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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자세대와 가족세대를 가르는 경계선은 어디보다 어둠이 깊었다. 그 아래 9분조원들이 허리를 숙이고 빠르게 달렸다. 검은손은 분조가 다 사라지면 의심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막사에는 옹헤야까지 둘만 남았다. 남자들의 발소리는 땅에 닿는 족족 사라졌다.
숨소리는 서로의 숨소리를 붙잡고 있었다. 앞서 달리던 도련님이 갑자기 멈춰 섰다. 신발이 흙 위에서 멎자 뒤따르던 사람들의 몸도 덩달아 앞으로 쏠렸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소문나면…"
맨 뒤에 섰던 주둥이가 급하게 앞으로 나와 섰다.
"네가 부주석 아들이면… 어제 해제명단에 들어갔어."
도련님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겠지? 모르겠지?"
주둥이는 도련님 옷에 뭘 묻은 것도 아닌데 탁탁 털어주었다.
"지금 네 꼴이 부주석 아들이면… 나라 망한 줄 알지. 내가 책임질게. 몰라, 몰라."
그때 도성진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봐요. 가족세대 문… 닫혔어요."
모두의 시선이 그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저 멀리 어둠을 이어붙인 철조망 한가운데, 가족세대의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순식간에 9분조원들의 얼굴에 실망과 허탈이 번졌다. 누구랄 것 없이 달리던 자세였던 굽은 허리들이 곧게 일어섰다. 도련님이 변명처럼 슬쩍 말을 흘렸다.
"저 문에서 삼십 미터 정도만 더 아래로 내려가면…작은 개구멍이 있대. 바로 그 앞에서 좀 더 가면… 거기래. 돼지우리가."
주둥이는 그 이상 사정하지 않았다. 설득하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단호한 강요처럼, 손이 먼저 도련님의 몸을 획 잡아 돌렸다.
"가, 가! 너는 지금 끌려가는 게 아냐! 뛰어!"
그 말에 9분조의 허리들이 다시 숙여졌다. 어둠 속을 향해 작고 단단한 연대가 다시 달렸다. 그리고 그 등을 별들이 웃으며 굽어보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경계 너머 작은 돼지우리 앞이었다.
이상하게도 돼지우리에서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비린내도, 똥내도, 한 번쯤은 있어야 할 '짐승냄새'조차 없었다. 시멘트 바닥은 눈도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짚도 너무 고르게 깔려 있었다. 냄새나면 돼지가 아닌 담당 수용자가 맞으니 철저히 정돈되고 잘 관리된 냄새였다.
9분조는 자기들 막사를 떠올렸는지 저마다 혀를 찼다. 자기들은 모로 누우면 옆 사람 얼굴이 닿는 정도인데 돼지는 독방이었다.
돼지 수용자도 별로 없었다. 빈방이 많이 있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돼지, 강제노동도 기합도 받지 않는 생명이었다. 갇히긴 비슷하게 갇혀 있는데 네 발 가진 돼지가 더 낫다고 느끼는 표정들이었다.
"자. 각자 자기 위치로."
주둥이가 한숨은 나중이라는 듯 재촉했다. 도성진은 '침실' 문 앞을 지키는 보초 겸 연락병이었다. 주둥이와 가수는 박해순도 보위원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잠복 경비에 들어갔다.
도성진은 돼지우리 앞의 낮은 담장 옆에 몸을 숨겼다. 바람은 차가웠고 자기 숨만 따뜻했다.
두 손을 호호 불며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박해순이었다. 도성진이 볏짚 속에서 뛰쳐나가 그녀를 마중했다. 손으로 돼지우리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요. 저기. 내가 망볼게요."
박해순이 그쪽으로 가는데 다른 우리 안에서 도련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여기야, 여기."
도성진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쭈그려 앉았다. 숨은 아직도 가팔랐고 가슴엔 긴장이 잔잔하게 남아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눈발이 조금씩 날리고 있었어도 밤하늘엔 별이 드문드문 떠 있었다. 고향에서 봤던 그 하늘이었다.
"히야…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이런 밤에도 숨바꼭질하며 놀았는데…"
그는 자기가 내뱉은 말에 잠시 빠져들었다. 하늘을 본다기보다 가슴 속 오래 묻어뒀던 것들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하나, 둘, 셋, 넷…다섯… 여섯…"
딱 여섯까지 셌을 때였다. 돼지우리 안에서 박해순의 목소리가 불쑥 일어섰다.
"뭐야, 부주석 아들이 허리 아래는 왜 백성만 못해."
남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곧이어 돼지우리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박해순이 먼저 튀어나오더니 타다닥! 발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본 도성진은 두 팔을 공중에 높이 흔들었다. 그 신호를 보자마자 저만치서 숨어 있던 두 그림자가 일어섰다.
