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옹헤야


    9분조는 우울했다. 갑자기 옹헤야가 감시반으로 옮겨간 이유가 조직부장의 지시라지만 소문은 달랐다. 옹헤야가 감시반으로 가기 위해 미꾸라지 앞에서 격술시범을 보이고, 만족한 감시반장이 데려갔다는 것이다. 옹헤야를 따로 만난 검은손은 실망이 컸다. 옹헤야는 자기가 감시반에 자청한 게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그를 얻은 감시반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들떴다. 반원들부터가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미꾸라지는 작은 대화나 웃음도 존재감을 과시하듯 일부러 소리를 키웠다. 작업 휴식시간이면 더 했다. 9분조가 감시반을 쳐다보자 득의양양했다. 미꾸라지는 약올리듯 일어나서 괴상한 동작까지 취했다. 감시반은 요란하게 웃었다. 옹헤야가 더는 참지 못하고 엄하게 말했다.

    "조용햇."

    한마디에 웃음이 뚝 끊겼다. 말끝마다 흔들리던 손들도 멎었다. 누군가 쉬— 하고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자 다들 자세까지 고쳐 앉았다. 기묘한 복종과 정숙이었다. 미꾸라지도 두 눈을 끔뻑거리며 그 광경을 둘러보았다. 이어 발끈했다.

    "이것들이… 내가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그러자 누군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조용하라잖아!"

    모두의 시선이 미꾸라지를 향해 돌아갔다. 정색한 눈빛들 앞에서 감시반장은 한 번 더 호통을 쳐봤다.

    "야, 내가 조용하라고 했어? 이것..."

    "조용하라면 조용해!"

    두 번째 외침은 더 컸다. 언성부터가 욕이었다. 반원들의 시선도 더 매서워졌다. 그나마 덜 노골적인 한 놈은 딴 데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미꾸라지는 돌아앉은 옹헤야의 금발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9분조의 '금지구역'을 데려왔더니 이제는 자기의 반장 권한마저 금지된 것 같았다.

    한편 휴식의 기분이 무겁기만 하자 검은손은 분조원들에게 호기 있게 말했다.

    "자, 반장에 감시반까지 우리 사람들이니 힘내자."

    검은손의 말에 주둥이도 휴식의 모닥불 앞에 더 가까이 앉으며 중얼거렸다.

    "맞아. 옹헤야도 말했잖아. 감시반 가도 친구라고."

    검은손은 고개를 돌려 저만치 혼자 앉아 있는 김성근을 바라보았다. 입소한 지 며칠이 지났어도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자세도 바뀌지 않았다. 어디에 앉든 서든 그의 몸은 늘 혼자 땅에 박혀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숨을 쉬는 바위, 혹은 사람의 형상을 한 구조물 같았다.

    "신입!"

    검은손이 불렀다. 그러나 김성근은 들은 듯 만 듯 고개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손은 손에 들고 있던 나무막대기를 휙 던졌다. 막대기는 소리를 내며 김성근 옆에 떨어졌다. 김성근은 고개를 돌려 그 막대기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다음 9분조를 노려보았다.

    "분조원들이랑 인사는 해야지. 같이 살 식구인데. 일로 와 봐."

    검은손의 말에 김성근은 몇 초간 정지해 있었다. 행동도 생각도 느린 것 같았다. 그는 마침내 거구를 일으켰다. 그 움직임은 마치 깊은 뿌리를 뽑아내는 거목 같았다. 땅이 그를 보내지 않으려는 걸 엄청나게 노력을 해서 일어서는 듯싶었다. 천천히 9분조 앞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끝내 앉지는 않았다. 그냥 서서 묵직한 눈으로 꼬챙이를 던진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검은손이 어색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어제 보니까 힘 꽤 쓰던데… 열심히 안 해도 돼. 여기선 요령껏 살아야..."

    "그게 용건임둥?"

    그 한마디에 9분조의 분위기가 굳어졌다. 가수가 눈을 내리깔고 도련님은 헛기침을 했다. 주둥이는 무슨 말을 꺼내려다 입술을 한 번 핥았다. 도성진이 눈만 깜빡거렸다. 검은손은 한 박자 쉬고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그럴 순 없잖아. 통성명이라도 해야지. 그리고 오늘 네 별명도 지을 거야."

    김성근은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애들 같이 왜 그럼둥? 잘 때 나만 수건 묶은 것도 유치한데, 이젠 별명임둥?"

    그 말에 도성진이 얼른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아, 그건요. 첫날 나도 수건 묶었어요. 심한 잠꼬대할까 봐…"

    주둥이도 짧게 보탰다.

    "별명도 있어야 해. 여기선 이름 쓰면 불법이야."

    거기에 대고 김성근이 또 입을 열려고 하자 그 전에 도성진이 손을 번쩍 쳐들었다.

    "내 별명은 얼라반동이예요."

    가수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난 가수."

