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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에' 현혹되고 '민족공조'에 끌려가고

입력 2006-04-06 09:29 | 수정 2006-04-06 09:50
동아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최정호 객원 대기자가 쓴 칼럼 '통일, 평화, 민족… 선전과 현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첫 희생자는 ‘진실’이란 말이 있다. 전선과 후방의 구별 없이 온 나라가 말려드는 현대전은 ‘총력전’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러한 현대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 국민의 ‘사기’다. 개인의 재산, 행복뿐 아니라 생명마저 내놓아야 하는 전쟁에 싸우고자 하는 국민의 사기가 없다면 이길 수 없다. 현대전이 ‘심리전’의 양상을 띠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심리전의 첫 관건은 이 싸움이 ‘정의의 전쟁’이란 믿음을 주는 일이다. 정의는 우리 편에 있고 적은 절대 악이다. 그를 위해 흔히 거론하는 것이 적이 먼저 침략했다는 주장이요 그 고전적인 보기가 한국전의 ‘북침설’이다. 6·25 개전과 함께 제일 먼저 희생된 것이 인민군 남침의 진실이었다는 것을 그건 예시하고 있다.

‘현실’은 뒤에 밝혀진 것처럼 1950년 6월 13일부터 24일까지 남북한 경계선인 38도선에서 불과 몇 km 이내에 북한은 인민군 7개 사단을 극비리에 집결시키고 거기에 다시 1개 전차사단을 배치해 놓고 있었다. ‘선전’은 그러나 남침 직전까지 소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이 6월 7일 ‘평화통일’을 제안하고 이를 남쪽에 전달하기 위해 6월 11일(6·25전쟁 발발 2주 전) 3명의 연락원을 경의선 철로를 따라 걸어서 서울로 보낸다고 평양방송을 통해 떠벌리고 있었다. 평화통일 제안이란 두 달 후인 8월 초순까지 남북 총선거를 실시해서 광복 5주년이 되는 8월 15일 서울에서 통일 최고입법기관의 첫 회의를 개최하되 거기엔 이승만 이범석 김성수 조병옥 백성욱 등 ‘민족반역자들’은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수락하지 못할 것을 처음부터 전제한 ‘무시무시한 평화통일’ 제안이었다.

이에 대해 남쪽의 선전은 변함없는 ‘북진통일’. “평양에서 점심 먹고 신의주에서 저녁 먹는다”는 북진통일의 허장성세였다. 현실은? 그렇다. 전쟁은 개전 초 진실을 희생시키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진실을 폭로해 주기도 한다. 6·25전쟁 후 밝혀진 진실은 북쪽이 8개 사단을 38선에 집결시키고 있었던 데 반해 남쪽은 4개 사단이 38선 주변에 평상 배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인민군이 국군의 2배 병력이었다. 게다가 인민군이 소련제 T-34 전차 150대를 앞세워 남침했을 때 국군의 57mm 대전차포나 2.36인치 포탄은 T-34 전차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북은 화력의 압도적 우세 속에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한 달 만에 남한의 대부분 지역을 석권했다. ‘북진통일’과 ‘평화통일’의 허실, 통일을 향한 선전과 진실이 이렇게 들통 났다.

6·25 남침의 ‘에비당스(명백한 진실)’ 앞에 적어도 그 후 30년 동안 남한에는 북의 평화통일 선전을 믿는 지식인은 잠적했고 유럽에서도 스탈린의 세계평화 운동에 나부끼는 좌파 지식인이 격감했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좋으나 불행한 것은 선전의 허구성이 폭로되기 위해 엄청난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북진통일’도 ‘평화통일’도 다 선전이요,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300만 명의 고귀한 인명이 희생된 전쟁을 치렀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처럼 엄청난 값을 치른 학습의 효과가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젊은 세대는 흔히 기성세대의 경험담엔 귀를 닫고 매혹적인 선전에 끌려간다.

선전이 웅변이라면 경험은 눌변이다. 선전은 이해하기 쉽도록 잘 다듬어지고 논리가 명쾌하지만 사람들의 경험이란 복잡하고 논리적으로도 쉽게 정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선전이 장광설이라면 경험은 혀가 짧다.

6·25전쟁까지 해방공간의 젊은이들을 현혹한 선전이 ‘평화통일’이었다면 1980년대 이후 오늘의 젊은이들을 현혹하고 있는 선전은 ‘민족 공조’인 듯싶다. 모든 선전처럼 ‘민족 공조’도 아름다운 말이다.

문제는 민족 공조의 선전 아닌 현실을 경험하고 직시하는 일이다. ‘공조’하자는 ‘민족’이 북의 누구를 가리키는지… 금강산 관광 코스 밖의, 또는 평양시 밖의 얼마나 많은 북한 주민을 가리키는지… 굶주리다 못해 탈북하는 북한 주민도 거기에 포함되는지… 그 탈북민을 돕지 않는 어떤 민족 공조가 또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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