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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8일 사설 '한나라당은 공없이 거둔 승리를 두려워하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은 5·31 지방선거에서 54%의 정당 득표율로 신기록을 세웠다. 열린우리당이 얻은 21%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이번 선거결과를 만든 원인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을 신뢰해서’라는 응답은 9.5%뿐이었다. 한나라당의 득표율 54% 중 45%에 해당하는 지지표는 대통령의 실정(失政), 여당의 무능에 따른 반사이익이란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열린우리당을 외면한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정책 실패를 꼽는다. 경기는 식어가는데, 동네가게와 동네식당은 파리를 날리는데, 일자리는 줄어가는데, 수출은 휘청거리는데, 택시기사는 아우성을 치는데, 원유가는 치솟고만 있는데, 이 정부는 모든 경제지표가 파란색이라며 있는 사람부터 없는 사람까지 모든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갈 세금 올릴 궁리만을 하고 있는 데 대해 국민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투표용지에서 집권당 후보 이름 밑에는 절대로 ○표를 찍지 않겠다고 투표소 앞에 긴 줄을 섰던 유권자의 마음과 마음이 쌓여 이번 선거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제 한나라당은 돌아봐야 한다.
집권당을 제3당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국민의 원성이 폭발한 10·29니, 8·31이니, 3·30이니 하는 부동산 대책시리즈가 국회를 통과할 때 그때 한나라당은 어디 있었는가. 이 정권이 학력(學力)만큼 공부하고 취향대로 학교를 골라갈 수 있는 ‘교육 천국’을 만들겠다는 사이비 복음을 전파할 때 그때 한나라당은 어디 있었는가. 민노총과 전교조가 국가와 국민의 현재와 미래를 인질로 잡고 이 나라를 내일이 없는 나라로 끌고 갈 때 이 정권은 그렇다 쳐도 그때 한나라당은 어디 있었는가. 그 숫자의 위세가 그렇게 무서웠는가. 이 정권이 “우리 대학에서 공부할 자격 있는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대학들의 당연한 방침을 “초동 진압하겠다”고 윽박지를 때 한나라당은 어디 있었는가.
이 정권의 대북정책이 북핵에 막히고 북의 위조지폐 제조에 걸리고 북한동포 인권탄압에 치여 돈만 쏟아붓고 곤두박질쳐 국민들이 검은 구름이 한반도 전체를 뒤덮을지 모른다고 불안해할 때 그때 한나라당은 어디 있었는가. 북 가면 진보고 북에 안 가면 수구라는 유행에 밀려 남이 장에 간다니까 한나라당도 지게지고 따라 나서지는 않았는가.
이 정권이 복지라는 간판으로 큰 정부 구호를 외치고 국민들은 그것은 구식 복지라며 작은 정부를 주장하고 맞설 때 그때 한나라당은 어디 있었는가. “복지에는 표가 많다”며 국민 세금이 줄줄 새는 이 정권의 밑빠진 복지에 한나라당도 같이 올라타지 않았는가.
이 정권이 비판신문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세계에 전례가 없는 ‘신문법’을 만들어 국회에서 처리할 때 그때 한나라당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혹시 ‘관변시민단체’의 눈치를 보고 있지 않았는가.
이런 질문들에 한나라당이 서슴없이 “나는 그때 거기서 이렇게 했었다”고 국민이 확실히 납득할 수 있게 답할 수 있을 때 한나라당의 이번 승리는 확실한 승리, 부동(不動)의 승리, 미래가 약속된 승리가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한나라당 승리’는 오직 ‘열린우리당 패배’의 반대말에 지나지 않는 불확실한 승리, 잠시 동안의 승리, 미래와 연결될 보장이 없는 승리에 불과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 시·도지사 선거 16곳 중 12곳, 시장·군수·구청장 선거 230곳 중 155곳을 휩쓸고 이들 단체장들을 견제할 지방의회까지 모두 차지하다시피했다. 따라서 모든 실패는 한나라당의 실패라는 결론이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승리와 승리 이후를 두려워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