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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헤야가 어머니 얼굴도 못 본채 실려 간 그날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학교 정문 앞에 열세 살의 옹헤야가 서 있었다. 교복 상의는 젖었고 운동화엔 물이 고였다. 우산이 없었다. 그때 검은 벤츠가 학교 담벼락 앞으로 다가와 멈췄다.
문이 열리고 싯누런 인민복에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나타났다. 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웃었다. 열세 살의 옹헤야도 천진하게 그 웃음에 반응했다. 집에 태워준다는 말에 옹헤야는 별다른 의심 없이 차 안으로 발을 들여놨다.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저 멀리, 우산을 든 엄마가 학교 정문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
차창을 두드렸지만 차는 이미 골목을 돌아버렸다. 북한 해외공작원 양성 기관들의 비밀 유지는 납치로부터 시작된다. 국내의 존재부터 깨끗이 지우기 위해서다.
북한 부모들에게 자식을 당의 전사로 바치는 것은 공화국 공민의 영광이고 의무였다. 항의하면 그게 오히려 반역 범죄가 된다.
옹헤야의 특이한 외모는 해외공작 전문 부서인 사회문화부의 표적이 됐다. 납치된 옹헤야는 13세부터 영어와 불어를 배웠다.
하루도 빠짐없이 고된 격술 훈련을 받기도 했다. 손에는 장난감이 아닌 진짜 총을 들어야 했다. 성인이 되어 사회문화부 복장을 한 옹헤야는 우울증을 앓다가 사망한 어머니 소식을 듣게 됐다. 상부에선 그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서 어머니 장례식에 가는 것도 막았다.
그는 다음날 사회문화부 제1부부장 사무실로 불려갔다. 사회문화부를 비롯한 북한의 중요 부서들은 부장 직제가 공석이었다. 유일지도체제의 권한을 집중하는 차원에서 김정일의 자리로 남겨둔 것이었다. 그런 부서들의 실권자에겐 제1부부장 직함이 주어졌다. 옹헤야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제1부부장은 지그시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 연락소 전투원들 어깨에는 왜 별이 없는 줄 아나?"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팔에 붙은 노동당 마크를 짚었다.
"우린 사회적 지위도, 개인의 이름도 없어. 오직 이 하나! 당마크에 목숨을 건 이름 없는 영웅들이야."
"저를 잃고 정신병 앓다 돌아가신 어머닙니다. 묘비에 묘주 이름도 없이 묻혀 있는데…"
옹헤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1부부장이 책상을 쾅! 내리쳤다. 사무실이 울렸다.
"그래서 우리는 ‘당의 아들’인 거야! 고작 20대인 네 놈에게 중책을 맡기려던 내가... 따라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자를 집어 손에 쥐었다.
"직접 보여주며 이야기하자."
옹헤야가 제1부부장과 함께 차를 타고 간 곳은 평양시 대동강변을 끼고 은밀하게 숨어 있는 사회문화부 산하 의암초대소였다. 정원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잔디 끝에 이슬이 매달려 있었고 꽃들은 고개 숙이고 목례했다. 제1부부장은 모자를 손에 들고 앞서 걸었다. 그 뒤를, 옹헤야가 거리를 두고 따랐다. 상관이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네가 몇 살 때 우리한테 왔지?"
옹헤야는 대답을 머뭇거리지 않았다.
"열세살입니다."
제1부부장은 새삼스럽게 쳐다보다가 정원 끝에 있는 건물로 향했다.
"들어가자."
두꺼운 문이 부드럽게 열리자 안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곳은 온실처럼 꾸며진 넓은 로비였다. 화초와 향이 은은했다. 그 안쪽 긴 소파에 두 아이가 마주 앉아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쯤, 소녀는 열여섯 정도로 보였다. 서로 손을 맞잡고 있었다. 소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입술을 깨물고, 목이 메인 채로.
