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이 뉴라이트닷컴(www.new-right.com) '홍진표의 이슈파일'란에 올린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근거제시와 논리적 정합성은 논쟁의 생명이다

    필자의 ‘사상통제, 반공주의의 시대는 끝났다(6.25/뉴라이트닷컴)’는 글에 대해 이상돈 교수(중앙대 법대)가 ‘반공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라는 제목의 비교적 긴 반론을 ‘독립신문’에 게재하였는데, 좀 더 차분하고 진전된 토론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반갑게 생각한다.

    최근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도 ‘조갑제닷컴’ 등에 북한체제의 성격,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죄의 평가 등 구체적인 논점을 제기하여 생산적인 토론의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낙인찍기가 아닌 이런 구체적인 문제제기는 우리의 인식을 풍부하게 하고 공유점을 만들어 줄 것으로 확신한다.

    다만 홍 소장이 제기한 주제는 단문 위주의 인터넷공간에서는 충분히 다루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향후 적절한 지면을 통해 논의를 전개해 갈 예정이며, 여기서는 논의가 번지지 않도록 이 교수의 반론에 대한 몇 가지 의견만을 개진해 보겠다.

    1.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

    이 교수는 사회주의적 정책이나 주장은 고교 평준화, 국민건강보험 등 박정희 대통령도 실시한 것처럼 공론의 장에서 ‘토론’할 수 있다고 언급하여 이 대목에 관한한 사실상 의견차이가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교수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분명히 구분’된다며 사회주의는 정책적 차원이지만 공산주의는 ‘폭력혁명을 통해 계급독재를 이룩하겠다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공산주의 허용’논의는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것은 오해라고 생각된다. 안병직 교수가 이 교수식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구분법에 의거하여 공산주의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동의어로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상적으로는 공산주의까지도 논의가 허용되는 다양한 사회를 추구한다”는 안 교수의 언급은 헌법질서와 의회주의 존중이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며, 사상의 자유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제기한 만큼 굳이 ‘의회주의 존중’이라는 주석을 달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뉴라이트는 자유주의연대의 국가보안법 성명(2004년 12월 15일)에 나타나듯이 '사상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를 엄격히 구분한다. 당연히 폭력을 통해 기존 헌법질서를 전복시키려는 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반대하고 개정을 주장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교수는 공산주의 사상의 논의를 허용하는 것과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을 용인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교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엄밀히 구분하였는데, 이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마르크스는 혁명적(또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개량주의적 사회주의와 구별하기 위하여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쓴 적도 있는데, 레닌이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는 사회주의, 높은 단계는 공산주의’라고 정의한 이후 대체적으로 이 개념이 통용되어왔다.

    한편 의회민주주의를 인정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을 포기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의 서구 공산당을 유로코뮤니즘(Eurocommunism)이라고 부르듯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가르는 구분점이 이 교수의 주장처럼 폭력혁명과 계급독재의 추구여부는 아니다. 전형적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였던 소련과 동구의 붕괴를 이 교수의 기준에 따르면 ‘공산주의 붕괴’라고 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주로 ‘사회주의 붕괴’라고 말하고 있다.

    덧붙여 안 교수의 ‘공산주의 논의 허용’을 이 교수는 자꾸만 ‘공산주의 포용’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본래의 발언 취지와 차이가 있는 만큼 본인의 희망적 해석이 아닌 액면 그대로의 인용을 부탁하고 싶다.

    2. 다시 반공주의에 대해

    이 교수가 공산주의라는 용어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오해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하튼 뉴라이트가 ‘별안간’ 반공주의 비판을 제기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자유주의연대 출범 직후인 지난해 초 조선일보 칼럼에 반공주의 비판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교수는 ‘오늘날 도대체 누가 반공을 내세워서 기본권을 유린하고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단 말인가’라며 반공주의 비판이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토로한다. 이 교수 말대로 적어도 정부차원에서는 그렇다. 강정구 교수가 유죄판결을 받은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죄가 존재하지만 거의 사문화되었고, 무엇보다도 재판부가 여간해서 유죄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뉴라이트는 제도적 차원 보다는 우파진영 일각에 남아 있는 관성적 반공주의 사고를 문제 삼는 것이다. 근래 뉴라이트, 한나라당 소장파, 중도적 지식인 등 조금이라도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너 좌파지’라는 흑백논리를 들이대 공격하는 현실에서 그 끈질긴 반공주의적 관성은 발견된다.

    이런 반공주의 관성은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는데 어려움을 준다는 것은 둘째 치고, 우파내의 자유로운 사고 전개와 토론을 제약한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폐해다. 몇 가지 공식을 암송하고 반복하는 사람은 항상 투철한 우파가 되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로 되는 그런 분위기에서 그 누가 새로운 모색을 위한 사상적 분발을 하겠는가?

    3. 국가보안법의 이해

    이 교수가 이번 글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 길게 언급했기 때문에, 약간 이해를 달리하는 대목 몇 가지만 지적해본다. 우선 우리의 국가보안법은 한국은 물론 어떤 국가에나 존재하는 내란죄, 외환죄(外患罪-국외세력과 공모하는 반역행위)와 달리 북한을 겨냥하여 만든 특별법이다. 따라서 미국의 내란죄나 외환죄에 해당하는 법률과 국가보안법의 직접 비교는 적절하지 않으며,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법은 분단국가인 대만과 서독 정도에 존재했었다.

