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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도성진은 감시반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삽자루를 움켜쥐고 숨을 고르는 표정이었다. 그 앞에는 옹헤야가 있었다. 완장을 차더니 한순간에 바뀐 듯한 그의 표정에 성진은 얼떠름했다.
"내가 뭘 잘못해서 기합 주는 거예요?"
뒤에 밀려나 있던 미꾸라지가 무리를 헤치며 들어왔다. 손은 이미 주먹으로 말려 있었다.
"네가 반장이야?"
미꾸라지가 화 난 대상은 도성진보다 옹헤야였다.
"기합이 무슨 혼내는 거야! 때려야…!"
그가 도성진의 머리 위로 팔을 들자 옹헤야가 확 밀쳐버렸다. 미꾸라지는 중심을 잃고 뒤로 벌렁 넘어졌다. 감시반원들도 일제히 주춤했다. 눈빛만으로도 서늘한 옹헤야의 두 주먹은 안전장치가 풀린 무기 같았다. 말이 없어 더 위험해 보였다.
미꾸라지는 참자니 반장 체면이 구기고 덤비자니 맞을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시선은 도망치며 허둥거렸다. 그러다가 눈에 뭔가 걸렸다. 화는 일단 접고 의아하게 그쪽을 쳐다봤다. 보이는 게 믿기지 않았는지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다가갔다. 거기에는 김성근이 넓게 자리 잡고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이건 일할 때도 이러고 앉아 있어?"
미꾸라지는 정말로 궁금해서 물었으나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삽을 무릎에 눕힌 채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감시반장이 지금 묻잖아. 넌 왜 그러고 있어? 일 안 해?"
미꾸라지가 소리쳤다. 김성근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쟤랑 같이 일하라고 했수꾸마."
미꾸라지는 금방 들은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저 새끼는 맞고! 너는 너대로 일해야지!"
미꾸라지가 답답해서 발을 굴렀어도 김성근의 대답은 똑같았다.
"같이 일하라고 했수꾸마."
"그니까! 쟤는 쟤고, 너는 너잖아!"
"같이 일하라고 했수꾸마."
"아니. 너는, 넌 일하라고!"
"같이 일하겠수꾸마."
미꾸라지는 원통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히야. 이 돼지 희한하네. 그럼 같이 맞을래?"
김성근은 눈을 들었다. 그는 분명히 숫자를 말했다.
"지금이 두 번째꾸마."
미꾸라지는 할 말을 잃었다. 말문이 막힌다는 경우가 이런 건가 싶었다. 그는 감시반을 향해 소리쳤다.
"야, 여기 다들 와 봐. 우리 이 상황을 좀 같이 이해해보자."
감시반원들이 김성근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도성진 앞에는 옹헤야만 남았다. 그는 성진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너 지금 최종배가 벼르고 있어. 저놈들이 널 다리 하나라도 부러뜨리려고 작정한 거야."
"난 잘못한 거 없어요. 잘못한 건 최종배지."
옹헤야는 도성진에게 숙였던 허리를 펴며 긴 숨을 내쉬었다.
"너, 내가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 알려준다고 했지. 이것도 그중 하나야. 미워도 네 담당 보위원과는 원수지는 게 아냐."
도성진은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바로 그때였다. 뒤편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2작업반 반장이었다. 헐떡이는 숨을 안고 그는 외쳤다.
"감시반 신입! 감시반 신입!"
그 목소리에 옹헤야가 고개를 돌렸다. 단단하게 묶여 있던 표정이 그 순간 문득 흐려졌다.
"정치부장 선생님 담화! 중대장 선생님 기다려."
옹헤야의 얼굴 위로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앞에도 뒤에도 걱정덩어리였다. 그는 마지못해 반장을 따라갔다. 그 뒷모습은 바위가 매달린 것처럼 무거워 보였다. 2작업반 반장은 중간에 돌아서 미꾸라지를 향해 슬쩍 눈을 깜빡였다. 그것은 분명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자들만의 신호였다.
옹헤야와 반장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미꾸라지는 들고 있던 손도 잊고 그 자세로 동상처럼 서 있었다. 그 손이 내려졌을 땐 입가에선 살기 띤 웃음이 번졌다.
도성진을 향해 감시반원들이 몽둥이를 틀어쥐며 다가들었다. 주먹을 쥐고, 어깨를 펴고, 포위를 좁히는 동물 떼 같았다. 그 속으로 긴 창대 같은 김성근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그 애한테서 다들 물러납소꾸마. 나… 일어서게 하지 맙소꾸마."
감시반원들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그 중심엔 미꾸라지가 서 있었다.
"히야… 저 돼지 새끼. 너 얻어터지고 싶어?"
김성근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의 묵직한 입술이 소리내며 열렸다.
"세 번째 경고하꾸마. 이젠 선 넘지 맙소꾸마. 정말 큰일 나꾸마."
감시반원들이 킥킥 웃었다. 미꾸라지는 일부러 요란하게 웃어 젖혔다.
"애들아, 나 지금 세 번 경고 받았니?"
