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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분조원들이 낡은 작업 도구를 무심히 닦고 있었다. 왼 종일 돌에 찔리고 눌린 손등은 갈라져 있었다. 삽자루엔 남은 피와 진흙이 굳어 있었다. 그들의 어깨 위로 내려앉은 어둠은 더 깊어 보였다. 조명이 켜져 있는 운동장에서 유독 활기 띤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섯! 일곱! 여덟!"
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우렁찼다. 9분조의 시선이 저절로 한 방향으로 쏠렸다. '감시반장'이라 쓰인 붉은 완장을 찬 미꾸라지가 아닌가. 감시반원들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있었다. 그 오합지졸들 앞에서 미꾸라지는 보위원처럼 행동했다. 뒷짐에 없는 배를 내밀며 오락가락 걸었다. 그는 자기 권한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발끝으로 돌을 세게 찼다. 그러나 그 돌이 의도치 않게 자신의 발가락에 튕겨 돌아오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를 짜냈다.
"스물! 스물하나! 스물셋! 아니, 스물둘..."
도성진은 코웃음을 쳤다.
"저놈, 우리 보라고 우정 저러는 거예요."
미꾸라지는 시선들을 의식했는지 더욱 목청을 돋우었다.
"소장 동지께서 우리에게 준 특권! 조별 작업계획 분담 권한!"
그 말은 곧, 자기가 9분조를 괴롭힐 수 있다는 엄포였다.
"식사 금지 및 기합 권한! 중대장 동무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독대 권한까지!"
가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간덩이가 붓다 못해 아주 배 밖으로 나왔구나. 이젠 다 동지. 동무란다."
그때였다. 저만치서 두 개의 그림자가 삐걱대며 다가왔다. 최종배였다. 그 앞에는 고개를 축 숙인 새 수용자가 걸었다. 주둥이가 벌떡 일어나 폴짝폴짝 그쪽으로 달려갔다. 어느 때보다 깊이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혁명화 제자 하나 여쭈어도 됩니까?"
"뭔데."
"저기… 원래 저 4번 말입니다."
그는 흘깃 미꾸라지를 가리켰다.
"저 사람이 혹시, 중대장 선생님하고 동창생이십니까?"
"누가? 누구?"
"아니 저기요… 새 감시반장 된 저분 말입니다."
주둥이의 손끝이 향한 곳에서는, 미꾸라지가 온갖 장(長) 흉내를 다 내고 있었다. 감시반원의 다리를 툭 걷어차는 것까지 틀림없는 보위원이었다. 최종배가 보기에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미꾸라지처럼 주둥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저런 놈을 감히 어디에 갖다 대는 거야."
주둥이는 움찔하면서도 꿋꿋했다.
"소문 다 돌았습니다. 저 반장이… 15호 권한 다 받았다고…소장 동지, 중대장 동무… 이러면서 말입니다."
최종배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는 곧장 미꾸라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야! 너 이 새끼! 당장 내 앞으로 뛰어와!"
미꾸라지는 생각 없이 가볍게 뛰어왔다. 출세와 보답의 일념이었다. 하지만 그 착각은, 곧 최종배의 주먹과 발길질 속에서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소장 동지? 중대장 동무? 이 새끼야, 팔에 뭐 하나 차니까 이젠 다 비슷해 보여? 내 앞에서 다시 해봐! 동지? 동무?"
"잘못했습니다! 사회 때… 입버릇이었습니다!"
미꾸라지는 고개를 조아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 말은 오히려 불쏘시개가 되었다.
"실수해서! 들어온 놈이! 아직도 못 고치면! 맞아야지! 죽어야지!"
주둥이는 매질을 확인하며 9분조 자리로 돌아왔다. 감시반장이 맞는 광경은 수용자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낯설었다. 옹헤야가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어 보였다.
"동지 팔았지?"
