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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말고’폭로자 그냥 둬선 안된다

입력 2006-04-19 09:08 | 수정 2006-04-19 15:40
동아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이 신문 객원논설위원인 이석연 변호사(헌법포럼 상임대표)가 쓴 칼럼 <'아니면 말고'식 폭로 처벌해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2년 16대 대선의 핵심 쟁점이던 이른바 김대업 병풍(兵風)조작사건을 기억하는가.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장남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을 제기한 김 씨의 말을 여당과 친여 언론 등이 확대 재생산하면서 이 후보 깎아내리기에 온 나라가 야단법석을 떤 사건이다. 김 씨가 병풍의혹을 제기한 후 2002년 7, 8월 한 달 사이 KBS TV의 밤 9시 뉴스에서만 김 씨의 주장 관련기사를 무려 80꼭지나 다뤘다고 강동순 KBS 감사가 지난주 한 강의에서 밝혔다. KBS뿐이겠는가.

물론 병풍사건은 조작이었음이 판명됐다. 이를 확인한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병풍의혹 제기 이후 이 후보 지지율이 11.8%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돼 있다. 대선 결과 노무현 후보와 이 후보의 득표율 차가 2.3%포인트인 것을 볼 때 병풍사건이 대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이 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대담에서 “허구 날조 3대 의혹이 제기되면서 방송들이 사실인 것처럼 단정하고 새벽부터 자정까지 보도하는 것을 보고, 지나간 얘기지만 정말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3대 의혹이란 병풍사건 외에 당시 노 후보 소속 정당이던 민주당이 제기한 ‘이 씨의 20만 달러 수수설’과 ‘부인 한인옥 씨의 기양건설 자금 10억 원 수수설’로 대선 후에 모두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이처럼 노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 조작으로 판명됐음에도 현 정권의 누구 하나 책임지거나 사과 한마디 한 사람이 없었다. 법석을 떨었던 언론 역시 그런 사실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지나갔다. 오히려 이들 의혹 조작과 관련된 인사들은 현 정부 들어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검사장 등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헌법적 정의와 국민적 양식(良識)이 살아 숨쉬는 사회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용납될 수 있겠는가.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시대라고 폄훼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리하여 현 정권은 러-일전쟁 이후 친일 반민족행위까지 거슬러 진실을 규명해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며, 많은 예산을 써 가며 과거 파헤치기에 집착하고 있다. 성찰과 교훈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역사를 살아 있는 권력의 시각에서 평가하고 청산하겠다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집권 과정의 적법절차를 결여한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과거사를 바로잡겠다고 하니 ‘소가 웃다가 코뚜레 부러질 얘기’ 아닌가. 자기도취적 정의 관념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나는 2004년 탄핵 당시 대통령 측 변호인단으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또한 정략적인 수도이전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해 위헌결정을 받아냄으로써 천도(遷都)를 막는 데 일조했다. 이들 사건에서 권력의 편에 섰던 법조인들은 그 후 대법원장 등 줄줄이 요직에 포진했다. 법률가로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정의를 세우고 기회주의에 편승하지 않는 삶인가. 참으로 헷갈린다.

문제는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병풍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이른바 황제테니스 관련 문제 제기 및 보도 행태 등을 보면서 그 조짐을 감지하게 된다. 막연히 별난 것처럼 보이는 사실을 부풀려 호소력 있는 영상자료를 곁들여 반복적으로 내보내면 국민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하는 생각을 갖기 십상이다. 최근 몇몇 여론조사 결과 이 시장 지지도는 적지 않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과성(一過性)이 강하고 즉흥적이며 논리나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국민성을 교묘히 악용하려는 제2의 병풍 기도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의 한건주의 폭로를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대통령 바로 뽑기의 지름길이다. 내달의 지방선거부터 제대로 치르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허위 폭로자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재판을 명문화하고 특히 폭로된 허위 사실이 당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명될 경우 언제든지 해당 선거를 무효로 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선거사범의 공소시효를 180일로 단축한 현행 제도는 당선자에 대한 ‘합리적 근거 없는 특혜’로 위헌 소지가 크다. 선거법 위반의 공소시효를 일반 범죄보다 오히려 연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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