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에 안국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쇠파이프 경제학'이라는 제목의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의 책임과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다짐을 드립니다." 지난 연말 시위 농민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 사과성명에 나오는 말이다.

    7일 전.의경 부모들은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노동계와 농민단체는 폭력시위를 생존권을 지키려는 민중의 절절한 몸부림으로 정당화하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 때문에 대통령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시위와 관련된 불행한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대통령의 담화나 정부 정책에 폭력시위를 없애는 근본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일찍이 군사정권 시절에 시위에 관한 경제이론을 편 바 있다. 이제 민주정부 시절에 맞는 시위에 관한 이론을 다시 펴 폭력시위를 없애는 근본 방안을 음미해 본다.

    1988년 필자가 쓴 '최루탄 경제학' 이란 글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시위는 민주주의를 소비하려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쇼핑행위다. 일상적인 쇼핑행위를 막기 위해 최루탄 '도매상'인 정부는 '소매상'인 전경을 통해 최루탄을 '소비자'에게 '덤핑'하고 있다. 이는 '불공정 행위'요, '부등가 교환'이라고 생각하여 소비자들이 개발해 낸 것이 돌멩이와 화염병이다. 최루탄은 생산기업과 도매상 사이에서는 화폐와 교환되지만 소매상과 소비자 사이에서는 돌멩이나 화염병과 물물교환되는 것이다. 이 원시적인 물물교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평화적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국민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제 평화적 시위의 자유는 보장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최루탄을 쓰지 않기로 선언했다. 그 선언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따라서 최루탄과 '최루탄 경제학'은 사라졌다. 그 대신 등장한 것이 쇠파이프(와 각목과 죽창)이고 이를 '쇠파이프 경제학'으로 설명해야 할 것 같다.

    평화적인 시위를 하려면 쇠파이프는 필요 없다. 그러나 평화적인 시위로만 끝내면 세상이 별로 주목하지 않고 반응도 밋밋하다. 폭력적인 시위를 해야 생존권을 외치는 절박성과도 부합하고 반응도 커진다. 폭력시위가 과격해질수록 더 큰 주목을 받고 결국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집회 지도부나 일부 선동자가 이런 전략적 사고를 가지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쇠파이프이다.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가지지 않으면 전경이 방패와 곤봉을 가질 이유가 없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논쟁에서 군사정권 때에는 최루탄이 먼저였지만 현재는 쇠파이프가 먼저다. 군사정권 때 평화시위를 보장하고 최루탄을 없애야 했다면 평화시위가 보장된 오늘날에는 쇠파이프를 없애야 한다.

    어떻게 쇠파이프를 없애는가? 시위자들의 전략적 사고가 통하지 않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폭력시위는 결코 용인될 수 없고 얻어내는 것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폭력시위를 없애는 근본 방안이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서 이런 선언도 같이 나왔어야 했다.

    폭력시위는 민주주의를 능멸하는 불법행위다. 농민을 사망케 한 책임자는 폭력시위를 주도한 사람들과 폭력시위를 방임한 정부다. 그동안의 폭력시위로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그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한 책임자도 마찬가지다. 일반 국민의 책임과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공권력과 법치의 책임을 이 정부는 너무 가볍게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