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전진우 논설위원이 쓴 '정도전이 노무현에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나, 삼봉(三峯)이오, 정도전(鄭道傳)이외다. 임금을 모시던 신하였던 처지에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이렇듯 수작을 건네는 것이 어찌 예(禮)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 아니리오. 하지만 민주국가의 주인은 백성이요, 대통령은 신하라고 할진대 결례의 작심(作心)을 용허(容許)하기 바라오. 

    아무튼 감읍(感泣)했소이다. 나, 이방원의 칼에 목숨을 잃은 지 어언 600여 년 세월이 흘렀거늘 대통령께서 잊지 않고 대접해 주시니 과연 내 이승의 삶이 헛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그려. 대통령은 “조선시대 500년을 지배한 혁명을 성공시킨 인물은 정도전”이라며 “당장 권력의 승패가 아니라 제도와 문화와 이념, 이런 것들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지요. ‘조선왕조의 기틀을 세운 진정한 혁명가’로서 역사에 기록된다면 실로 무한한 영광이로소이다. 

    조정의 친원(親元)정책을 비판했다가 유배를 당한 내가 1383년 여름 함주(함흥)로 이성계를 찾아간 것은 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었소. 나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창업(創業)으로 읽었지요. 썩고 병든 고려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성혁명(易姓革命)도 피할 수 없다고 믿었소이다. 1388년 요동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回軍)하고, 1392년 조선왕조가 들어섬으로써 나의 창업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창업보다 어려운 것은 수성(守成)이지요. 나는 그것을 위해 군주와 관료와 백성이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는 유교 국가를 꿈꾸었습니다. 임금은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백성은 임금을 어버이처럼 섬기며, 유능하고 올곧은 관료가 나라를 이끌어 가는 그런 나라 말이오. 유덕자(有德者)가 인정(仁政)을 베풀면 그것이 곧 군주와 백성이 일체화되는 길이 아니겠소. 그러기 위해서는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군주의 하늘’이라는 민본(民本)정치가 뿌리내려야 한다는 게 나의 믿음이었소이다. 

    비록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다툼 속에 나의 소망이던 민본정치가 퇴색했다고는 하나 면면히 이어진 그 정신이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한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만큼은 자부하고 싶구려. 

    그 점에서 드릴 말씀이 있소이다. 대통령은 세종, 정조에 대해 사후(死後) 통치이념을 이어갈 토대를 마련하지 못했으니 ‘실패한 군주’가 아니겠느냐, 특히 정조의 경우 “그가 사망한 바로 그해 사화(士禍)가 일어나 그를 따르던 정치가들이 일망타진됐고 통치이념도 말짱 도루묵이 됐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사란 그렇게 단절되는 것은 아니지요. 세종 대의 문화는 영조 정조 시대에 르네상스를 이루었고, 정조의 개혁은 고종의 근대화 열망으로 이어졌지 않았소이까. 일단의 정치세력이 권력다툼에서 패배한다고 한 시대의 문화와 정신마저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두 임금을 섬겼다는 이유로 죽은 뒤 ‘소인(小人)’으로 핍박받던 내가 무려 5세기나 지난 고종 대에 이르러 복권(復權)될 수 있었겠소? 

    대통령은 며칠 전 신년연설에서 “임기 안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고 할 일은 뚜벅뚜벅 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지도자라면 당연히 그래야지요. 다만 그 속에 ‘혁명의 열정’을 숨기고 있다면 그것은 당치 않습니다. 하물며 그런 속내에서 나, 삼봉의 이름을 자주 입에 올리신다면 낙심천만이 아닐 수 없소이다. 

    무릇 세상사에는 때가 있는 법이지요. 내가 처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의 시대정신은 창업이나 혁명이 아닌 수성이라고 봅니다. 

    수성은 계지술사(繼志述事)라 했소이다. 선대의 뜻을 계승하되 자질구레한 문제들은 현실에 맞게 고쳐 나가라는 뜻이지요. 이는 경장(更張)이나 개혁이지 뿌리부터 바꿔치는 창업이나 혁명은 아니올시다. 개혁이야 어느 시대라도 필요한 것이 아니겠소. 그것에 자꾸 혁명의 바람을 불어넣으려 하면 민심이 불안하고 세상이 소란해질 수밖에 없지요. 

    부디 통합의 정치로 수성하시오. 그것이 600년 전 나, 삼봉이 꿈꾸던 민본의 세상을 이루는 길이 아니겠소. 강녕(康寧)을 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