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5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교통시민연합’과 ‘시민연대21’이라는 시민단체를 차례로 만들어 소장과 사무총장 자리를 꿰찬 사람이 납품 계약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해 수백만원어치의 술을 빼앗아 마시고 5000만원을 뜯어냈다가 구속 기소됐다. 이 시민단체 간부는 어느 식품회사에 대해선 “유기농산물을 쓴다고 광고해 놓고선 농약과 화학비료를 쓴 것을 방송에 제보하겠다”고 을러 6억5000만원을 요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납품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당한 회사가 실제론 납품 비리가 없는데도 시민단체를 파는 협박에 5000만원을 갖다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대목은 지금 이 나라에서 시민단체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비위를 거슬러서 덕 될 게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 사회에 그렇게 널리 진하게 번져 있는 것이다.

    전국의 시민단체는 지부를 포함해 2만개가 훨씬 넘는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첫째는 공무원들의 인·허가권을 앞세운 시비를 위한 시비로 힘들고, 둘째는 각종 사이비 시민단체들의 폭로 협박과 각종 성금 갈취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란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모여 나와 이웃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을 하는 단체다. 그러나 우리 시민단체 가운데는 특별한 시민들이 모여 특별한 일을 하고 있는 단체가 많다.

    우리 시민단체의 병리는 두 가지다. 하나는 권력과 거리를 두고 시민의 윤리로 권력을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들이 권력과 동거하는 행태다. 이 정권 들어 시민단체와 청와대, 시민단체와 각종 정부위원회를 오가며 의자를 번갈아 차지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아졌다. 권력과 시민단체 사이에 이뤄지는 이런 근친결혼으로 시민단체는 권력의 외곽 단체로 타락하고 시민단체의 권력형 부패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이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집값을 잡기 위해 시민단체를 동원하겠다고 소집 나팔을 불 정도가 돼버린 것이다. 정부 인사 개입과 청탁, 친·인척의 취직 부탁부터 거액의 찬조금까지 이들로 해서 빚어지는 부패의 유형도 다양하다. 정부는 이런 단체들에 국민 세금으로 연간 2000억원을 지원한다. 다른 하나의 병리는 이번처럼 아예 생업의 형태로 시민단체를 만들어 협박·공갈·갈취를 계속하는 생존형 부패다. 생존형 부패는 지방, 특히 공단지역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다.

    보통시민의 윤리와 시민 의식에 바탕한 시민단체의 자정운동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시민이 있는 시민단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권력 동거형 시민단체와 생존형 부패를 일삼는 시민단체를 솎아낼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