"너만 아버지 어머니 보고 싶어? 나도 매일 보고 싶다고."
그는 이어 말했다.
"그래도 우리 약속했잖아. 서로 울지 않기로… 울어봤자 소용없다고."
하지만 소녀는 더 서럽게 울었다. 그 말이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끌어올렸다. 제1부부장이 발소리를 일부러 크게 내며 애들 앞으로 걸어갔다. 두 아이는 황급히 손을 놓았다. 눈물을 급히 훔쳐도 숨결이 지워지지 않았다. 제1부부장의 목소리가 정제된 위압으로 떨어졌다.
"평양에 온 지 얼마나 됐는데 아직 인사도 제대로 못 해?"
소년이 먼저, 그 뒤를 따라 소녀도 단정히 차렷 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노동당 사회문화부 강습생 김영남."
소년은 1978년 한국 군산 앞바다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한국인이었다.
"노도당 사회무나부… 강쑤생… 요코타 메구미."
소녀는 1977년 일본 니가타현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이었다.
2006년, 북한은 처음으로 김영남을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으로 공식 등장시켰다. 그가 세상에 대고 강하게 증언한 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녀가 진짜로 죽었다는 것, 그 시체를 본 사람은 자신이라는 증언이었다.
그전까지, 북한은 일본인 납치 사실을 철저히 부인해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모발, 유골, 혈액 분석 등 물적 증거를 들이대자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김정일은 처음으로 납치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김정일은 그 자리에서 그 모든 납치가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망동이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사실상, 그 비극의 주범은 그 자신이었다.
전 세계에서 드러난 북한의 납치 범죄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으로도 한국, 일본, 태국, 루마니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진행되었다. 국경을 넘은 이 범죄들의 공통점은 1970년대 김정일이 후계자로서 대남공작부서에 깊숙이 손을 넣었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북한 공작기관들은 간첩 침투 후 현지 사회에 정착하는 걸 최우선 목표로 '현지화'를 내걸었다. 외모, 말투, 정서, 습성까지도 그 지역에 맞춰야 했다. '아동 현지화'의 노선 아래 해외의 아이들을 납치했다. 그중 일부가 김영남과 요코다 메구미다.
하지만 문제는 즉각 드러났다. 부모와 억지로 떼어놓은 아이들의 정서불안은 곧바로 언어습득의 장애로 이어졌다. 감정을 억누르려고 할수록 그 말들은 더 엉기고 비틀렸다. 인간을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고 진행했던 외국인 납치 공작은 결국 실패한 작전이 되었다.
"아동 현지화 공작은… 문제가 많아. 질질 짜기만 하고 말이야. 국외 현지화는 완벽한데, 국내 현지화는 전혀 안 돼. 아까운 공작금만 날렸지."
제1부부장은 로비 유리창 너머 느릿하게 걸어 나가는 두 아이를 보며 혀를 찼다. 그 말투엔 연민도 없고 반성도 없었다. 오직 비용만 계산돼 있었다.
"가자. 아동 현지화 공작 실패 후 나온 새로운 걸 보여줄게. 기대해도 좋아."
간부의 말에 등 떠밀려 가면서도 옹헤야는 한 번 더 그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들은 둘 다 초면인데 등이 굽은 건 자신 같았다. 뒤로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옹헤야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적셨던 그 눈물 한줄기와 겹쳐 보였다.
제1부부장은 긴 복도를 지나며 발걸음을 조율하듯 천천히 걸었다. 구두 끝이 반들반들한 바닥에 또각거리며 울렸다. 그 소리는 자신이 걸어온 공작의 역사처럼 거침없고 오만했다. 복도의 끝에서 그는 하나의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문손잡이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입가엔 미세한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때만 나오는 희열이 번득였다.
"놀라지 마. 이 공작은 절대 실패할 수 없어."
