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른 들어가 몸으로 막아"(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
    "오늘은 안 들어간다"(한나라당 안경률 원내수석부대표)
    "아! 우왕좌왕 하다가 또 당하네"(임인배 의원)

    제1야당의 원내사령탑과 부사령탑이 법안처리를 놓고 여당과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손발이 맞지 않고 서로 다른 판단을 하고 상반된 지시를 내린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한나라당은 그 정답을 알려줬다. 김원기 국회의장이 3.30 부동산대책 법안의 직권상정을 밝힌 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1일 밤부터 극렬한 대치를 펼쳤다. 당초 김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기로 한 법안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등 부동산 관련 3개 법안과 독도 관련 법안인 동북아역사재단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었다. 그러나 여당 단독으로는 법안처리가 불가능해지자 열린당은 민노당이 4월 국회통과를 주장해온 주민소환제법을 직권상정할 법안에 포함시키며 민노당과의 공조를 이뤄냈다.

    결국 한나라당이 이날 본회의 법안처리를 막기 위해선 몸싸움을 통한 실력저지가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1일 밤부터 본회의장 앞에서 여당과 대치를 벌였고 소속 의원 30명이 의장공관을 점거하는 등의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법안처리를 앞둔 2일 오후 본회의장 앞에서 한나라당은 무기력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소강상태가 계속되던 본회의장 앞의 여야 간 대치는 오후 1시 15분 열린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일제히 집결하면서 급변했다. 순식간에 여당 의원과 보좌진들이 본회의장 앞을 가로막았고 1시 23분 민노당 의원들이 열린당의 보호속에 무난히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이때부터 열린당과 한나라당 의원 보좌관들간의 몸싸움이 시작됐다. 양측은 "으샤" "으샤"를 외치며 힘겨루기를 펼쳤고 8분여동안의 몸싸움 끝에 열린당 의원들이 모두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 상황은 종료됐다. 열린당 보좌진은 소속 의원들이 본회의장 안으로 모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입장을 저지하지 않았다.

    이미 이날 사회를 볼 김덕규 부의장이 의장석에 앉아 있었고 100여명의 열린당 의원들이 부의장 주변을 둘러싸며 직권상정을 위한 만반의 태세를 다 갖췄기 때문. 한나라당 의원들은 법안처리를 막기 위해 본회의장 안으로 입장했다. 그러나  2시 7분경 갑자기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빠져나와 긴급의원총회를 개최했다. 법안처리를 위한 의결정족수가 안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 굳이 본회의장에 입장해 의결정족수를 채워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소속 의원들은 우왕좌왕했다. '왜 나오셨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족수가 안되기 때문에 나온 것 같다"고 답했고 이에 취재진이 '정족수 확인해봤느냐.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자 "글쎄 확인하고 있는데…"라며 의총장으로 들어갔다.

    한나라당 의총이 이뤄지는 동안 본회의장 안에서는 민주당 의원까지 참석하며 법안처리를 시작했다. 한나라당이 의결정족수가 안될 것이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다. 안경률 원내수석부대표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긴급히 의총장을 빠져나왔고 취재진들의 질문공세에 안 수석은 "오늘은 본회의장에 안들어간다"며 당 입장을 설명했다.

    그러나 안 수석이 이 같은 당 입장을 설명하는 동안 이재오 원내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은 갑자기 본회의장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본회의장에 입장했다는 소식을 그제야 접했기 때문. 이 원내대표는 본회의장에 입장하며 소속 의원들에게 "얼른 들어가 몸으로 막아야 한다"며 본회의장 안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본회의에 안건으로 상정된 6개 법안은 이미 열린당과 민노·민주당이 참석한 가운데 순조롭게 처리되고 있었고 한나라당은 김 부의장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비난을 쏟아냈지만 결국 실력저지는 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잘못된 전략을 세운 것임은 물론 긴급히 진행되는 국회 상황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소속 의원들과 당직자들 입에선 "또 당했다"는 말이 나왔고 한쪽에선 "애초부터 막을 의지가 없었던 것"이란 비판도 터져나왔다. 열린당은 의원 겸직인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불러 법안처리를 위한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인 반면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개인적인 약속을 이유로 본회의 참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중진 의원은 "맨날 말로만 큰소리 치고 쇼만하지 한나라당이 뭘 제대로 하는 게 있느냐"며 당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