주둥이는 손해만 봤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장 동지한테 비싸게 팔려다가… 중대장 동무한테 싸게 줬어…"
9분조 옆에 서 있던 신입 수용자도 어정쩡하게 웃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리자 그는 짧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때였다. 저만치서 누군가 넘어질 듯 달려왔다. 신입 수용자 앞에 멈춰 선 그는 눈에 힘을 주며 갑자기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는 팔을 쭉 뻗어 반듯하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사령관 동지! 작전참모 독고명철입니다!"
그 한마디에 막사 앞은 얼음처럼 굳어졌다. 도성진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9분조원들도 하나같이 눈이 동그래졌다. 신입은 '사령관'이란 말이 민망한지 작전참모의 팔을 잡아내렸다.
"독고명철 동무, 여기 있었구만."
"사령관 동지,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동무도 왔는데, 내가 뭐 특별하오? 반갑소"
작전참모를 끌어안은 그는 조선인민군 해군사령관 방철갑이었다. 김일성이 "조선의 바다를 방어하는 철갑이 돼라"며 친히 지어주었다는 이름이다. 그 이름 아래 그는 조선 삼면의 바다를 지키는 북한 해군의 상징이 되었다.
문제는 사소한 데서 터졌다. '육해공군'이라는 김정일의 표준 용어 대신, 그는 사령부 회의에서 '해육공군'이라고 말했다. 바다로 둘러싸인 조선해군의 역할을 강조하려 했던 의도였다. 그 단어 하나가 그를 요덕으로 끌고 왔다. 육군을 앞세운 김정일의 주체 군사전략에 감히 도전했다는 것이었다. 작전참모가 사령관 동지를 연발하고 있을 때 그 둘 사이에 최종배가 불쑥 끼어들었다.
"네놈들 오늘 동짓날이야?"
그리고는 막대기로 방철갑의 가슴을 툭툭 건드렸다.
"이놈이 사령관 동지면 나는 뭐야? 똥별이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작전참모의 뺨에 최종배의 주먹이 쏟아졌다. 퍽, 퍽, 퍽. 차마 피하지 못한 독고명철의 얼굴에선 코피가 터졌다. 방철갑의 눈이 이글거렸다. 이를 악다무는 소리가 났다. 주먹을 틀어쥐었다. 주변의 죄수들도 긴장했다.
"야, 반장! 다들 모엿! 싹 다 모엿!"
최종배의 고함이 운동장 끝까지 퍼졌다. 막사 문이 열리며 죄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단 2분 안에 운동장엔 수용자들이 분조별로 줄을 맞춰 섰다.
수용자들 앞에는 두 남자가 마주 서 있었다. 해군사령관 출신 방철갑과 그의 작전참모였다. 지금은 둘 다 같은 수인복을 입고 있었다.
최종배는 독기 어린 얼굴로 수용자들을 둘러보았다. 손엔 갈색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방철갑 쪽으로 다가가 그의 얼굴 양쪽 볼을 건드렸다. 먼저 왼쪽 볼을 지그시 눌렀다.
"여기 맞으면,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른쪽 볼은 가볍게 두드렸다.
"여긴 혁명화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맞을 때마다 넌 그렇게 외쳐야 해."
그리고 소리쳤다.
"시작!"
하지만 작전참모는 미동도 없었다. 눈빛의 흐트러짐이 조금도 없이 주먹만 떨고 있었다. 최종배는 막대기를 호되게 내리쳤다.
작전참모의 등이 휘는가 싶더니 맥없이 땅에 주저앉았다. 그걸 본 방철갑의 손이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시작!"
최종배의 외침이 다시 한번 운동장을 흔들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작전참모는 일어섰다. 그 눈빛에서 수용자의 굴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군인의 결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번엔 최종배의 구두가 그의 옆구리를 세차게 가격했다. 곧이어 두 명의 경비대 병사가 달려와 개머리판으로 그의 몸과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작전참모는 다시 쓰러졌다. 그 자리에 피가 고였다. 최종배는 운동장 앞 단상으로 올라서며 소리쳤다.
"오늘 저 새끼가 버티면 너희 전부 저녁 굶는다!"
