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0일자 사설 '과거사로 국가혼란 얼마나 더 키울 셈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부여당이 지난날의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再審)을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을 과거사위원회에 주고, 6·25전쟁 전후에 있었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유족에게 의료비를 보조한다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고 사법권 침해 논란을 부를 위험한 발상이다. 

    과거사위가 재심을 신청할 수 있게 되면 지금까지 제한적으로 인정되던 재심사유의 폭이 크게 넓어진다. 과거사위가 요청하더라도 재심 여부의 결정권은 법원에 있으므로 사법권 침해가 아니라고 정부여당은 설명한다. 그러나 과거사위가 재심을 신청하면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사법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과거사위의 요청에 따라 사법부가 독재정권 시대의 확정판결을 자꾸 뒤집다 보면 법원의 권위와 법의 안정성이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국민의 신뢰 속에서 정상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민간인 학살사건 유족에게 의료비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도 국가 정체성을 흔들고 이념 대립을 격화시킬 우려가 높다. 남측 군경(軍警)이나 우익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공산당원의 유족이 의료비와 생활비를 지원받게 된다면 공산당에 의해 학살당한 우익인사의 유족은 김정일 정권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야 하는가. 50여 년 전 전쟁의 혼란 속에서 벌어진 일을 끄집어내 상처를 들쑤시고 이념 대립을 부추기는 정권이 과연 정상인가. 이렇게 무리한 법을 만들려는 것은 노무현 정권 사람들의 좌경적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은 반인권적 국가범죄 중에서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사건은 무조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내용도 특별법에 담으려고 한다.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실익(實益)도 별로 없다. 독재정권이 끝난 1987년 6월 이후에는 최장 공소시효(15년)를 적용하더라도 공소시효 배제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 범죄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입으로는 ‘미래 대비’를 말하면서 끊임없이 과거로 달리는 정권을 언제까지 쳐다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