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6일자 오피닌언면 '아침논단'에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눈폭탄이었단다. 그 직격탄을 맞았던 호남과 충청 지방에 이제는 복구를 위한 ‘온정의 폭격’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한국인은 남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야박하다” “나누는 것에 인색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해주는 것 같아 고맙기까지 하다. 

    구호단체에서 일하면서 나는 우리의 인정이 대단히 고품질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다는 올해 우리 단체는 55년 역사상 최대의 모금액을 기록했다. 고액 기부자는 줄었지만 소위 개미 군단이라는 소액 후원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덕분이다. 정기 후원자 수도 11만명이 넘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한 달 수입이 200만원 이하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는 거다. 그 마음, 정녕 아름답고 훌륭하지 않은가. 

    한편 궁금하다. 왜 부자나 고소득 전문 분야 사람들은 돈을 잘 내지 않는 걸까? “우리나라 기부문화는 김밥 할머니들이 이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설문 조사해 보면 대다수는 나중에 돈을 더 많이 벌면 내겠다고 한다. 반면 풀뿌리 서민들은 지금의 가벼운 주머니라도 털어서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정성과 사랑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실제로 국내외에 대형 재난이나 이웃의 딱한 사정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러나 나눔에 관한 얘기만 하면 양측 공히 반드시 나오는 말이 있다. “내가 낸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를 못 믿겠어요.” 최근 통계에서도 성금을 내지 않는 사람의 79%가 구호단체들의 신뢰성을 지적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자기가 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기부한 단체의 홈페이지에서 연례 보고서를 찬찬히 뜯어보면 된다. 아동 후원을 하는 경우에는 후원 아동의 사진을 동봉한 발달 보고서가 후원자에게 갈 것이고, 쓰나미(지진해일)나 파키스탄 긴급 구호 등 지정 성금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고를 하고 있다. 연말 정산용 기부금 영수증을 챙기면 세금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만날 “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겠다”고 하지 말고 부디 꼼꼼히 살펴보길 바란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돈을 낸 사람의 귄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후원자들이 기부금 사용처에 대해 꼼꼼하면 꼼꼼할수록 구호단체들도 더욱 정신차려서 정확하게 보고하는 풍토가 조성될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함께 투명하고 신뢰받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서로 도움과 믿음을 주고받는 세상, 이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이 아니겠는가? 

    물론 나눔은 돈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결식 아동 도시락 싸기, 독거(獨居) 어르신 목욕 시키기 등의 노동 봉사자와 더불어 번역·사진 촬영 등 재능 봉사자도 많이 필요하다. 놀라운 것은 이런 봉사활동도 ‘유전’되고 ‘중독’된다는 점이다. 엄마가 봉사활동하는 집의 아이들은 뭐라도 한다. 초등학교 때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던 아이는 중·고등학교에 가면 우편물 봉투 붙이기, 대학생이 되면 행사 진행 보조 등 봉사활동을 찾아서 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중독’이다. 

    나의 첫 자원봉사는 전화 심부름이었다. 예닐곱 살 무렵 전화라곤 기자였던 아버지 덕에 온 동네에 딱 한 대 있었을 때 우리 집으로 온갖 전화가 왔다. 누구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누구네 학생이 대학에 붙었다 등 이런 저런 소식을 동네방네 전하는 사람은 말 빠르고 동작 빠른 나였다. 귀찮을 수도 있는 그 잔심부름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났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기꺼이 남을 도우면 나 자신이 즐겁고 행복해진다는 그때의 강렬한 체험은 긴급구호팀장이 된 지금까지도 나의 바탕그림이 되고 있다. 

    “감정적이다” “일회성이다” “대형 재난과 연말연시에 몰린다” 등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음속에 벌건 숯불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가벼운 바람에도 불꽃이 살아나면서 곧바로 따뜻한 온기를 전할 수 있는 거라고. 가만히 놔두면 흰 재로 사라져 버릴 그 아까운 마음의 숯불, 그 숯불을 우리 모두 떠오르는 해의 진홍빛으로 활활 태워보고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