수용자들의 어깨가 일제히 움찔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모든 탓을 덮어놓고 죄수에게 돌렸을 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달랐다. 이건 처벌이 아니라 공개처형 같았다. 그런 판단으로 수용자들의 얼굴은 공포도 분노도 아닌 돌처럼 굳은 무표정이었다.
최종배도 수용자들의 색다른 공기를 느꼈는지 코웃음 치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간 잰다. 10초 안에 안 움직이면 전체 기합!"
그래도 수용자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분단국인 북한은 의무 병역의 나라였다. 사회에서 직업은 달랐어도 북한 남자라면 모두가 군에서 제대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보위부의 3대 멸족 연고자들이기 전에 군인의 연고자들이었다. 동조하는 순간 진짜 죄인이 되고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운동장을 덮고 있던 공기는 공포가 아니라 수치심이었다. 한 명이 아니었다. 모두가 같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4초. 5초. 6초...."
최종배가 시계를 보며 분초를 세는 사이 방철갑은 주저앉은 작전참모를 일으켜 세웠다.
"명령이다. 나를 때려라."
그 목소리는 낮았지만, 군인의 기개가 물씬 풍겼다. 작전참모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했다.
"죄송합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방철갑의 뺨을 스쳤다. 찰싹. 방철갑의 외침은 단호했다.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작전참모는 반대편 뺨으로 손을 옮겼다. 그의 손에 묻은 피가 방철갑의 얼굴에 빨간 선을 그었다.
"혁명화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운동장 앞줄에서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최종배는 멈추지 않았다.
"약해! 약해! 때리는 놈도 세게! 맞는 놈도 더 크게!"
방철갑은 눈을 부릅떴다.
"이놈아! 조선 해군의 손이 그게 뭐냐! 피 터지게 쳐! 쪽팔리게 하지 마!"
"죄송합니다… 사령관 동…"
작전참모는 이를 악물고 다시 손을 들었다. 그리고, 뺨을 후려쳤다. 그때마다 방철갑은 폭풍처럼 외쳤다.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퍽!
"혁명화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퍽!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퍽!
한 사람은 주먹으로 울고, 다른 이는 외침으로 반항하는 소리가 운동장에 그득했다.
독신자세대 담당 최종배가 남자들 앞에서 보위원 중위의 위상을 높이고 있을 때 가족세대 담당 상위 지형철은 한 여자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봐."
"네"
사무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바닥에 길게 눕고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지형철이 옷 단추를 채우는 미세한 손놀림 소리가 들렸다. 윤진경은 눈을 감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애인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지형철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됐어. 이젠 눈 떠 봐."
천천히 눈을 뜬 윤진경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그는 더는 보위원이 아니었다. 군복 대신 칙칙한 수용복을 입고 서 있었다. 단정히 채워진 단추들, 그래서 바짝 깎고 왔던 머리였던가. 여전히 굳센 자세였다. 하지만 옷 하나가 모든 걸 바꿔놓고 있었다. 윤진경은 달라진 자기 남자의 모습에 두 손을 포개 입을 막았다. 지형철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러니 우린 이제 똑같지? 내 마음은 항상 너랑 이렇게… 같은 옷을 입고 있을 거야."
윤진경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손이 떨리는 것도 모른 채 그냥 서 있었다. 안기려고 달려간 것이 아니었다. 서둘러 그의 상의 단추를 하나씩 풀며 울먹였다.
"어울리지 않아요. 그리고… 더 슬퍼요. 내 남자까지 이런 옷을 입으면 안 돼요."
눈물이 목울대까지 차올랐지만, 그녀는 마음을 다져 흘리지 않았다. 그저 단추 하나, 또 하나를 풀며 그 슬픔을 누르고 있었다.
"싫어요. 제발… 빨리 갈아입어요. 이게 얼마나 아픈 옷인데...."
윤진경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지형철이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팔 안에서 윤진경의 작고 가녀린 어깨가 떨렸다. 사랑이자 절망의 떨림이었다. 오직 그들만이 나눌 수 있었던 잔인한 현실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