잠시 후 세 사람이 돼지우리 안으로 빼곡하게 들어섰다. 돼지는 없고 그 자리에 도련님만이 가운데 털썩 앉아 있었다. 바지는 입은 게 아니라 무릎에 대충 걸쳐져 있었다. 그 위에는 가마치를 양손에 든 손이 맥없이 얹혀 있었다.
도련님은 꿍한 눈으로 돼지우리 안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다들 다닥다닥 붙어 앉아 열심히 누룽지를 씹었다. 성진은 고소하다는 듯 주먹을 바르르 떨며 입을 아작아작거렸다.
"검은손과 옹헤야 건 내가 챙겼으니, 빨리들 씹어."
주둥이가 말했다. 가수는 도성진에게 누룽지 조각을 흔들어 보였다.
"물 먹으면… 이따 뱃속에서 불어나고 좋아."
도성진은 대답도 미루고 누룽지를 꼭꼭 씹었다. 도련님의 긴 한숨이 모두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부주석도 알고, 내 좆도 알고… 아휴."
울컥 쏟아진 그 말에 누구도 웃거나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그 말에 걸맞은 대답은 이 돼지우리 안엔 없었다. 주둥이가 짧게 말했다.
"그러니 먹어."
그 말이 더 얄미웠는지 도련님은 주둥이를 째려보았다. 주둥이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기어이 딴 곳을 보았다. 그러면서도 입은 누룽지를 천천히 씹었다. 그걸 넘기려는데 도련님이 물었다.
"책임진다며?"
주둥이 목에서 꿀꺽— 유난히 큰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가수가 등을 돌려버렸다. 주둥이는 괜히 코를 벌름거렸다.
"여기… 돼지 냄새 좀 심하지 않아?"
책임은커녕 회피도 뻔뻔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도련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몸을 판 내 조건이 참… 기막히다."
그 말이 자기 귀에 들리는 게 더 싫었던지 도련님은 벌떡 일어섰다. 들어올 땐 고개를 한껏 숙이고 들어왔지만 나갈 땐 바지도 없이 발로 문을 콱 걷어찼다. 밖에는 눈발이 더 두꺼워졌고 바람이 매서웠다.
도련님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 뒤로 주둥이와 가수, 도성진이 하나둘 돼지우리에서 빠져나왔다. 주둥이는 도련님의 허연 엉덩이를 보곤 기겁하며 뛰어갔다.
"야, 야! 바지 입어!"
그는 바지의 책임이라도 지려는 듯 두 손으로 허둥지둥 바지를 들고 쫓아갔다. 도련님은 뒤도 안 돌아봤다.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가릴 게 뭐가 있다고… 다 벗은 공산주의인데…"
가수까지 바지 한쪽을 붙들고 따라나섰다.
"그래도 누가 보면 어쩌려고… 빨리 입어…"
도련님은 바닥에 퉤, 침을 뱉었다. 두 팔은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처럼 허공에 흐느적거렸다.
"내 좆도 십 초고, 인생도 좆같고…"
그 목소리는 텅 비어 있었다. 주둥이는 바지를 펼쳐 들고 가수는 도련님의 팔을 붙잡았다.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성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바지를 입고 벗는 어른들의 세계가 아직은 잘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그들이 독신자 막사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는 도련님이 바지를 입은 상태였다. 독신자가 야간에 가족세대 지역을 넘어가면 구류장 처벌감이다. 검은손은 후회하고 있었는지 반가운 얼굴로 달려왔다.
"별일은 없었고?"
도련님만 빼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근데 왜 이렇게 빨리 왔어?"
그 물음에 도성진이 혼자 대답했다.
"그 여자가 오자마자 그냥 가버렸어요."
주둥이가 성진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야!"
성진이 움찔하며 몸을 젖히자 주둥이는 슬쩍 도련님 쪽을 바라보았다. 도련님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어깨가 이미 늘어진 옷처럼 더 아래로 축 내려가 있을 뿐이었다. 그때 운동장 저편에서 2작업반 반장이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9분조! 여기 있었구나."
그는 잠깐 눈을 훑더니 이내 본론을 꺼냈다.
"너희 분조에… 새로 하나 왔어."
그 말은 너무 평범하게 들렸지만 들은 9분조원들 사이엔 짧은 정적이 흘렀다. 한 사람을 떠나보내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운다는 사실은 항상 그런 식으로 찾아왔다.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아무 예고도 없이 말이다.
막사 안으로 들어서는 9분조의 시선은 모두 월왕령의 자리로 쏠렸다. 그리고 모두가 굳었다. 앞에 섰던 주둥이가 뒷걸음칠 정도였다. 다들 뒤로 밀렸다. 그냥 신입이 아니었다. 한 명인데도 막사가 가득 찬 웅장함이었다. 마치 거대한 바위를 침상 위에 올려놓은 듯했다. 허벅지는 도성진의 몸뚱이보다 두꺼웠다.
