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도 인터넷에서 박살나고 있습니다”

    23일 사상 처음으로 네티즌들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를 가진 노무현 대통령은 시종일관 편안하고 여유로운 자세로 격의없는 답변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양극화, 함께 풀어갑시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는 오후 1시부터 2시간 가량 진행됐으며 5개 유명 인터넷 포탈사이를 통해 생중계됐다.

    노 대통령의 답변에 좌중에선 일순간 웃음보가 터지기도 했으며, 양극화 문제를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 등이 언급되는 순간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패널 및 참석자들도 프리랜서기자 가정주부 인터넷카페운영자 등을 비롯,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역으로 눈길을 끌었던 영화배우 이준기씨 등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날 ‘인터넷 대화’는 주로 양극화 문제와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입장을 소개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뤄졌으며 이외에도 부동산대책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스크린쿼터, 총리인선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나타났다. 

    노 대통령은 우선 인터넷에 대한 소회를 묻는 한 방청객의 질문에 “인터넷에서 대세를 잡아서 그것을 선거에서 대세로 몰아간 희귀한 대통령인 것은 맞다”며 “그러나 이제는 인터넷이 내 마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인터넷에서 박살나고 있다”면서 좌중을 웃겼다. “네티즌 당을 만들면 당원으로 끼워달라”고도 했다.

    노 대통령은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드러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이준기씨의 답변을 받았을 때는 “지금도 계속 (영화) 손님이 들어오느냐”고 물으면서 “‘공길’은 아는데 (배우) 이름이 뭐지요. 스타가 스타를 알아봐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말해, 또다시 웃음을 자아냈다. 노 대통령은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 점유율 40~50% 이상을 지켜낼 자신이 없느냐”고 말하면서 “자신이 없으면 보호를 해야겠지만 자신이 있으면 자신있게 나가야 한다”고 했다.  또 “‘미국에 굴복·압력 아니냐’ 이런 데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영화계는 영화계대로 절대 반대로 가버리면 대화가 안된다. 우리로선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그런 방향으로 좀 가자”고 했다.

    노 대통령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서도 "손해보는 장사는 안 하겠다" , "손해볼 것 같으면 합의 안 한다" 등의 발언을 하면서 단호한 의지를 피력했다.

     

    노 대통령은 또 양극화 해소를 위한 증세 논란에 대해서는 “아직 세금 더 내라는 말은 아니며 한번 생각·연구해 보자는 것”이라면서 “세금 얘기 나오니까 바로 ‘월급쟁이가 봉이냐’로 나왔다. 자영업자와의 형평문제를 제기하는 것 알겠지만 아직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상위 20%가 대개 97%를, 전체 소득을 합산해서 내면 96.7%를 상위 20%가 내고 있다. 세금 문제에 대해서는 화를 낼 분들은 상위 20% 소득자들인데, 나와 대화를 좀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잇따른 성폭행 문제 등 사회 윤리 강화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엄단하라고 해서 법 만들고 앞장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 시민들의 자율적 영역이 넓어지면 그 부분에 대한 수준이 적절히 조율되는 게 민주주의 사회인 것 같다”면서 “활발하게 사회에서 논쟁되고 사회적 공론으로 형성돼가는 사회적 여건, 자율과 자유의 분위기, 그런 가운데서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국무총리 인선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 문제는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면서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방향을 결정하진 못했다. 특정인물을 말 못하겠고 방향도 말하지 못하겠다”고 얘기했다. 이해찬 전 총리 후임 인선문제를 놓고 일부의 예상보다 고심이 더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마무리 발언에 나선 노 대통령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이 참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세상이 변하므로 우리 생각도 변해야 한다”면서 “언론의 문화·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중요하나 인터넷의 수준도 높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라는 제목의 책을 소개하면서 “재야 연구자가 쓴 것인데 (이 책을 보면) 나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를 생중계한 5개 유명 인터넷포탈 사이트에는 중계 도중에 수만건의 네티즌 댓글이 달리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