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 '경제초점'란에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양극화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이다. 최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논의는 많지만, 양극화의 정확한 개념이나 원인과 해법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양극화란 대상 집단이 오직 두 개로 명확하게 구분됨을 전제로 한다. 또한 각각의 집단 내에서 동질성은 강화되면서, 두 집단 간의 격차는 확대되는 과정이 양극화이다. 예를 들어 중산층이 없어지면서 개인들이 부유층과 빈곤층으로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다고 하자. 이때 각 계층에 속한 개인들의 소득수준은 비슷해지지만, 부유층과 빈곤층 간 평균소득의 차이는 확대되는 과정이 양극화이다. 

    흔히 소득분배의 악화와 양극화의 개념을 혼용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구분할 때 두 개념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다른 조건은 일정한 상태에서 빈곤층에 속한 개인들의 소득격차가 확대되면 소득분배는 악화되지만, 집단 내에서의 이질성이 커지므로 양극화는 완화된다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 원리가 확산되면 기여분만큼 또는 노력한 만큼 차별적인 보상이 주어지므로 소득분배는 악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보다 많은 계층이 새롭게 탄생하고 또한 동일 계층 내에서의 소득도 다양하게 되므로 양극화는 오히려 완화될 수도 있다.

    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최대 국정목표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정치적인 구도로서 양극화 해소는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현 정부가 추구하는 양극화 해소 정책은 여러 가지 오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먼저, 단순화의 오류가 있다. 오늘날의 한국 경제는 보다 복잡다기해지면서 광범위한 계층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들의 규모나 경쟁력은 과거보다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으며, 개인들의 능력이나 소득 분포도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이와 같이 연속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두 개의 계층으로 무리하게 분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경제 현상에는 이분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취하고 있다는 정책도 궁극적인 목표나 정책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각종 세금으로 부유층의 평준화를 도모하거나 각종 공적(公的) 이전을 통해 빈곤층의 평준화를 유도하는 정책들은 집단 내 동질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실제로는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는 정책들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은 집단 간 격차를 축소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의 궁극적인 목표가 모든 구성원들의 획일화가 아니기 때문에 집단간 격차 해소 자체가 궁극적인 정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양극화보다 더 무서한 병은 양극화 해소를 획일화로 착각하는 우(愚)를 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양극화 해소의 궁극적 목표는 개인과 기업들이 보다 많은 다양한 계층으로 분화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볼 때 보다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확대됨을 의미한다. 능력에 따라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노력과 능력에 따라 보상의 규모도 차이가 남을 의미한다. 획일화를 위한 양극화 해소가 아니라면 시장과 경쟁 원리를 제대로 도입하는 것이 양극화 해소의 궁극적인 목표와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가장 시급한 양극화 해소 방안은 집단이기주의를 타파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대규모 기업집단들이 집단이기주의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집단 내의 동질성은 강화되지만 집단 간의 격차는 확대되고 이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양극화 해소의 1차적인 정책목표와 수단은 개별 이익집단들의 집단이기주의와 영향력을 줄이는 데 중점이 두어져야 한다. 집단 내 그리고 집단 간 획일성을 조장하는 양극화 해소 정책을 지양하고, 보다 다양한 계층으로 분화되고 계층간 차이가 정당성을 인정받는 양극화 해소 정책이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