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란에 이 신문 문갑식 사회부차장이 쓴 '오지랖의 끝'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오지랖’이라는 단어가 있다. 윗도리에 입는 겉옷 앞자락을 말한다. 뒤에 ‘넓다’가 붙으면 의미가 확 달라진다. ‘아무 일에나 참견하다’는 뜻이다. 문득 이 말이 떠오른 것은 최근 좌충우돌 이런 일 저런 일에 옷자락 펄럭이며 끼어들어 사태 해결보다는 혼란을 부추기기만 하는 민주노총의 동선(動線) 때문이다.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법 등을 놓고 툭하면 총파업 운운했던 이 단체의 요즘 관심은 온통 경기도 평택 주한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에 쏠려있는 것 같다. 그 즉각적인 변신을 보면서 끝을 알 수 없는 관심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렇지만 한쪽에서는 민노총의 진짜 ‘전공’이 무엇인지 의문도 생긴다. 노동단체인가, 정치결사(結社)인가. 아니면 혹시 히딩크 감독이 이야기했던 ‘멀티 플레이어’를 축구 아닌 현실사회에서 구현하는 것이 목표인가.

    만일 민노총이 ‘해당 지역 주민들이 싫어하는데 대안은 없는가’ ‘주한미군이 아직도 필요한가’ ‘미군이 철군한다면 우리 국방력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라는 선에서 문제를 제기했다면 논쟁이 비록 노동의 영역을 넘어서더라도 문제삼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 단체의 선전전(宣傳戰)을 보면 오지랖이 제아무리 넓어도 이 정도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들이 오지랖을 넓히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8일 민노총 홈페이지를 보자. 이 페이지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날도 어김없이 섬뜩한 글귀로 장식돼 있다. ‘곤봉 무장 군인+경찰, 평택 대추리 휩쓸며 인간사냥….’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후비는 것들이다. ‘국군이 국민을 짓밟고 있습니다’ ‘공권력이 인간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평택은 피바다, 전쟁보다 참혹… 계엄상황 방불’ ‘마구잡이 인간사냥도 모자라 농가까지 방화’ ‘주한미군 살리고 자국민 죽이고, 군대까지 동원 국민 짓밟아….’ 빨간색으로 강조까지 해놨다.

    민노총 주장대로라면 이번 사태로 ‘평화’를 애호하는 무고한 시민 100여명이 군에게 짓밟혔다. 그렇다면 군은 천인공노할 흉적이요, 세상에 있어야 할 가치가 없는 조직이 된다. 세금 바쳐 그런 군을 먹여 살리는 국민 역시 천하에 다시 없는 바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말이 없는 한쪽에는 평화애호자들이 휘두른 죽봉(竹棒)에 얻어맞아 깨지고 부서진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은 원해서 군인이 된 사람들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남자’로 태어난 게 죄(罪)라면 죄다. 그렇게 당하고도 그들은 말이 없다.

    일찌감치 이번 사태를 ‘제2의 광주(光州)항쟁’으로 규정한 민노총이 이토록 자극적인 용어를 총동원하는 이유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다만 군을 인간사냥꾼처럼 매도한 그곳에 슬쩍 등장하는 말들로 짐작할 뿐이다.

    “평양에서 남북노동자들이 모여 5·1평양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남북노동자가 연대해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의했다. 평화로운 이 땅을 전쟁으로 몰아가고 민중의 피와 땀을 쥐어짜는 것은 미국이다. 이런 미국과의 투쟁 중심에 평택 대추리가 있다.”(김태일 사무총장·5월 2일 발언). 또 그곳에는 5·1평양노동자대회 참관차 북(北)을 방문한 감상기도 있다. 그 글을 읽다 보면 순박하고 때묻지 않은 ‘낙원(樂園)’이 바로 곁에 존재하는데 우둔한 보통사람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