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전 전승을 거두며 온 국민에게 기쁨을 안겨준 한국 야구대표팀의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진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 야구대표팀의 대승에 대한 기쁨을 자기식대로 표현한 ‘소(笑)변인’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이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을 그들의 안방에서 7대3으로 격파한 한국 야구대표팀의 대승에 온 국민이 환호했으며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대변인은 15일 브리핑에서 전날 미국전 승리에 대해 “통쾌했다.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러웠다. 국민에게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큰 희망을 안겨줬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감독과 코치진은 가장 잘 할 수 있는 선수를 선발했고 선발된 선수 전원을 끝까지 신뢰했다”며 “선수들은 인기영합하지 않았고 개인플레이 하지 않았으며 항상 팀의 승리를 위해 자기희생을 할 줄 알았다”고 극찬을 이어갔다.

    이 대변인은 이어 ‘소(笑)변인’답게 반어적인 표현으로 미국전 승리의 기쁨을 표현했다. 그는 “한국 야구가 매우 중대한 사태를 유발시켰다고 본다. 한국 야구는 아시아 최강인 일본을 격침시킨데 이어 미국의 맹방인 멕시코를 이겼고 이어서 세계최강이며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야구를 이겨버렸다”며 “이는 세계 외교무대에서 선린을 중시해야 하는 점에서 매우 우려되는 일”이라고 야구 강국을 꺾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걱정하는 것은 이번 한국 야구의 연속승리가 중요한 무역상대국인 일본을 자극해 새로운 무역장벽이 생기거나, 전통적 맹방인 미국을 자극해 동북아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이라며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한국 야구대표팀의 승리가 미국과 일본에 안겨준 아픔이 컸을 것이라는 반어적 표현이다.

    그는 “한국의 선수들이 의도적으로 외교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대국들만을 골라서 차례로 꺾은 것이 우발적인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지시였는지 의혹이 일고 있다”며 “이러한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며 한나라당은 이 점을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밝혀둔다”는 말과 함께 웃음으로 유쾌하게 브리핑을 마무리 지었다.

    ‘통상적인 논평’에 이은 “한국 야구 승리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인 ‘소변인 논평’이 언론을 통해 기사화 되면서 이 대변인은 네티즌들에게 ‘애꿎은’ 뭇매를 맞았다. 이 대변인이 한국 승리에 정치음모론을 제기한 개그성 논평을 내놓았다는 기사에 한 친노 논객은 “뼛골에 사무친 미국 노예 근성”이라는 독설을 퍼부었으며 네티즌들 또한 “찬물을 끼얹었다” “한·미관계를 악화시킨 야구대표팀은 역적이냐”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미국전 승리에 대한 기쁨을 자기식대로 표현했다가 비판을 받은 이 대변인은 16일 한일전이 시작되기 전 서울 염창동 당사 브리핑에서 “오늘은 온 국민과 함께 한일전 야구를 응원하겠다. 박찬호 선수가 오만한 일본 야구를 반드시 꺾어 달라”며 “한국팀이 이겨야만 전날 논평에 대한 오해가 풀릴 것 같다”고 짧은 논평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이어 “유감은 없다”며 “나의 정치적 개그 실력은 4단이지만 그걸 해석하는 기자는 5단이라고 생각했다”며 서운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날 오후 한일전 승리에 대한 논평을 하러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은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일본을 다시 이겼다. 외교문제에 이상은 없을지 걱정하는 소리 나올까 걱정이다”고 논평한 뒤 “이 대변인이 어제 ‘엉뚱한’ 논평을 냈다가 곤욕을 치렀다. 본인 해명처럼 표현이 조금 다른 것일 뿐 즐거워서 하는 말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의 말처럼 이 대변인의 논평은 ‘엉뚱하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나 기쁨의 반어적 표현이었다. 이에 대한 네티즌 등의 싸늘한 시선은 정치인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냉담함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여유로움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