    "도련님이요."

    "주둥이."

    마지막 말이 떨어질 때 김성근은 먼 곳을 쳐다보며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창피하지들 않슴등? 난 김성근이꾸마. 이젠 가도 되겠슴둥?"

    그는 정말로 돌아섰다. 느릿느릿 원래 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아무도 그를 불러세우지 못했다. 그저 모두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가 몇 걸음 끝에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9분조 쪽으로 돌아섰다. 한 번 돌아서는데도 몇 번 발을 움직였다.

    그런데 큰 목소리는 거침이 없었다.

    "나 몰래 별명 짓고, 일체 그 짓거리들 하지 맙소꾸마. 내 분명히 말했수꾸마."

    9분조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말투도, 체구도, 본때도 수용소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때였다.

    감히 그에게 삿대질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 돼지! 신입돼지!"

    저만치 감시반원 무리 속에 일어선 미꾸라지였다. 김성근은 자기 별명이 아니라는 듯 무시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미꾸라지가 웃으며 더 크게 소리쳤다.

    "돼지야. 하하하 야 신입 돼지!"

    9분조에 돌아설 때랑 다르게 김성근은 몸을 획 돌렸다. 주변의 정경까지 비틀리는 기운이었다.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해서 정직하게 들렸다.

    "경고하꾸마. 당신 얼굴 내 기억했소꾸마. 세 번이면 아주 큰일나꾸마."

    그 말에 감시반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미꾸라지는 폴짝폴짝 뛰며 웃었다. 그 속에서 옹헤야는 혼자 등을 돌리고 있었다.



    최종배는 왼 손목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밴드 자국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가 심심산골 요덕에 청춘을 묻어 대신 얻을 것이란 두 개밖에 없었다. 하나는 당증(黨證)이었다. 그건 보위원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받게 될 포상이었다.

    그 전에 세이코 시계는 인격이었다. 가장 실감 나던 본인을 잃은 셈이었다. 남들보다 팔을 항상 길게 뻗어 어깨가 높았다. 회의 때도 늘 제시간에 나타나 '시계 같다'는 칭찬도 받았다. 또 하루 세이코의 시간이 흐른다는 자만심에 눈 뜨는 아침이 즐거웠다. 초침은 시계의 부품이 아니었다.

    규율과 원칙, 충성심이 매일 살아 숨 쉬던 리듬이었다. 그걸 다 채워주던 왼 손목은 신체 중에 제일 자랑스러운 부위였다. 그런데 그 왼 손목이 비워지니 모든 것이 반쪽이 되고 말았다. 의무, 열정, 책임감 심지어 식욕까지 흩어졌다. 그는 허기보다 더 무서운 무의미를 느꼈다.

    최종배는 멀리서 미꾸라지가 달려올 때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예전 같았으면 거리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다. 접근 속도를 초 단위로 세며 놈의 심장 박동 수까지 계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죄수들의 소리도, 표정도, 의도도 다 가려져 있었다. 미꾸라지는 그게 신나서 웃으며 달려오는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자기보다 더 편한 '상판'이었다.

    "선생님. 부르심에 분초를 세며 달려왔습니다."

    미꾸라지의 그 말은 시계 없는 자기 손목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렸다. 최종배는 속에서 일어나는 무엇을 억지로 누르며,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선생님, 잡종놈을 저의 감시반에서 내보내 주십시오. 그놈은 자격이 없습—"

    최종배는 미꾸라지의 앞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탁— 거친 소리가 났다. 미꾸라지는 뜬금없이 맞은 이유를 묻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뻔뻔해진 그 두 눈이 더 화가 났다. 또 한 번 퍽— 소리가 났고, 미꾸라지의 얼굴이 휘었다. 한쪽으로 꺾인 턱 아래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 새끼야. 네가 내보내고 싶으면 내보내? 나 모르게 조직부장한테 제안했어? 네 놈이 뭔데? 뭔데?"

    미꾸라지는 주먹이 들어올 짬이 없게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다 그 금발 때문이다. 그놈이 오니 자기를 일반 죄수 취급하는 것이다. 미꾸라지는 그 울분과 용기로 일어서 머리를 버쩍 들었다.

    "선생님. 선생님 특명을 관철할 수 있습니다."

    최종배 주먹이 허공에 정지했다.

    "네. 믿어주십시오. 오늘 중으로 하겠습니다."

    미꾸라지가 맹세하는 최종배의 특명이란 도성진을 불구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며칠 전 최종배가 귓속말로 하달한 비밀지시였다.

    그동안 미꾸라지는 옹헤야가 늘 곁에 있어 주변만 맴돌고 있었다. 그 옆이 비었으니 이제는 자신 있었다. 최종배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던져주고 2작업반 반장을 부르며 걸어갔다. 미꾸라지는 그의 등과 손에 쥔 담배 개비를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걸 그냥 주지, 때리고 줘? 저 미친 새끼."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