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정치부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며 소개합니다. 

    며칠 전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한나라당에 악재가 빈발하는데도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데 대해 “마술 정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한나라당 마술 정치’의 원인에 대해 한 여론조사(한길리서치)가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한나라당도 싫지만 열린우리당이 더 싫어서”였다. 국민은 이 답을 다 알고 있는데, 열린우리당은 모르고 있다.

    얼마 전 고향에 갔던 한 사람이, 시골 노인들이 모여 열린우리당 비판을 하고 있는 현장을 보았다고 한다. 한 노인은 “다 떨어뜨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영남 지역도 아니었다. 그래서 “여당이나 야당이나 별 차이도 없고, 여당이 노인 대책도 많이 내놨는데 왜 그러시느냐”고 물었더니 “싸가지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나라당도 싫지만 열린우리당이 더 싫은 핵심적인 이유는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는 것’,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강·정책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 정도의 문제일 뿐 근본적인 차이는 아니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안 오르는 이유’를 물은 여론조사 결과 ‘국정 방식과 철학이 싫어서’ 27%, ‘남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독선’이 21%였다. 둘을 합치면 50% 가까운데, 싸가지와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다.

    열린우리당은 대북 정책을 말하면서 꼭 ‘냉전세력’을 비난한다. 열린우리당식 대북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국민이 영락없이 냉전세력이 되고 만다. 순수한 개혁 정책이라면 반대할 사람이 많지 않은데, 어느 한편을 향해 수구세력이라고 꼭 손가락질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냥 부동산 안정정책을 펴면 되는데도 “언제까지 웃는지 보자” “아직 멀었다”고 좋은 집 가진 사람들을 매도하고 공격한다. 실업고 지원정책을 실시하면 될 것을 인문고와 비교시켜 사람들을 자극하고야 만다. 강북 활성화 대책에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꼭 강남과 비교해서 “2류 시민”이라고 불을 지른다. 국민들은 다 분별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이런 열린우리당의 태도는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도 공격 대상이 된 듯한 불쾌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열린우리당엔 이렇게 자극적으로 남을 공격하는 데 특히 유명한 의원이 있었다. 지금은 장관이 된 그를 향해 같은 당의 한 의원은 “맞는 말을 싸가지 없이 한다”고 비판했었다. 맞는 말을 싸가지 없이 해도 국민이 등을 돌리는데, 틀리는 말을 싸가지 없이 하면 돌아오는 결과는 물어보나마나다.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되는 첫 번째가 국민을 비난하는 일이다. 현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은 나름으로는 억울하게 대선에서 패했다. 소련 해체를 마무리하고, 독일을 통일시켰고, 걸프전에서 승리했는데 일시적으로 경기가 후퇴했다고 국민은 그를 버렸다. 그래도 그는 퇴임하면서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국민을 비난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지금의 열린우리당은 국민이 51 대 49로 편 갈라진다면 49%의 국민을 비난할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꿀릴 게 없다”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등의 자화자찬들도 가랑비에 옷 젖듯 국민들로부터 싸가지 점수를 잃게 만들었다. 이런 사례를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싸가지가 없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때부터는 싸움이다.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은 지금 국민과 불화(不和) 중이다. 서로 싸우는데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마술 정치의 시발은 여기에 있고, 그 마술 정치를 연출하는 마술사는 다름 아닌 열린우리당 자신이다.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겪은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이 “싸가지 없는 놈이 좌익을 하면 극좌가 되고, 싸가지 없는 놈이 우익을 하면 극우가 된다”고 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 정치의 핵심을 찌르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이 이를 무시하면 지방선거는 물론 그 후의 미래도 불투명할 것이고,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마술정치는 저절로 풀릴 것이다. 양상훈 ·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