흥분한 그 목소리엔 확신에 들뜬 이의 자만감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어린아이가 숨겨놓은 장난감을 꺼내 보이듯 익살스레 소리쳤다.
"짜잔."
그러곤 문을 활짝 열었다. 옹헤야는 한 걸음 문 안으로 발을 들이려다 뒷걸음쳤다. 숨이 멎었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무언가가 폐 깊숙이 걸리며 갑자기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곳 형광등 아래 혼혈 아이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다섯 살 전후로 되어 보였다.
각기 다른 피부색과 눈동자를 지닌 아이들이었다. 짙은 갈색 피부, 푸른 눈, 자기처럼 연한 금발의 곱슬머리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었다. 장난감을 나눠주던 군복 차림의 여성이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표정엔 훈련된 복종과 자부심이 얹혀 있었다.
아이들 사이를 지나는 옹헤야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마주하는 불가해한 감정의 진동이었다. 제1부부장은 뒷짐을 지고 말했다.
"당성이 투철한 여자들을 공작조와 함께 해외로 내보낸 결과야. 임신 공작으로 다양한 인종을 쓸어모았지."
그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정말 많은 공작금이 들어갔어. 태국, 인도, 나이지리아, 서방, 중동까지… 다 우리의 자산이지."
그는 옹헤야 쪽으로 몸을 돌려 옷깃을 천천히 여며주었다. 손가락이 천을 따라 내려오며 조심스레 단추를 맞췄다. 마치 대장장이가 자신이 만든 칼날을 덮는 칼집을 만지는 것 같았다.
"이틀은 안 된다."
그는 낮게 말했다.
"오늘 밤만… 잠깐, 고향 다녀와."
그 말엔 어머니의 묘소도, 비석도, 풀 한 포기도 없었다. 고향이라는 단어는 되돌아갈 수 없는 장소를 상기시키는 금지어 같았다.
"우리에게 이 영감을 준 건 바로 너야. 외모는 외국 현지화, 내면은 당의 전사. 내일부터 네 임무는 이 아이들을 너처럼 훌륭한 해외공작원으로 키우는 거야."
그는 기대 물씬한 눈동자로 옹헤야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엔 자신이 만든 설계도의 한 선을 보는 성취감이 담겨 있었다. 옹헤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네가… 이 아이들의 아버지가 돼야 해."
그 말과 함께 방 안의 조명이 순간적으로 깜빡였다. 아이들이 천장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들 중 검고 눈망울이 깊은 애가 서툰 조선말로 조심스레 물었다.
"…아버지예요?"
그 말을 했던 건, 흑인 아이였다. 그 낯선 울림의 조선말이, 지금 다시 수용자 옷을 입은 옹헤야의 입에서 되살아났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 아이가… 저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예요?' 이렇게요."
정치부장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의 얼굴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낯선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놀람과 동요, 망설임과 침묵— 그의 직책으로는 본래 허용되지 말아야 할 감정들이었다. 옹헤야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숨을 고르지도 않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정치부장을 내려다보았다.
"선생님도… 자식으로 태어나셨잖습니까. 이젠 부모가 되셨구요."
정치부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아직 말로 맺히지 못한 생각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 여쭙겠습니다. 부모 품에서 고이 자라는 자식을 억지로 떼어내고, 외국까지 가서 뛰놀던 아이들을 납치하고, 심지어 아녀자를 외국으로 내보내 현지인과의 임신도 공작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하는 이 당에…"
정치부장의 눈이 흔들렸다.
"충성이 양심입니까? 아니면 반역이 양심입니까?"
정치부장은 말할 권리를 상실한 사람처럼 옹헤야를 쳐다보기만 했다.
"어떤 선택이 인간이 할 짓입니까?"
옹헤야는 그 질문을 끝으로 정치부장의 눈을 마주 보았다. 서로의 시선은 오래 이어졌다. 그 정적은 고요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옷을 입었어도 무언가가 말해지고 있고 동시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