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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자세대 이상!"
소장의 말이 떨어지자 대열이 들끓었다. 제일 먼저 미꾸라지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울면서 팔에 찬 완장을 벗어 허공에 흔들었다. 감시반장까지 시켜줬으면 이제는 내보내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애원 같았다. 그러다 끝내 누군가 공중으로 손을 버쩍 들었다.
"저는 왜 이름이 빠졌습니까! 저는 들어온 지 십 년이 넘었습니다!"
외침은 가늘고도 날카롭게 하늘을 찔렀다. 그가 높이 들어 올린 손엔 손가락이 세 개뿐이었다. 남은 그 세 손가락으로 자신과 수용소를 고발하듯 쳐들고 온몸을 부르르 떨렸다. 조직부장이 눈짓하자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짐승처럼 질질 끌고 갔다. 땅에 끌리는 발, 벗겨지는 옷자락, 질끈 감긴 눈이 비명을 대신했다. 소장은 얼굴을 찡그린 채 조직부장을 보더니 다시 지프차에 실리는 수용자를 돌아봤다. 그러곤 답답한 속을 쏟아냈다.
"이왕 여기서 살았잖아! 살 거면 견디고 듣기만 해! 아무…"
말끝에 익숙한 말버릇, "아무튼"이 걸려 나왔지만 그 마지막 음절은 공중에서 스스로 접혔다. 그 순간, 서련화도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또렷한 시선이 소장의 눈을 정면으로 휘감았다. 소장은 헛기침으로 피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억지로 말의 꼬리를 잡았다.
"올해만 있어? 내년도 있잖아! 아휴, 저게 뭐야…"
남자들은 내년도 또 있다는 소장의 말에 다시 흥분했다. 갇힌 세월이 긴 사람들일수록 더욱 얼굴을 붉혔다. 대놓고 코웃음도 쳤다. 소장은 이렇게 한쪽으로 기울어질 땐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독신자 조용해. 가족세대 기다리잖아. 명단 불러야 하는데."
소장의 그 한마디에 갑자기 가족세대 쪽에서 고함들이 일어났다. 저수지 뚝이 무너진 것처럼, 가득하다 못해 넘치려 했던 온갖 괴성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조용해야 듣지, 이 반동새끼들아! 우리 차례잖아."
"이 반동들아, 닥치라고. 다 끝나고 쳐 울어!"
15호에는 같은 옷을 입고도 남을 '반동'이라 욕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수용자들이 있었다. 가족세대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가족의 죄에 끌려온 억울한 사람들이었다. 반동의 결부터 달랐다. 죄가 없었는데도 끌려와 죄인이 된 자들이었다. '있다'와 '없다'의 그 미묘한 틈에서 가족세대 여자들의 목소리는 유난히 높았다.
15호에는 마치 지구인과 화성인처럼 같은 땅 위에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여성이 공존했다. 가족세대 여자들은 하나같이 기가 센 말괄량이들이었다.
자신을 감춘 적이 없고 드러난 죄책도 없었다. 억울해도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들어올 때도 소리 지르며 몰려오고 나갈 때는 더 빳빳했다.
반면, 독신자세대 여자들은 화성인이었다. 그녀들은 감정 때문에 끌려왔다. 울고, 사랑하고, 매달리고 떠들었던 감정의 이유가 더 많았다. 가족세대 여자들이 죄의 연좌제라면, 독신자 여자들은 감정의 연좌제가 다수였다.
독신자세대 여자들은 감정을 감추는 법을 배우고 나갔다. 남은 여자들은 죄가 남은 것이 아니었다. 여자로서의 그 감정이 아직 남아 있는 이들이었다.
도화선을 잘 아는 소장이 불을 지르자 가족세대 여자들은 쾅쾅 터졌다. 그 고함은 명단을 둘러싼, 처절한 경쟁의 폭발이었다. 동정도, 연대도 사라진 그 자리에서 모든 사람이 오직 자기 이름만 바라보며 다른 이름을 미워했다.
소장은 종이를 들쳐 올렸다. 작은 동작 하나에, 가족세대 쪽에서 일제히 숨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희망과 공포가 동시에 목을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가족세대!"
그 한마디에 일제히 숨이 멎었다.
"최덕환 세대!"
