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0일자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가청렴위원회가 공무원 ‘골프금지령’을 닷새 만에 사실상 거둬들였다. 지난 23일 ‘직무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골프를 하지 말라 했다가 28일엔 “현실적·직접적·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민간인과는 골프를 치지 말라”는 쪽으로 물러선 것이다. 공무원이 누구와는 골프를 쳐도 되고 누구와는 쳐서는 안 되는가에 대해선 이런 저런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한 번 정해진 지침을 보란 듯이 먼저 깨고 보는 청와대 사람들의 위세 자랑과 거기 끌려다니며 이랬다 저랬다 하는 못난 청렴위의 모습이다.
청렴위가 골프지침을 발표하고 그 지침을 청와대 직원이 먼저 어겼다는 것이 문제가 되자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는 “청렴위가 정무적 판단을 생략한 채 한건주의에 빠졌다”고 했고 문재인 민정수석은 “청렴위가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혼란스럽다”고 들고 나왔다. 공무원 골프금지령은 전임 총리의 국경일 골프가 의혹으로 번져 사퇴하게 되자 공직 기강을 다잡는다는 명분에서 나온 조처였다. 그랬던 청렴위가 청와대 실세들이 발을 걸고 나서자마자 꼬리를 내려버린 것이다. 이렇게 부패방지법이 보장한 ‘직무상 독립’조차 스스로 무너뜨려버린 이 줏대 없는 청렴위가 ‘고위공직자 수사처’를 만들어 독립적인 수사를 해보겠다고 나서고 있다.
청와대의 얼굴도 보통 두꺼운 게 아니다. 청렴위가 23일 골프금지령을 내려 모든 공무원들이 미리 해 둔 골프 약속을 취소하느라 부산을 떨고 도시 근교 산이 갑작스런 공무원 등산객으로 붐비던 26일 청와대 사회조정2비서관은 태연스레 대기업 간부들과 어울려 골프장에서 ‘나이스 샷’을 외쳤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민정수석실은 이 사실이 알려진 지 이틀 만에 “직무 관련성이 없어서 무죄”라며 손을 털었다. 골프 약속을 취소하느라 허둥댔던 일선 부처 공무원들만 바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이 국가기밀을 흘리고, 홍보수석실 행정관은 동료 여직원과의 사련으로 아내를 목졸라 죽이는 사건까지 벌어지고 있는 게 요즘 청와대 기강이다. 정권 후반기라지만 이런 말세 같은 모습이 없다. 그런 청와대가 29일 기강단속회의에서 “솔선수범해 기강을 잡되 구체적 내용과 방법은 좀 더 지켜보자”는 어마어마한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고장이 나도 단단히 고장난 청와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