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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2007년, 20대에 달렸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유수한 대학들의 총학생회가 한총련과 단절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20대의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20대는 과연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 대한민국과 한반도 전체가 잘 풀리려면 20대는 마땅히 달라져야 한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한마디로 ‘세계적인 시야’를 갖고 ‘자유정신’을 추구하며 ‘교양과 지성’의 이름으로 얼치기 수구좌파의 ‘닫힌 시야’를 뛰어넘어 ‘막가파 홍위병’의 시대착오적 ‘죽봉(竹棒)난동’을 봉쇄해야 한다.
2002년에 노무현 후보를 찍은 것으로 알려진 20대의 선택은 오랜 사회적 기성세력에 대한 반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결국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한나라당을 거부한 이유는 알 만하다. 하지만 ‘노무현 시대’도 그들이 기대했던 ‘새 세상’은 결코 아니었다.
‘노무현 시대’는 우선 너무 천박하고 무능하고 위선적이었다. ‘정의’ ‘평등’ ‘민족’ 운운의 온갖 거창한 명분을 다 내세웠지만, 그들이야말로 이제는 ‘50년 만의 전리품’에나 매달리는 ‘신판 기득권 세력’일 뿐이다. 그들은 지금 정권이 바뀌면 감투 빼앗기고, 직장 놓치고, 끗발 잃고, 백수로 되돌아갈까 봐 전전긍긍 하는 권력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늘의 20대가 정말로 변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 신판 권력 블록(block)의 그런 속성을 감지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20대 덕택에 높은 자리 차지하고, 생전 처음 판공비도 써보고,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한 각종 위원회에도 들어가 보고, 사립대학 관선이사 노릇도 해봤으면서도, 20대의 취업 기회는 오히려 왕창 줄여 놓고 말았다. 그렇다면 20대로서는 더 이상 두고 볼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다고 20대가 달리 나아갈 방향이 뚜렷이 떠올라 있는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 그것밖에 다른 야당이 또 하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20대는 지금 한나라당을 새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20대의 한나라당 지지율이 열린우리당 지지율을 바짝 따라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2007 대선(大選)’ 때도 이 추세가 계속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지방선거에서 이길 경우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역전당할 확률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나라당은 명색은 야당이지만, 체질적으로는 야당이 아닌 까닭이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명색은 여당이지만, 체질적으로는 여당이 아닌 까닭이다.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서는 ‘여당 체질 야당’이 이길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때는 다르다. 그때는 특히 20대 유권자들은 ‘여당 체질의 야당’이 아닌 ‘야당다운 야당’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아니 당보다는 사람, 즉 ‘비장한 모습의 반항자’의 마술에 걸릴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런 극적인 대중적 감성정치에서는 한나라당의 연출력은 F학점이다.
오늘의 20대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여러 정황으로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설령 열린우리당을 떠났다 해도 2007년에 지금 그대로의 한나라당을 선택할 것이라는 징후도 없고 또 그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의 이재오 원내대표도 자인했듯이 “판세가 유리하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이것이 그대로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희망을 주는 대안정당’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이면 그것은 착각”이다. 오늘의 ‘노무현 시대’가 20대의 마음을 잃어가듯이, ‘영남 기득권’ 소리를 듣는 한, 지금 그대로의 한나라당도 대선 때 20대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20대는 정치발전을 향한 건설적인 충격장치 역할을 해볼 만하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얼치기 수구좌파도 깨져야 하고, ‘영남 기득권’의 단독집권 집착도 깨져야 한다. 20대는 그래서 ‘선진화’의 이름으로 양쪽의 ‘구(舊)’를 동시에 깨는 창조적 ‘반란’을 일으킬 수는 없는 것일까? 이를 위해 ‘비(非)운동권’ 또는 ‘탈(脫)운동권’보다는 ‘신(新)운동권’, 즉 자유주의 청년학생운동의 태동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