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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종호 논설위원이 쓴 시론 <'증오 교육' 그 이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인기 가수와 영화배우, TV탤런트 등 대중문화 스타를 우상으로 삼는 청소년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다. 스타가 별 의미없이 보이는 몸짓이나 가볍게 던지는 말 한 마디에도 청소년들은 열광하기 일쑤다.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만큼 스타의 영향력도 거의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배우 최민식씨도 그런 스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주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계기수업에 최씨가 강사로 나서서 많은 학생의 박수를 받은 사실 역시 배우로서의 그의 인기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강의를 들은 학생 대부분이 한·미 FTA와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최씨의 주장에 공감했다고 밝힌 것은 전교조가 겨냥한 대로 그 계기수업의 효과가 극대화됐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겉으로는 학생들에게 사회적 주요 현안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올바른 시야를 갖추도록 할 목적이라면서도 실제로는 자신들의 주장이나 인식에 따르도록 편향된 내용을 가르치기 십상인 계기수업의 숨은 목적을 최대한으로 이룬 것이다.
전교조 계기수업의 편향성과 그 일탈은 어제오늘 지적 받아온 일이 아니지만, 인기 스타까지 교실로 끌어들이기에 이른 현실은 그 폐해의 심각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인기 스타를 내세운 이유가 순수한 교육적 의도라기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사회운동에 학생들을 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교육계 안팎의 우려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그런 식의 계기수업 강행을 반복함으로써 초래되는 폐해가 한두 가지겠는가. 그 중에 가장 심각하게 우려되는 것으로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증오와 적개심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교조가 실시한 일련의 계기수업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특정 대상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부추겨온 셈이다. 그 증오와 적개심의 대상은 주로 기업인, 미국, 가진 자 등이다. 2002년 12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 사건과 관련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계기수업, 미국의 이라크전쟁과 한국군의 이라크전 파병을 반대하는 내용으로 2003년 4월과 2004년 6월에 각각 실시한 반전(反戰) 평화 계기수업, 2005년 9월의 사립학교법 개정안 계기수업과 11월의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수업 등이 다 그랬다.
올해 들어 잇따른 계기수업도 ‘증오 교육’이며, 그 증오의 대상도 빗나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3월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 계기수업, 5월의 노동절과 한·미 FTA 계기수업 등에서도 기업인, 박정희 전 대통령, 미국 등이 사실상 증오의 대상으로 상정돼 있다. 기업체 사장에 대한 증오 교육은 “노동자들에게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아무 일이나 시키는 사람”이라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잘라버리는 일들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가르치는 식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방식은 이런 묘사다. “경부고속도로는 누가 건설했을까. 책 속에는 박정희의 이름만 나온다. 박정희가 손수 굴착기로 땅을 팠을까. 땀범벅, 피범벅 아스팔트를 깔았을까.” 미국에 대한 증오 교육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미국식 사고방식이 주입돼 문화패권주의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의도대로 된다면 그 피해는 여러분에게 간다”거나 “미국은 철저히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나라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 증오 교육으로 빗나간 적개심을 키운 학생은 장차 사회에 진출, 어떤 가치관과 행동 양식으로 생활할 것인가. 부자를 보면 이유없이 죽이고 싶다거나 기업인은 너나없이 악독한 짓을 일삼는다거나 하는 감정과 인식에 사로잡혀 반(反)사회적 일탈 행동도 서슴지 않게 되지 않겠는가. 세계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 아랑곳없이 미국을 타도의 대상이라고 외치며 반미 투쟁에 매달려 개인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함께 망치지는 않겠는가.
증오 교육, 그 이후가 특히 우려되는 것은 그런 무조건적인 적개심에 가득찬 사람이 늘어나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행세하는 위험한 비정상 사회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