그게 정당한지 아닌지는 (해산 명령을 받은 종교단체 등에서) 소송하면 취소하든지 말든지 하면 된다"라며 "일본은 해산을 법원에 청구해서 법원이 판단하는데 우리는 주무관청이 결정하는 것이냐"고 재차 언급했다.

    일본은 소관부처가 직접 해산을 명령할 수 없고, 문부과학성이 1년 이상 '질문권'을 행사해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법원에 해산 청구를 하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소관 부처의 법인설립허가 취소가 즉시 효력을 갖기 때문에, 절차적 무게와 권한 배분 방식에서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판례와 법적 기준을 고려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대통령 발언 이후 내부적으로도 적법 절차와 기본권 보호 원칙을 어떻게 조화할지 부담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역 없는 수사" 지시의 역설 … 시스템 불신만 키운 '하명성 메시지'

    '인천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은 대통령의 메시지가 수사기관 내부에서 어떤 신호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지난 10월 해당 사건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하며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인 백해룡 경정 파견을 요청했다.

    백해룡 경정은 2024년 8월 20일 국회 청문회에서 김찬수 당시 영등포경찰서장이 "용산에서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조병노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 "세관 얘기 안 나오게 해 달라. 경찰도 국가기관이고 관세청도 국가 기관인데 경찰이 관세청을 수사하면 국가기관끼리 싸우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국정 운영에 부담된다"고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서장은 해당 청문회에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고, 조병노 전 부장은 한 언론에 "사실이 아닌 일방적인 내용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많은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언론 보도가 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읍소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검·경 합동수사단은 전날 외압 의혹을 모두 무혐의 처분하며 "대통령실 개입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사건은 혐의 입증 없이 종결됐지만,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원론적인 수준이더라도 기관 내부에서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에 대해 한 전직 고위 관료는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면 시스템이 자체 검증보다 '코드 맞추기'로 흐를 수 있다"며 수사 신뢰도 저하를 우려했다.

    ◆SNS 언급의 선거 파장 … 정치적 중립 의무와의 경계 재부상

    지난 8일 이 대통령은 X(구 트위터)에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구정 만족도 기사를 공유하며 "일을 잘하기는 잘하나 보다. 제가 성남시장 시절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명함도 못 내밀 듯" 이라고 적었다.

    행정 성과에 대한 격려라는 해석과 함께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특정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유리한 신호를 주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제기됐다.

    공직선거법 제9조·85조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및 선거운동 금지를 규정한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대통령의 정당 지지 발언에 대해 "대통령도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진다"고 판단한 근거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대통령 메시지가 제도 내부에서 갖는 영향력과 공직자 중립 의무의 경계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부각됐다는 점은 공통된 분석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과거 당 대표 시절, 김민석 총리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서 실제로 지도부 선거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친 전례가 있다"며 "대통령은 중립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만큼 발언이나 메시지를 낼 때 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메시지의 신호 효과 …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과제

    정권을 불문하고 대통령의 발언은 제도·법령을 즉시 바꾸지 않아도 관료 조직·수사기관·정치권의 행동을 조정하는 신호로 작동한다. 제도적 완충 장치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의 언어는 절차와 규범보다 앞서 작동하며 시스템 안정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전직 고위 관료는 "대통령이 특정 사안을 언급하는 순간 각 부처는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해 움직인다"며 "이 과정에서 절차가 축약되거나 행정적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사례는 대통령 메시지가 기관별 해석을 거치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증폭되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향후 국정 운영에서는 법과 행정 절차가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와 안정성을 우선 고려해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