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에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전공)이 쓴 시론 '오해 소지 있는 대법원장 발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법원장의 잇따른 재판 관련 발언이 눈길을 끈다. '두산 사건' 재판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에 이어 신규 법관 임명식에서 행한 발언 때문에 대법원장의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경륜 있는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대법원장도 나름대로 재판에 관한 소신과 철학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특정 사건의 재판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법관의 판결을 대법원장이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든지, 새내기 법관들에게 아리송한 내용의 훈시를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두산 사건 재판만 해도 그렇다. 설령 하급심 재판이 형평성에 어긋난 것이었다 하더라도 상고심 재판을 통해 바로잡으면 된다. 심급(審級)제도는 그래서 있는 것이다. 법관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이 하급심 판결을 비판해 법관들의 재판에 간섭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크게 해치는 일이다. 법관은 외부로부터의 독립 못지않게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내부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 사법권 독립의 헌법정신이기 때문이다.

    신규 법관에 대한 대법원장의 훈시 내용도 듣기에 따라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재판의 공정성과 보편타당성을 강조하면서도 "결과가 공정하고 보편타당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훌륭한 재판이라고 할 수는 없고, 사람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재판은 생명력이 없는 죽은 판단임을 명심하라"는 훈시는 듣는 사람마다 달리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 법관이 법률을 맹목적으로 적용하는 '재판기계' 노릇을 해서는 안 되지만, 인정에 끌려 인간애가 느껴지는 재판을 하다 보면 공정성과 형평성을 잃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재판의 생명은 어디까지나 실체적 진실에 따른 법 적용의 공정성과 형평성이기 때문에 휴머니스틱한 재판만을 능사로 삼을 수 없는 것이 법관의 직업적인 숙명이다.

    대법원장의 훈시 중에서 '국민재판론'은 매우 위험한 언급이다. 대법원장은 "재판은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 판사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주권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므로 법관이 갖는 재판권도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재판의 주체는 헌법에 따라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관이지 국민은 아니다. 배심 또는 참심재판제도의 위헌론이 제기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재판도 법관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장 말대로 법관이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을 하려면 사건마다 국민 여론을 의식한 재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그런 형태의 '국민재판'을 단호히 배척하고 있다. 법관은 다수 국민의 뜻에 따를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라는 것이 헌법의 준엄한 명령이다. 따라서 국민 여론을 의식한 인기영합적인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 여론을 중요하게 여기고 국민의 뜻에 따라 정책결정을 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몫이지 재판의 준칙일 수 없다. 독일 법정에서 '국민의 이름으로' 판결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여론에 따라 판결한다는 뜻이 아니라 법관이 적용하는 법률이 국민의 이름으로 제정되었다는 점에서 '법률에 따라 판결한다'는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것에 불과하다. 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법 적용의 평등이지 때때로 변하는 여론이 아니다. 여론재판은 반법치적인 인민재판이나 다를 바 없다. 법관이 누리는 강력한 신분보장과 독립성은 바로 여론을 의식하지 말고 재판하라는 주문이고 보호장치다.

    대법원장은 앞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자제하고 '법관의 독립을 지켜내지 못한 아픈 과거'를 거울삼아 안팎으로 사법권 독립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