두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옆 침대를 침범하고 있었다. 몰려드는 사람들 쪽을 한 번쯤 돌아볼 법도 했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신입인데도 군기라도 잡는 사람처럼 시선은 오직 정면에 꽂혀 있었다. 그 무게에 몸을 세우는 것조차 고역일텐데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 자세는 절망에 빠졌거나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얼굴은 크고 네모졌으며 무엇보다 눈빛이 비어 있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김성근이었다. 다행인 것은 가수와 나이가 같았다. 함경북도 체육단 씨름 선수였다. 그의 죄명은 '성경책 소지죄'였다.
1980년대에 북-중 국경 사이에 작은 국제시장이 열렸다. 회령시 역전 동네에는 '홍콩시장'이라는 장마당이 당국의 묵인하에 개설되었다. '사사여행자'라고 불리는 조선족과 화교들이 통행증을 끊고 들어와 외자도입으로 과잉생산된 중국 공산품들을 가져다 팔았다.
기독교는 중국이 문호를 개방할 때 수용되었다. 동북지역의 사사여행자들이 물품 속에 성경책을 감춰 들여왔다. 그 통에 신자가 생겨났고,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모이는 지하교회도 있었다. 성근이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함께 눕던 도련님과 주둥이는 천장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김성근의 넓은 그림자가 천장까지 올라와 있었다. 예전엔 없던 그늘이었다. 도련님이 소곤거렸다.
"저 몸이 우리 조면 내가 또 뭘 팔아야 하나…"
잠시 후 밖에서 검은손과 2작업반 반장이 막사로 들어왔다. 검은손도 처음엔 주춤했다. 하지만 김성근 앞에서 무심하게 말했다.
"오늘은 누워 자."
김성근은 그 말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려고도 안 했다.
"자도 된다니까."
다시 한번 말했으나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검은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누우면서 성진에게 한 마디 던졌다.
"얼라반동, 그거 해줘."
도성진이 잽싸게 일어났다. 손에는 수건이 들려 있었다. 그는 살며시 김성근 앞에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입에 감고 자야 돼요."
그제야 김성근은 움직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그 넓은 얼굴에서 입을 열었다. 막사를 가득 울리는 예상 밖의 묵직한 사투리 목소리였다.
"왜… 이렇게 해야 함둥? 무슨 까닭이 있슴둥?"
투박한 함북 사투리가 숨죽이던 막사 안의 공기를 쭉 갈라놓았다. 도성진은 깜짝 놀라 급히 손가락을 입가에 댔다. 자는 시간이니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내일 말해줄게요. 내일…"
도성진이 속삭였으나 김성근은 여전히 큰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일 할 말을 와 오늘 못한다는 검둥? 내게 지금 뭔 짓을 했슴둥?"
막사 안의 공기가 다시 한번 휘청였다. 분조장이 눈을 질끈 감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어이… 자고 내일."
김성근은 소리 난 쪽을 향해 더 크게 외쳤다.
"저 사람은 아까부터 뭐라고 했음둥? 나랑 무슨 상관이 있음둥?"
그 말에 분조장은 더는 대응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옆으로 돌아누웠다. 어차피 오늘 안에 끝날 대화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도성진은 다급하게 수건을 흔들며 입에 감아보라고 손짓과 몸짓으로 설명했다. 그제야 김성근은 수건을 받아 입에 감았다. 그러더니 다시 반쯤 벗기고 입꼬리만큼 함북 사투리로 되물었다.
"이러고 이제부터 자면 됨둥?"
막사 맨 끝자락에서 참다못한 한 수용자가 버럭 소리쳤다.
"그래 쳐 자라고, 촌놈의 새끼야!"
그 말에 도련님이 더 흠칫 놀랐다. 그걸 본 주둥이가 조심스레 누룽지 조각 하나를 건넸다. 도련님은 입에 덥석 물었다. 그리고 조금 힘을 주었을 뿐인데 입안에서 딱딱한 소리가 튀었다. 바드득.
"어느 개새끼가 혼자 처먹어!"
또 다른 수용자의 목소리였다. 주둥이가 도련님을 대신해서 얼른 소리쳤다.
"이빨 가는 소리야!"
"냄새나잖아, 개새끼야!"
그 말에 도련님은 입에 문 누룽지를 꽉 물고 천장만 봤다.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고 잘 수도 없는 그의 표정은 난처했다. 주둥이가 물려준 누룽지 조각이 너무 컸다. 도련님은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봤다. 주둥이가 자는 척하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눈썹이 심하게 떨렸다. 도성진은 조용히 담요를 끌어 내리며 몰래 김성근 쪽을 곁눈질했다.
모두가 몸을 눕혔지만, 김성근은 여전히 꼿꼿이 앉은 자세였다. 입엔 수건을 감고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막사 안의 중심에서 돌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