    국가보안법의 이런 특성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형법상의 내란죄와 외환죄에 흡수시키자는 집권여당의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 즉 북한정권을 외환죄의 대상에 넣자니 헌법상 북한은 외국이 될 수 없고, 내란죄로 규제하자니 이미 국가체계를 갖추고 유엔에 가입한 북한을 내란집단으로 볼 수 있는가를 놓고 법리논쟁이 불가피해진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상 ‘반 국가단체’의 ‘정부 참칭(僭稱)’ 규정을 적용하여 북한정권의 간첩남파 등 공작활동에 대처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또한 국가보안법은 91년 5월 노태우 정부하에서 사회주의 체제 붕괴라는 현실변화를 반영하여 국외공산계열과 관련된 찬양․고무, 회합․통신 등을 처벌대상에서 제외하는 중대한 변화를 겪었다. 그 결과 현행 국가보안법은 북한정권과 직접 관련이 없고, 폭력혁명을 추구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적 주장 자체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 교수가 ‘안 교수의 꿈(공산주의 논의 허용)이 이루어지려면 국가보안법부터 폐지해야’라고 말한 것은 현행 법집행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사실 강령에서 ‘사적 소유의 폐지’와 같이 명백히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민노당이 이미 의회에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좌파적 주장을 규제해야 한다는 자체가 탁상공론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4. 과연 ‘라이트’인가?

    이 교수는 류근일 선생과 필자의 대담집 <지성과 반지성>의 “우리는 좌, 우를 떠나서 합리와 이성 그리고 현실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려고 했습니다. 뉴라이트라는 이름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 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를 인용하여 ‘우파가 아님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뉴라이트는 새로움 또는 참신함을 뜻하는 ‘NEW’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듯이, 20세기식의 전통적인 좌우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자유주의와 세계주의(탈민족주의)를 우파적 가치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해의 부족이든, 의도적 무시든 간에 이런 문제의식 보다는 ‘이미 흘러간 좌우구도를 복원시키려 한다’는 시각도 있기 때문에 이런 언급을 한 것이다.

    물론 이 교수에게 이런 발언의 취지를 인정하라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어차피 이해나 평가는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은 사후(死後)에 비로소 정확한 평가가 가능 하다는 말도 있듯이, 몇 마디 말을 가지고 사상검증을 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실천과 장기적인 행보를 지켜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이 교수가 필자의 말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면, 왜 이 교수 본인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미래한국신문의 2004년 9월 4일자에 실린 신지호 대표의 인터뷰 "수구좌파, 수구우파 극복한 혁신우파 나와야"는 인용하지 않는가하는 의문이 든다. 비록 기존 우파는 아니지만, 우파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지 않은가?

    제3의 길을 주창했던 사상전향자인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바지 입은 대처’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대체로 우파정책을 펴왔다. 반면 우파인 보수당은 이라크 파병까지 딴지를 걸며 그저 무조건 반대만 일삼는 야당으로 전락하였다. 개인적으로 제3의 길이라는 표현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좌파들을 설득해 나가기 위한 접근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그 표현이 모호하다며 선명성 논쟁을 벌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끝으로 사실관계 하나만 바로잡고 글을 맺고자 한다. 이 교수가 안병직 교수 등을 최근에 전향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안 교수는 이미 80년대 중반에 마르크스주의를 버렸고,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90년대 초에 공개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운동권을 떠났고,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90년대 초 김일성 면담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여 95년 말지 4월호에서 공개적으로 입장전환을 밝혔고, 필자는 좀 모자라는 사람이라 96년에야 생각이 바뀌어 당시 말지에 북한체제와의 결별을 주장하는 글을 쓰고 운동권을 정리하였다. 결국 길게는 20년 최소한 10년 이전에 마르크스주의 및 북한체제와 결별한 것이다.

    이상돈 교수와 홍관희 소장과는 달리 토론이 불가능한 선명성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데 대체로 정치적 배경을 지니는 것으로 추측된다. 과거 운동권 분파투쟁에서도 보다 과격한 주장을 통해 상대를 기회주의나 개량주의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었다. 한 예로 모택동의 문화혁명은 류사오치(劉少奇)를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추종파)로 몰아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양영태 대령연합회 사무총장이 또 독립신문에 "안병직계 뉴라이트재단에 고함"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반공을 문제삼는 뉴라이트는 친공, 용공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반공과 상대편을 뚜렷한 근거도 없이 빨갱이로 낙인찍는 반공주의는 분명 다르다고 지난 번 글에 자세히도 썼건만, '소 귀에 경 읽기'는 아닌지 답답함이 엄습해 온다. 과거 좌파전력을 문제삼아 뉴라이트를 뉴맑시스트라고 비난하는 그가 왜 내놓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지지하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홍 소장의 발언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뉴라이트와 정통 보수는 현재 다 같이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에 대해 투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적 위기상황을 감안할 때 충분한 토론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잘못된 것을 고치고 올바른 의견을 중심으로 상호 이해와 협력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