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을 어찌 하면 좋을 것인가? 옛날에 국민은 자유당이 싫으면 민주당을 따라가면 되었다. 유신이 싫었을 때도 전통야당을 따라가면 되었고, 신군부가 싫었을 때도 YS, DJ를 따라가면 되었다. 그만큼 지난 시대의 제1 야당은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안전판이요 국민을 이끌어 가는 선도적 기능을 지녔었다. 그러나 오늘의 제1야당은 그렇지 못하다. 24시간 긴장을 하고 있어도 시원치 않은 상태에서 한나라당은 요즘 나사가 풀릴 대로 풀린 것 같다.

    한나라당은 2002년에도 다 차려준 밥상을 받아먹지 못한 채 막판 곤두박질을 쳤다. 그러더니 지금 이날까지도 ‘반사이득’이 마치 제 힘인 줄 착각하면서 ‘퇴행성 인지(認知)기능 부전(不全)증’을 되풀이해서 드러내곤 한다. 이러다가는 2007년에도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읽었을 때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는 사람”들이 또 득세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이 야당이란 무엇인지, 야당 노릇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도무지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야당은 한마디로 전사(戰士) 집단일 수밖에 없다. 사상, 신념, 이론, 사생관(死生觀), 정책의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대칭성을 분명하게 투사(投射)하는 것이 곧 한국적 야당의 숙명이다. 그래서 그 희생, 고난, 박해의 ‘증거물’이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를 수 있을 때 비로소 영광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에 비한다면 한나라당은 “고통 없이 소득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조차 체득하지 못한 ‘피땀 흘리지 않는 야당’, ‘떼어 놓은 당상인 양 여기는 야당’, ‘혼(魂)이 빠진 야당’으로 보일 때가 너무 많다. 그러면서 그들은 곧잘 이렇게 말한다. “요즘 국민은 정책대안을 바라지,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정일 국제범죄와의 이 결정적인 싸움판에서, 그리고 반(反)대한민국 패거리들이 ‘민족운동진영 총연합’이라는 단일 전선체를 만든 이 마당에 “싸워선 안 된다”니, 차라리 나라를 고스란히 포기하는 것이 국민의 수고를 더는 일이다.

    더 민망한 것은, 분명히 야당이면서도 툭하면 열린우리당과 홍위병 세태를 의식해 “나도 밤나무” 하며 어설픈 게걸음을 치고 서투른 모창(模唱)을 한다는 점이다. 말인즉슨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달라졌으니 우리 역시 살기 위해선 한 클릭 따라가야 한다고 그러는데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지키면서 혁신(renovation)을 하는 것하고, 주눅이 잔뜩 들어 주변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시류에나 영합하는 것은 절대로 같은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에 대해 이런 불만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그런대로 애써 참아준 것은 그나마 유력한 대안세력을 뒤흔들어 놓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한나라당으로 하여금 “우리 말고 또 누가 있느냐?”는 느긋한 안일과 자만에 젖어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2007년에 대한민국을 어떻게 해서든 되살려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너희들 별 수 있느냐, 도리 없이 우리를 밀 수밖에…” 하는 한나라당의 ‘당연하다는 듯한’ 전제부터 정면으로 깨부숴야 할 것 같다. 지금 우리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도’ 아니면 ‘개’ 하는 식의 선택 논리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범(汎)대한민국 진영을 분열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나라당이 제정신 가지고 제대로 싸우는 야당이 되도록 압박을 가하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그때는 ‘특단의 조치’를 불사하겠다는, 범대한민국 세력의 ‘으름장 운동’만은 꼭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전통우파든 뉴 라이트든, 이제는 한나라당에 대해 “야당다운 야당 할래, 아니면 할 일 없는 건달처럼 흥청거리는 유흥집단이나 할래?”의 최후통첩을 해야 한다. ‘막가파 이해찬’의 숨통을 죈 것도 결국은 언론폭로와 여론이었지, 야당이 선도투쟁한 결과가 아니었다. 이 역할전도를 바로 세우지 않는 한, ‘2007’은 또 한 차례의 허망한 좌절이 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