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을 제치고 호남 맹주 자리를 차지한 5·31지방선거 결과에 고무돼 있던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지방선거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기도 전에 고건 전 국무총리가 ‘신당’ 깃발을 띄웠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이 정계개편의 중심이 되겠다”며 사기충천한 모습이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선거 기간 내내 끊이지 않았던 리더십을 둘러싼 논란을 불식시키면서 당내 장악력을 공고히 하려던 한 대표였다. 그러나 고 전 총리가 신당 창당 의사를 밝히며 정계개편의 중심축이 고건을 중심으로 한 ‘헤쳐 모여식’으로 집중되자 한 대표의 당 운영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상당수 의원들의 이탈이 불가피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 대표의 위기감은 고 전 총리가 신당 창당 의사를 밝힌 직후 고 전 총리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입장이 “민주당의 운명이 어떤 특정인에 얽매여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는 쪽으로 급속히 선회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한 대표는 당내 고 전 총리 지지자들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선거 막판 고건 지지자로 알려진 일부 의원을 향해 “당내에서 얘기하지 말고 당을 나가 당당히 입장을 밝혀라”고 쏘아붙였던 한 대표는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대표단·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연석회의’에서 “고건 신당의 타깃은 민주당”이라며 당직자들에게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건 신당’에 민주당이 흡수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내 움직임은 한 대표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모습이다. 지금 당장은 한 대표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별다른 움직임을 나타내지 않고 엎드려 있지만 고 전 총리가 신당 창당 작업을 진행하면서 민주당 의원들과 개별 접촉하게 되면 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 지지자인 한 의원측 관계자는 “지금은 동태만 살피고 있지만 다음 주 중 우리 의원이 고 전 총리를 만나 의중을 살펴볼 예정”이라며 “고건 신당이 뜨고 나면 민주당 내에서 갈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한 대표는 없어질 당을 지켜냈다는 명분으로 만족해야 한다”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호남지역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도 고 전 총리와 민주당을 따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건이 없는 민주당은 유지될 수가 없다”며 “결국 한 대표도 고건 신당이 가시화되면 같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4·15총선 당시 ‘탄핵 역풍’ 때문에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을 5·31지방선거를 통해 ‘호남 의 대표’로 끌어 올린 한 대표가 정계개편의 핵으로 등장한 ‘고건 신당 바람’에도 ‘민주당 간판’을 지켜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