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인 박세일 전 의원이 쓴 시론 '문제는 양극화가 아니라 신 빈곤층이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좌파적 시각으로 문제를 보면 좌파적 해결책이 나온다. 20세기적 사고로 문제를 보면 이미 실패한 20세기적 해결책밖에 안 나온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거론되고 있는 양극화의 문제는 문제설정이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사민주의(社民主義)적인 좌파적 문제설정이다. 그래서 그 해결책이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 요즈음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 취업이 어렵고 소득이 없어서 생활이 힘든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먼저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를 ‘양극화의 문제’로 이해하면, 즉 증대하는 빈부격차의 문제로 보면, 부자한테서 세금을 더 거두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식의 해결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일견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이것은 크게 잘못된 정책방향이다. 

    반면 우리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이 증대하는 문제를 있는 대로 ‘신(新)빈곤층의 문제’로, 즉 새로운 빈곤층 증대의 문제로 이해하면, 그 해결책은 어떻게 경제를 활성화시켜 이들에게 소득기회를 높여줄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하게 된다. 어떻게 투자를 촉진하고 소비를 늘려 이들에게 고용이나 취업 기회를 확대할 것인가, 이들 신빈곤층에게 직업교육과 훈련기회를 제공하여 취업능력과 자활능력을 어떻게 높여줄 것인가 등의 방향으로 정책을 모색하게 된다. 

    모두가 일자리 창출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문제를 양극화로 보는 사람들은 일자리 창출의 방식을 부자한테서 세금을 더 거두어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 식으로 하려고 한다. 이미 유럽 사민주의 국가에서 실패한 정책이다. 반면에 문제를 신빈곤층의 문제로 보는 사람들은 일자리 창출을 경제의 활성화와 민간부문의 취업기회 확대를 통하여 하려고 한다. 

    지난 20세기 후반기의 남미 포퓰리즘 국가나 유럽 복지국가들의 경험을 보면 ‘가난의 문제’를 빈부격차의 문제로 접근한 나라는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가난의 문제를 경기활성화와 경제발전의 문제로 이해하여 이 문제에 접근한 나라들은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증가하였다. 왜 그런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안 거둬 가난한 사람들이 증가하였는가? 아니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경제성장이 아시아 평균치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왜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가? 한마디로 정치가 정상이 아니고 정부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실패한 역사라든가, 이 사회의 주류세력을 교체하기 위하여 수도 이전을 해야 한다든가, 남북문제만 잘 풀리면 다른 것은 다 깽판 나도 좋다든가 등등 이러한 황당한 소리를 하는 정부 밑에서 어떻게 경제가 잘 돌아가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어떻게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하고 중산층들이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현 집권층의 국정운영의 총체적 파탄이 신빈곤층의 증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감세냐 증세냐’ 하면서 또 국론을 엉뚱한 방향으로 분열시키고 대립시키려 하고 있다. 또 새로운 증세(增稅)라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구사하여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명히 경제를 더욱 엉망으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국민·학계·정계·언론 모두가 나서서 더 이상의 대한민국의 추락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