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란에 이 신문 송대근 논설위원이 쓴 '고장 난 대한민국'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주 독일 월드컵 한국과 토고의 경기가 있던 날, 세상에 축구밖에 없는 것 같았던 그날,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 법당에선 혼령(魂靈)을 극락세계로 가게 한다는 천도(薦度)법회가 열렸다. 유족들은 오열했다. 월드컵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은 ‘바깥세상’ 사람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음력 오월 열여드레, 그날은 4년 전 서해교전에서 북한군의 총탄에 숨진 해군 장병 6명의 기일(忌日)이었다. 포탄 파편에 왼손 손가락이 다 날아가자 오른손 한 손으로 수없이 탄창을 갈아 끼우고, 그러다 방아쇠를 쥔 채 숨져간 그들이다. 20mm포 사수(射手)는 끝까지 포탑을 지키다 불길에 휩싸였다. 우리 해군 제2함대 357함 장병들은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기습공격을 해 온 북한 경비정과 맞서 그렇게 싸웠다. 양력으론 6월 29일이었지만 순국(殉國) 장병의 부모들은 음력 기일에 한자리에 모여 남몰래 눈물을 훔친다.

    4년 전 그날도 대한민국은 월드컵에 빠져 정신이 없었다.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이 열린 날이었다. 서해에선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오직 월드컵 얘기뿐이었다. 정부의 태도는 더 석연치 않았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북한의 선제공격이었음에도 단호한 대응은커녕 우발적 사건으로 얼버무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대놓고 따지고 들었다가 혹시 햇볕정책에 금이라도 가면 어떡하나, 오직 그것이 걱정인 듯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무총리 국방장관 합참의장도 장병들의 영결식을 외면했다.

    그 후의 일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군인의 죽음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그 희생을 왜 잊어서는 안 되는지, 이런 뜻을 담아 추모행사 때마다 유족들에게 위로 편지를 보내 온 건 우리 군(軍) 책임자가 아니라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천도법회가 있던 날, 유족 한 분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장 난 시계’ 같다. 톱니바퀴가 헝클어져 시침(時針) 분침(分針) 초침(秒針)이 제멋대로 돌아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 가지만 보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민족끼리’로 포장한 6·15남북공동선언에 매달려 있을 때 북한은 뭘 하고 있었는가. 햇볕을 받아 옷을 벗기는커녕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 북한의 ‘미사일 벼랑 끝 전술’에 세계가 숨죽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그런데 남쪽의 일부 세력과 북은 지난주 광주에서 6·15민족통일대축전이라며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힘을 합쳐 미군을 몰아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미사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듯했다. 이적(利敵)단체가 주도한 반(反)국가적 친북(親北) 행사에 정부는 국민의 혈세(血稅)를 펑펑 썼다.

    “그럼 4년 전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친 건가요?” 서해교전의 영령(英靈)들이 대한민국을 향해 묻고 있는 것만 같다. 6월은 명색이 ‘호국(護國)의 달’이다. 나라가 온전치 못하면 월드컵도 없다. 한 번만이라도 이 이름들을 되새겨 보자.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