그 말에 감시반원들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큰일, 큰일, 안 나 큰일! 이 돼지새끼야—"
김성근은 몸이 움씰거렸다. 그가 일어서는데 주변이 덩달아 들고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의 두 손이 불끈 쥐어졌다. 주먹이 아니라 바위를 들고 오는 것 같았다. 도성진은 가까워지는 김성근을 걱정 반 놀라움 반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미꾸라지는 멋있게 팔을 앞으로 뻗쳤다. 감시반이 우르르 김성근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덮친 자가 튕겨 나가고 잡던 자는 뒤집혔다. 몽둥이를 흔들었던 자는 주먹에 나가떨어졌다. 마치 김성근은 그냥 걸어오는데 주변에서 놀란 새떼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미꾸라지는 슬그머니 뒤돌아섰다. 그런데 도성진이 막고 서 있었다. 손엔 끝이 하얀 삽날이 들려 있었다. 그의 눈빛에선 월왕령의 기억도 같이 불타고 있었다.
미꾸라지는 자기는 원래 이런 뜻이 아니었다는 듯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그 웃음을 앞에 보여줬으니 이제는 뒤에 그대로 가져갈 차례라며 돌아서는 그 찰나였다. 김성근의 손이 덮쳤다. 팔만 잡혔을 뿐인데 미꾸라지의 까만 눈동자가 뒤집혔다. 흰자위만 남은 그의 얼굴은 비명을 삼킨 채 굳어갔다.
등 뒤에선 감시반원 두 명이 몽둥이를 휘둘러도 김성근의 어깨는 움찔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손은 미꾸라지의 팔 하나만을 쥐어짜고 있었다. 감시반 사람들은 스스로 몽둥이를 땅에 떨구었다. 때려눕히려고 온 놈들이 아니라 말리려 나선 이들처럼 김성근의 팔을 잡고 애원했다. 그제야 김성근의 손이 풀렸고 미꾸라지의 까만 눈동자도 돌아왔다.
독신자세대 단독막사 문이 열렸다. 정치부장은 들어서면서 바닥부터 둘러보았다. 김동규의 혈흔이 아직도 어딘가 남아 있는 듯 조심스런 눈빛이었다. 고개를 들다가 한구석에 서 있는 옹헤야를 보고 멈칫했다.
그건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마주한 사람이 취한 경직된 자세였다. 서류상으로만 알았던 혼혈인을 직접 보니 방안공기도 다르게 느껴졌다.
금발의 머리칼과 서늘한 콧날, 미묘하게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목구비였다. 정치부장은 상대가 불편해할 것 같아 얼른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잠시 흩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여기서 힘들지?"
"네."
옹헤야는 짧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정치부장의 작은 행동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표정과 발끝, 주머니에 들어갔다 나오는 손의 동선까지 살폈다.
정치부장은 먼저 책상 위에 가방부터 내려놨다. 그 안에서 담배 한 갑이 나왔다. 이어 노란색 옥수수빵 두 개가 들어있는 봉지도 꺼냈다.
"내가 위병이 있어서 쓰릴 때마다 속 달래려고 갖고 다니오."
그 빵을 본 순간 옹헤야의 뇌리 어딘가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다.
"요즘 정치부장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 내부 처형자 명단 놈들을 담화하면서 빵이나 담배를 준다던데… 그런 거 들은 적 있어?"
숨어 들어갔던 최종배 사무실에서 엿들은 전화 통화 속의 내용이었다. 고르고 낮았지만 절제된 의심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특히 내부 처형자를 발음할 때에는 이미 처형된 시체를 밟는 것 같았다.
최종배는 오는 길에 정치부장이 뭘 주었는지 빠짐없이 말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옹헤야의 눈엔 옥수수빵이 음식이 아니라 처형 직전에 물리는 자갈 같았다.
"먹겠으면 먹소. 주는 건 불법이지만 버린 건 상관없소. 난 이미 남긴 거요."
옹헤야는 생각했다. 어깨의 별… 내부처형 주모자인가? 아니면 동정인가? 그래서 의심받는 위치인가? 알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엔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방안엔 찬 기류가 흘렀다. 닫힌 창문 틈으로 바깥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스며들었다. 정치부장은 책상 위에 펼쳐진 서류를 천천히 넘기며 말했다.
"이력서 보니, 학교도, 집도... 모두 열 세살까지만 기록돼 있더군."
"…제 이력서입니까? 당에서 만든, 그쪽 이력서 아닙니까."
'당'을 '그쪽'이라 불렀다. 정치부장이 만약에 동정자가 아닌 처형 주모자라면 방금 그 한마디는 곧바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는 대좌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러나 정치부장은 표정도 말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저 못 들은 사람처럼 시선을 끝끝내 서류 위에만 내려두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열 세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납치당했습니다. 당에."
그 말에 정치부장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런데 '납치'라는 단어에 '당'이 함께 묶여 발화되었음에도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고쳐 묻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열셋짜리 아이의 납치라는 그 사실에 놀라는 인간이었다.
옹헤야는 그 표정을 보며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이런 사람 앞이라면… 내 과거를 말해도 되겠구나. 그리고 그때부터 옹헤야의 시선은 아득해도 선명한 그 시간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