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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울지않겠다던 철칙, 영화'태풍' 보며 깨져"

입력 2005-12-29 09:37 | 수정 2005-12-29 09:38
조선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란에 이 신문 통한문제연구소 강철환 기자가 쓴 '우리들의 영화, 태풍'이라는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 탈북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다. 처음으로 북한 현실을 제대로 다룬 영화가 나왔으니 한번 보라는 것이었다. 그의 권유로 같은 탈북자인 아내와 함께 찾은 영화는 ‘태풍’이었다. 아내는 “대한민국 최고의 미남인 장동건이 탈북자로 나온다”며 좋아했다. 나도 “매력적인 이미연이 탈북 여성으로 나와 기분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세련된 외모의 장동건과 이미연이 어둡고 슬픈 탈북자들의 이미지를 얼마나 잘 소화해 낼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그런 염려는 바로 사라졌다. 우선 그들이 쓰는 함경도 사투리부터 진짜였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북한 사투리는 남한식으로 가공된 것이지만 장동건과 이미연은 정말 함경도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어릴 적 북한 요덕수용소에 있을 때부터 “절대 울지 않는다”를 삶의 철칙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태풍’을 보면서 이 철칙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탈북자라면 누구나 겪었을, 가슴을 에는 탈북 장정(長程)이 눈앞 스크린에 펼쳐지면서 나는 속으로 통곡을 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옆에 앉은 아내도 울고 있었다. 

주인공 최명신(장동건)과 최명주(이미연) 남매는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해 제3국의 한국대사관을 찾았지만 한국행을 거부당한다. 그리고 북한으로 강제송환되던 중에 다른 가족들은 북한군에게 사살되고 누나 최명주는 인신매매단에 팔려가게 된다. 어린 최명신은 부랑자가 돼 만리타국을 떠돌다가 동남아 국가의 폭력조직에 들어가게 되고 나중에 조직의 보스가 된다. 20년 만에 만나는 남매의 상봉 장면은 혈육이 뿔뿔이 흩어져 각지를 떠돌다 극적으로 만나는 탈북자들의 실상 그대로다. 피맺힌 탈북자들의 한(恨)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굶주리는 동생을 먹이려고 중국 가정집에 들어가 빵을 훔치다가 붙잡힌 누나는 중국인에게 강간당한다. 그렇게 구해온 ‘피눈물의 빵’을 씹는 동생을 누나가 바라보는 장면은 탈북자들에게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고, 가족의 모습이다. 

‘태풍’ 속의 탈북 가족은 현실 속에 넘쳐난다. 목숨 걸고 북한 국경을 넘어 한국대사관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당하고 쫓겨났던 탈북자들의 심정은 영화 주인공과 다를 수 없다. 구원의 동아줄이라 믿고 찾아간 한국대사관의 문턱에서 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간 탈북자들의 원한은 하늘에 사무칠 수밖에 없다. 탈북자들에 대한 한국의 냉대와 무관심은 그대로 북한 내부에 전해져 주민들 사이에 반(反)남한 감정이 퍼져갈 정도다. 영화의 주인공은 자기 가족을 내쫓은 한국 외교관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복수를 선택한다.

그동안 북한이나 남북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았고, 흥행 성공을 거둔 작품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탈북자로서 보기에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영화는 ‘태풍’이 사실상 처음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 탈북자들 사이에선 ‘태풍’을 ‘우리들의 영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한 인권 문제나 탈북자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꼭 한번 이 영화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젠가는 ‘쉰들러 리스트’처럼 북한 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영화도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탈북자들의 아픔과 한을 실감나게 보여준 장동건·이미연씨에게 탈북자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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