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PP·표준화는 공동 방파제아스카 문화도 협력 거리과거사·7광구는 '신중'이 답성과표 강박에서 벗어나야 결실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공식 기념촬영 행사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공식 기념촬영 행사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일본 나라현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셔틀외교를 가속화한다. 이번 회담의 관전 포인트는 일명 '개집 외교'(Doghouse Diplomacy)로 불리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과 도널드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 즉 미국의 '돈로주의'(Donroe Doctrine· 서반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접근을 차단하는 미국 우선·고립주의 대외 정책을 뜻함) 사이에서 한국의 경제·안보 비용을 선제적으로 낮출 한일 공조를 얼마나 다지느냐다.

    ◆中은 때리고 美는 소홀 … 韓日 옥죄는 '복합 위기'

    13일 외교가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을 겨냥해 일본에 희토류 등 이중용도 품목의 수출 통제와 반덤핑 조사를 시작하며 대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중국산 희토류를 일본에 수출한 제3국까지 처벌하겠다는 '세컨더리 보이콧' 경고는 희토류 원재료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도 언제든 보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박 신호로 해석된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굳건히 서서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며 이 대통령에게 미국과 일본에 맞서 '중국 편에 서라'고 사실상 압박한 바 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시 주석의 발언과 관련해 "착하게 잘 살자는 공자 말씀으로 들었다"고 응수하며 '전략적 모호성'을 취했다.

    중국의 압박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은 서반구에 집중하며 동맹국에 대한 관여 수준을 축소할 수 있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뉴데일리에 "미국의 자원이 서반구로 쏠려 동아시아에서 힘의 공백이 발생하면 북·중·러 연대 앞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한국과 일본"이라며 "미국의 관심이 베네수엘라, 그린란드 등으로 이동할 수 있다. 한일 정상이 이 공백에 어떻게 대처할지 깊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거래주의 성향과 별개로 미국이라는 패권국의 구조적 이해관계는 다르다.

    윤덕민 전 주일대사는 뉴데일리에 "동아시아는 미국 패권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곳"이라며 "존 헤이의 문호개방 정책(Open Door Policy) 이래 미국이 핵심 전략 지역을 도전 국가에 공짜로 내준 역사적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미국이 이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하거나 손을 떼는 일, 이를테면 대만해협을 포기하는 일은 쉽게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中 눈치 볼 때 아니다"… 공급망·표준 '방패' 만들어야

    이러한 복합 위기 속에서 한일 경제·안보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평가된다. 이 대통령도 방일 직전 NHK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일본은 가치와 지향을 함께한다는 측면이 정말 중요하다. 서로 부족한 점들은 보완해 가야 한다"며 "경쟁하면서도 협력할 분야가 워낙 많기 때문에 함께할 공통점으로 무엇이 있는지를 조금 더 많이 찾아보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일이 가치와 지향을 함께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양국이 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대비해 충격을 흡수할 '공동 방파제'를 쌓아야 한다는 현실 인식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고 해석된다.

    윤 전 대사는 "한일은 중국과 관련된 경제 이슈와 안보 이슈에서 이해관계가 거의 비슷하다. 이것이 양국 협력의 기반이 될 수 있다"며 "최근 공급망 교란 등 여러 이슈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경제·안보는 한일이 논의할 수 있는 최적의 의제"라고 짚었다.

    이어 "경제·안보 협력은 큰 틀의 전략적 맥락에서 봐야 한다"며 "한일이 이 지역에서 연대해 나가야만 강대국 정치 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했다.

    신 전 대사는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해 미·일을 동시에 압박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 눈치를 보며 주저할 계제가 아니다"라며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인공지능(AI)·데이터 협력, 나아가 중국 주도의 질서에 맞서 배터리 규격이나 기술 표준 등 산업 표준화 분야에서의 한일 공동 전선 구축 등을 제언했다.

    ◆과거사·서해는 '관리 모드' … 뇌관 건드리지 말아야

    반면 한일 대륙붕 7광구 공동개발구역(JDZ) 협정 문제, 중국의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 내 무단 구조물 설치 문제 등은 이번 회담의 판을 깨거나 한중 관계를 더 악화할 수 있는 사안들로 꼽힌다.

    신 전 대사는 "7광구 문제가 테이블에 올라오면 한일이 이견을 좁히기 쉽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테이블에서 내려놔야 한다. 서해 구조물 문제 역시 일본이 개입하면 한중 관계가 더 꼬일 수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특히 과거사 문제의 경우 배상 논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관리하고 협력을 저해할 비용을 줄이는 완충지대로 남겨두자는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윤 전 대사는 "조세이(장생) 탄광 수몰 사고 문제는 깊게 들어가기보다는 공동 조사 수준의 인도적 조치가 현실적"이라면서 다카이치 총리의 주요 관심사인 아스카(飛鳥) 문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를 언급했다.

    일본 나라현의 아스카 문화는 백제의 불교·건축 기술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한일 문화 교류의 증거다. 한국이 유네스코 의장국인 상황에서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며 백제의 영향을 얼마나,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따라 역사 논쟁의 또다른 분기점이 될 수도 협력의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외교가에서는 양 정상이 이를 '한일 문화 교류의 증거'로 공동 프레이밍하고 공동 조사를 거쳐 등재한다면 경제·안보 협력의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한국의 유네스코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일석이조의 외교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결국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에서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무엇을 받아왔느냐는 '성과 강박'을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 전 대사는 "특히 한일 정상은 자주 만나 최고위 전략대화를 지속해야 하며 악화된 국제 환경을 놓고 속 깊은 논의를 축적하는 과정 자체가 셔틀외교의 본령"이라고 정의했다.

    윤 전 대사도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한일 관계를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이번 방일의 가장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