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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과 그 후 6년

입력 2006-06-15 09:48 수정 2009-05-18 14:50

중앙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란에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서독 유학 시절, 나는 분단국가의 비애를 뼛속 깊이 체험했다. 역사학 박사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료다. 그런데 1945년 베를린의 분할에서 중심가가 동독으로 귀속됐다. 주요한 기록보관소, 도서관, 박물관이 동독에 편입됐다. 45년 이전의 독일사를 주제로 삼았던지라, 나는 동독여행 문제로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다. 분단국가에서 태어나 분단국가로 유학 온 내 숙명을 원망했다. 더구나 공산국가에서는 복사가 허용되지 않다 보니, 해결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동독은 갈 수 없었고, 나는 박사 학위를 받는 날 새벽까지 악몽을 꾸었다. 늘 두려웠던 지도교수가 꿈에 나타나 '동독의 사료를 보지 않았으니 학위를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게 국민 개개인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간에 분단은 우리 모두에게 상처이자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늘은 6.15공동선언 6주년이 되는 날이다. 14일부터 200여 명의 북측 대표단과 150명의 해외대표단이 참가한 가운데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의 주관 아래 나흘간 6.15공동선언 6주년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기구는 어려운 내부 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보수와 진보, 종단, 부문운동을 망라해 구성된 민간단체이고,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서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것만 해도 우리 통일운동의 역사에서 큰 진전이라 말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남북 관계의 현주소와 향방을 냉철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 6년간 우리는 힘겹게 달려왔다. '퍼주기 논쟁'도 일각에서 제기됐으나, 다수의 국민은 이제 남북은 평화 공존 체제를 실현하기 위한 긴 도정에 돌입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통일운동의 입장에서는 그간 기울여온 정성이나 노력에 비하면, 남북 관계의 진전 속도가 너무 더딘 것이 아니냐는 조바심이 있다.

미국은 북·미 관계의 진행 속도에 비해, 남북 관계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기에 미국이 제기한 북한 위폐 문제를 속도조절용이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지난 6년 사이에 북한은 이미 돌아설 수 없는 '개방의 길'로 들어섰고, 6.15공동선언 이전에 비하면 남북 교류도 현저히 늘어났다. 북한과의 접촉이나 협상 과정에서 자주 불만이 제기되지만, 크게 보아 남북 관계는 천천히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이념적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서 있는 집단들에 의해 야기되는 격앙된 감정들이다. 여전히 일부 국민은 북의 위협과 남한 내의 급진세력을 염려하지만, 지난 20여 년 사이에 한국의 시민사회는 놀랄 만큼 발전했다. 국민은 이제 많은 정보를 접하고, 사회적 토론이 활발해지고, 국제적 감각을 가지게 됐다. 국민 다수는 미군철수에 반대하고, 한·미 동맹도 긴밀하게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제 국민은 최소한 과거처럼 미국이 원하는 조건을 모두 수용하기보다는, 이전비용이나 협상의 투명성, 전략적 유연성 및 동아시아 분쟁 개입 문제와 관련해 알 것은 알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정부건 시민사회운동이건 이런 변화된 정치적 환경이나 국민의식을 고려해 남북 관계에 대해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극적인 발언이나 왜곡된 정보는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중국과 북한의 경제협력은 빨라지는 데 비해, 남북 간의 경제협력은 더딘 편이다. 북한 해역에 중국어선이 대거 진출해 어로활동을 하고, 그 수산물이 인천항에서 팔리는 현실을 개탄하는 어느 수산회사 사장님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남아도는 쌀과 보리 생산량을 생각하더라도 남북 문제를 우리 경제성장과 연계하는 방안을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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