소장의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자 대열 한복판에서 흐느낌이 솟아올랐다. 그 소리는 점점 뚜렷해졌다. 오십 대의 남자가 먼저 무너졌다. 가족들을 품에 안은 채 엉엉 울었다. 합쳐진 그 울음 속엔 한 가족의 지난 세월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는 들어올 때는 앞에 섰지만 나갈 때는 뒤에 서고 싶어 했다. 부인과 딸이라도 먼저 내보내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같이 나가게 된다면 앞에 세우려고 했던 것도 꿈이었다. 모녀는 손을 놓지 않았다. 떨어지면 누구 하나 혼자 남겨질까 두려웠다. 그렇게 그들은 손을 마주 잡고 하나의 덩어리처럼 울고 부둥켜안으며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다음! 박순호 세대! 박순호 세대 왜 안 나와? 빨리빨리들 나와!"
소장의 목소리가 한 번 더 올라갔지만, 이번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대신 가족세대 여자들이 일제히 뒷걸음쳤다.
"여기 있소"라고 말하듯 시커먼 무리가 물러나자 하얀 눈 위에 둥근 원이 만들어졌다. 그 중심에 14살짜리 아들을 끌어안고 흐느끼는 여자가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바닥의 차가운 슬픔을 다 굵어 모아 쌓은 눈무지 같았다. 그 눈더미 속에서 잠시 후에 비명이 치솟았다.
"여보!"
"아버지!"
주변의 여자들도 흐느끼고 있었다. 소장이 박순호 세대를 불러도 정작 그 장본인은 이미 죽은 것이었다. 슬픔은 슬픔일 때 미루지 않고 같이 울어주는 것이 가족세대였다. 살아남은 가족을 위해 다들 소리 내어 울었다.
"다음! 김승환 세대! 김승환 세대"
울음소리가 두 방향에서 일어났다. 먼저 부인과 아이 둘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이들은 뒤를 돌아보며 울었고, 아내는 손을 들어 대열을 향해 빨리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여보! 어서 와! 당신, 어서!"
그러자 군중 틈 사이에서 한 사내가 엎드려 기어 나왔다. 그는 두 다리가 없었다. 걸어서 들어왔었는데 나갈 때는 걸음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울음이 입술을 따라 떨렸고, 손은 땅을 더듬었다. 팔로 땅을 짚고, 무릎 대신 배로 밀며, 앞으로 나왔다.
"나갑니다... 곧 나갑니다... 다 왔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소장은 다시 서류를 넘겼다.
"이성렬 세대! 이성렬 세대! 이러다가 해 넘어가겠다..."
이성렬 세대를 찾는 소장의 목소리가 여러 번 거듭되자,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대열 뒤편, 작은 형체 하나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어른들의 허리 아래서 멍하니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수용자 하나가 등을 떠밀었다. 또 다른 손이 아이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비로소 아이는 돌아서더니 눈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난 안 죽을래요! 싫어요, 앞에 안 나갈래요! 엄마! 아빠!"
혼자 남겨진 그 아이는 어른들의 손길에 발버둥 쳤다. 그 동심도 이미 알고 있었다. 대중 앞에 나가는 자리는 곧 공개처형장이었다. 그 자리는 반드시 처벌과 처형만 있는 곳이었다.
아이가 수없이 동원됐고, 목격했고, 무서웠던 그 앞이었다. 그래서 정면이 곧 공포였다. 뒤돌아서도 눈을 감아야만 했던 습관까지 생겼다.
보다 못한 장찌엔이 아이를 덥석 안았다. 그리고 아이가 가장 싫어했던 앞자리가 아닌 수용자들 맨 뒤에 섰다. 그제야 아이는 겨우 진정하며 울음을 멈추었다. 공포의 질서와 강요에 이미 길들은 아이. 어린 평정심의 왜곡을 보며 사람들은 오히려 더 깊고 조용히 흐느꼈다.
"오희성 세대! 오희성 세대! 이상!"
소장이 마지막 이름을 부르고 서류를 덮었다. 순간 불리지 못한 이름들은 쓰러지고, 통곡하고, 기절했다. 독신자는 혼자서, 가족세대는 가족끼리 부여안고 오열했다. 금년의 해제는 막을 내렸던 것이다.
그 속에서 소장이 마지막으로 부른 이름 오희성은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울었지만, 그의 울음은 더 비통했다.
그는 혼자였다. 그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를 따라올 가족이 없었다. 함께 울어줄 소리도, 이름을 듣고 달려 나올 아이도, 손을 뻗어 안아줄 부인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울음은 누구보다도 조용했지만, 누구보다 깊고 길고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날 오전 혁명화 해제를 받았지만, 그날 밤 가족과 함께 살던 빈집에 영영 머물렀다. 오희성은 그날 밤, 자살했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