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26일 ‘뉴라이트 재단’ 발족식을 가진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선 동아 등 주요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에 대해 정치평론가 정창인 씨는 안 교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본인 역시 현재까지는 이 재단(사실은 ‘재단법인’이 아니고 ‘사단법인’이다)이 인수해서 발간하게 될 계간 ‘시대정신’의 편집위원으로 되어 있기에 안 교수를 둘러싼 논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어 내 생각을 적어 보고자 한다.

    사실 나는 안병직 교수를 전혀 모른다. 서울대 법대를 다닌 나로선 당시 서울대 경제학 교수로는 조순 교수와 변형윤 교수 정도를 들어서 알뿐이다. 나와 계간지 ‘시대정신’과의 관계도 매우 캐주얼한 것이다. 잡지를 운영하던 한기홍 씨와 이광백 씨가 잡지를 들고 와서 글을 써달라고 해서, 네 번에 걸쳐 원고료 한푼 받지 않고 글을 썼다. 그 글은 지난 3월말에 발간된 나의 책 ‘세계의 트렌드를 읽는 100권의 책’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다가 ‘시대정신’의 경영이 어려워서 잡지를 지속적으로 발간하기 위해서 안 교수와 몇몇 분을 영입하기로 했다고 해서 모임을 한번 나갔던 것이 지난 2월이었다. 그 때는 ‘사단법인 시대정신’을 발족시키기로 했었는데, 지난 달 다시 회의를 열어 (나는 강의 때문에 불참했다) ‘사단법인 뉴라이트 재단’을 발족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4월 2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안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됐는데, 실망이 컸다. 마르크스 사상에 젖어 있던 안 교수는 “박정희 보다 머리가 모자란 전두환이 통치해도 한국경제가 죽기는커녕 더 발전해서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 들어 이른바 3저(低) 현상을 타고 우리나라 경제가 날로 발전하자 그 때 비로소 자기 생각에 무언가 잘못이 있다고 깨달았다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수출에 힘입어 발전하게 됐다는 것은 1970년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우실업이나 삼성물산에 취직했던 젊은이들이면 다 아는 일인데, 그것을 1980년대에 들어서 그렇게 어렵게 깨닫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안 교수가 1985년에 일본에 머물다가 비로소 사회주의는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전향을 했다하는 점도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 서점에 즐비하게 꽂혀 있던 타임이나 뉴스위크만 읽어도 공산체제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대한항공 007편 피격, 아웅산 테러 등을 통해 나타난 공산체제의 잔인성에 대해 서울대 교수이던 안 씨가 무엇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 당시는 자유노조가 이끄는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이 세계의 주목을 끈지도 몇 년이 된 후였고, 소련에선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을 때가 아니던가.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학생들이 좌경화 된데 대해선 나는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 자신 당시 초임 교수 생활을 하면서 호남 출신 학생들이 감수성 많은 10대에 겪었던 1980년 봄의 그 엄청난 사건이 그들의 사고(思考)에 미친 영향을 절감했었다. 하지만 안 교수는 교수, 그것도 서울대 교수였다는 점에서 나는 ‘사상(思想)’이라는 것이 사람의 판단을 그렇게 흐리게 하는가 하고 새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까지의 격동의 시기에, 군에 복무하면서 조국의 현실을 느껴 보고, 제대 후 곧 미국에 건너가서 공부하던 중 카터의 실패와 레이건의 등장을 지켜 볼 수 있었던 나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도 있으니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한다.

    정창인씨는 안 교수 등 ‘뉴라이트’ 운동멤버들의 ‘전향’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즉 이들은 자기 자신들의 성찰과 반성을 통하기보다는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의 멸망이나 북한의 경제상황을 보고 공산주의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에 철저한 사상적 반성이 없다는 의견이다. 이런 주장에도 일리가 없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주사파(主思派) 철학을 버리고 자유민주주의로 전향한 것은 반가운 일이니, ‘전향의 동기’에 대해 크게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안 교수가 갖고 있는 ‘보수’에 대한 관점이다. 안 교수는 “한국의 올드 라이트는 권위주의와 산업화 세력에 연원을 두고 있어 자유주의 개혁을 하려면 자기부정을 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뉴라이트는 독재, 권위주의, 부정부패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 출신 인사들이 핵심이며, 사상적으로는 공산주의까지도 논의가 허용되는 다양한 사회를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한국의 기존 보수주의는 한나라당의 차떼기 문제와 같은 부패로 덧칠되어 있기 때문에 더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고도 했다. (동아일보 4월27일자) 조선일보 4월25일자 기사는 이런 안 교수를 두고 “치열한 사상전 - - 다시 피가 끓는다”는 제호를 달아 전면기사를 썼다.

    하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어 보는 운동권의 논리를 보며, 또한 세상을 정(正)-반(反)-합(合)으로 보는 변증법 사고(思考)의 흔적을 느낀다. 무엇보다 이러한 안 교수의 발언은 빈곤의 수렁에 빠져 있던 조국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면서 경제대국으로 일으킨 사람들, 그러면서도 과거의 정치권력과는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을 대단히 모욕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민주화를 열망했지만 당초부터 사회주의와 진보주의를 단호하게 배척해 온 많은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 교수는 또한 뉴라이트가 “사상적으로는 공산주의까지도 논의가 허용되는 사회를 추구한다”고 했다. 참으로 아리송한 말이다. 한편으로는 치열한 사상전을 펼치겠다면서, 단순히 좌파가 아닌 공산주의도 포용하겠다는 것이니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은 대한민국은 결코 공산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이 허용하는 것은 좌파성향의 정책 또는 사회주의 정책이다. 나는 그나마 이런 정책도 매우 현명치 못한 것으로 본다.

    공산주의이든 어떤 좌파 이념이든 간에 그것을 상대로 ‘사상전(思想戰)’을 한다는 것도 우습다. 특히 공산주의와의 전쟁은 레이건 대통령이 이미 끝내 버렸다. 이제 자유시장주의자들이 할 일은 좌파 정책, 또는 진보 정책과의 싸움이지 공산주의 이념과의 전쟁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세기에 인류는 두 개의 큰 악(惡)을 경험했다. 그것은 물론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이다. 뉴렌베르크 전범재판으로 인류는 전체주의를 단죄했다. 그러나 인류는 공산주의의 대학정(大虐政)과 학살(虐殺)에 대해 아직도 단죄(斷罪)를 하지 못하고 있다. 공산주의 체제가 너무 오래 지속됐을 뿐 더러, 소련은 총성 없이 무너졌고, 중국은 스스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정창인씨가 우려하듯이, 안 교수가 ‘비수(匕首)를 숨긴 것’은 아닐 것이다. 안 교수의 말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과연 안 교수와 안 교수를 앞에 내세운 사람들이 ‘재단 아닌 재단’을 발족시킨 진짜 속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안 교수의 인터뷰에서 자신들만이 ‘정의’이고 ‘절대선(善)’이라고 생각하는 구시대 좌파의 아집(我執)과 독선(獨善), 그리고 시대착오(時代錯誤)를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만일에 안 교수를 따르는 젊은 세대마저 그런 아집과 독선에 빠져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상돈 객원칼럼니스트 /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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