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김근태 최고위원이 2·18 전당대회 이후 현재까지 한달여기간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당 공식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고는 있지만 기껏해야 한 두 마디 던지는 정도다. 여권 내 차기 대권 경쟁자인 정동영 의장이 특유의 ‘몽골기병’식 행보로 당 장악은 물론 국정운영의 주도권 장악마저 목전에 두고 있는데도 김 최고위원은 ‘낮은 자세’로 지켜만 보고 있다.

    가뜩이나 신중하고 진지한 성격 탓에 말수도 적은데, 최근에는 그 말수조차 눈에 띄게 확 줄어들었다. 당내 일각에서는 김 최고위원의 이런 모습을 놓고 “김 최고위원이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김 최고위원 한 측근도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당원들은 정 의장의 ‘자강론’을 선택했다. 당원의 선택을 존중하는 입장”이라면서 ‘침묵’의 이유를 설명한 뒤 “김 최고위원은 정 의장 체제 하에서 조력자로 지방선거 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곧 정 의장 체제에 대해 파열음으로, 자칫 당내 분열의 주범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은 김 최고위원의 입장에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데, 물론 이런 행보도 장기적 관점에서는 김 최고위원에게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어차피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큰 틀의 움직임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결국은 ‘침묵’을 깨는 시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 당직인사와 조직개편 과정, 그리고 이해찬 국무총리 골프 파문 과정에서 보여진 정 의장의 '독식'에 일부 김근태계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자’고 주장했지만 김 최고위원이 계속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으로 알려진 점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당 안팎의 판단이다. 당시는 시기적으로 지도부가 갓 들어선 상태여서 안정적인 체제 확립이 중요한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상당부분 시간이 소요된 만큼 제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김 최고위원의 침묵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제기하고 있다. 김 최고위원 스스로가 자신의 향후 정치적 행보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방향을 아직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이다. 김 최고위원은 2·18 전당대회에서 고건 전 총리와 함께하는 ‘범양심세력대연합’ 주장으로 김 최고위원 자신의 ‘개혁성’에 일정 부분 흠집이 간 상황이다. 여기에다 ‘만년 2인자’라는 꼬리표에서 알수 있듯 불리한 당세 극복을 위해서는 뭔가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런 차원에서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최근 지방선거 시·도 광역단체장 공천 문제를 놓고 당내 파열음이 일면서 당원들의 당 정체성에 대한 동요가 일고, 일부 당원들 사이에서 ‘노사모’식의 새로운 정치적 모임체를 조직화하자는 요구가 일고 있는 가운데 김 최고위원의 침묵을 깨는 시점이 이런 당내 상황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현재 당 공식 일정을 소화하면서 지방선거 필승을 위해 당 소속 후보자들을 격려하는가 하면, 의원들의 세미나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행보의 중간 매개로 당내 ‘범개혁세력’의 움직임도 함께 포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