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2집 '선물'로 돌아온 CCM 가수 고정민CTS '대한민국 K-가스펠' 출신 실력파 뮤지션성악 베이스 ‥ 화려한 음색, 감정 전달 뛰어나
  •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고(故)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에서 인생은 잠시 왔다 가는 '나그네'로 비유된다. 삶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표현한 이 곡은 사실 우리 모두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인생(人生)의 본질을 건드린 '철학가(歌)'다.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인생이 세상을 떠도는 나그네의 삶과 같다면 그 여정의 목적은 무엇이고 종착지는 과연 어디일까? 우리는 지금도 하숙생을 듣고 부르며, 누구도 답하지 못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그룹 동물원 출신인 김창기 박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하숙생의 가사가 허무주의자의 독백, 혹은 패배자의 넋두리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실존주의자의 혹독한 자기반성으로 들린다고 말한다.

    그는 하숙생의 2절 가사를 인용하며 이 노래는 결국 부와 명예에 집착하지 말고, '무엇이 중헌디'를 잊지 말고,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능동적으로 원하는 삶을 만들고 책임지자는 이야기라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힘든 일이다. 누가 이끌어 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여기에 '정답을 알고 있다'고 번쩍 손을 드는 이가 있다. 김 박사의 까마득한 후배뻘인 가수다. 사실 그가 '정답'이라고 외친 적은 없다. 그러나 그의 단단한 눈빛과 자신감 있는 목소리는 분명히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 지난 주말 해방촌 카페 '꼮.남산(ggokk)'에서 만난 가수 고정민은 여러 면에서 새로웠다. 일단 170cm의 큰 키와 눈에 띄는 미모가 돋보였고, 자신의 빛나는 외모를 감추기라도 하듯,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점도 이채로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실제로 '미스코리아 강원'에 입선한 적이 있는 공인된 미인이었다. 

    2021년 CTS가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 K-가스펠'을 통해 데뷔한 고정민은 2023년과 올해 두 장의 앨범을 낸 CCM 가수다. 대중가요로까지 지평을 넓힌 올해는 지난달 발매한 두 번째 정규 앨범 '선물'을 들고 신인 가수의 자세로 활동 중이다. 

    자칫 움츠러들 만도 하건만 그는 또렷한 음성으로 '신앙고백(信仰告白)'을 했다. 중학생 때 서원기도(誓願祈禱)를 한 후부터 찬양사역자를 꿈꿨다는 그는 대중가요로 장르를 넓힌 이유도 '선한 영향력'을 키워,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삶의 목적도, 노래를 부르는 이유도 분명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단단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숱한 고난으로 연단(鍊鍛)을 받는 시기가 있었다. 고학으로 대학을 나온 뒤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던 때가 있었고, 지독한 시집살이로 매일 같이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적도 있었다. 한창 사업에 재미를 붙여나갈 때 암에 걸려 모든 걸 접어야 했고, 극심한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신'의 손길과 도움을 느꼈다는 고정민. 마치 '천로역정(天路歷程)'에서 주인공 '크리스천'이 절망의 늪에 빠지고 세속 현자의 유혹에 넘어질 때 '전도자'의 도움으로 이겨냈던 것처럼, 각종 시련을 겪을 때마다 시의적절하게 도움을 주는 이들이 나타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그는 이들의 등장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연단을 이겨내고 마침내 소망을 이룬 고정민은 두 번째 날개짓을 준비 중이다. 지난달 정규 2집 '선물'을 발매하고 애니메이션으로 뮤직비디오까지 만든 그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활동폭을 넓혀 '한계 없는 사랑'을 무한대로 전파할 계획이다.

    준비는 마쳤다. 성악으로 단련된 발성에 파퓰러한 색채를 가미해 테크닉은 물론, 호소력까지 한층 더 짙어졌다. 음색과 성량, 옥타브 등에서 선배 가수 소향을 연상케 한다. CTS '로드가스펠'을 통해 수년간 버스킹 공연을 하며 남다른 무대 경험과 담력도 차곡차곡 쌓았다.

    '길'을 잃은 이 시대에, 뚜렷한 목표와 목적 의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가수 고정민의 '인생역정'을 들어봤다.
  • #도전   

    Q. 원래부터 꿈이 가수였나요?

    -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자랐는데요. 저희 집이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어요. 그런데 언니와 저를 시작으로 저희 형제들이 몰래몰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믿게 됐는데요. 당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게 되면서, 정말 보잘 것 없고 아무 것도 아닌 저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은혜가 너무 커서…, 제가 하나님을 위해 뭘 해야 될까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Q. 일종의 '서원기도'를 하신 거 군요.

    - 맞아요.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는 걸 가장 좋아한다고 하셔서요. "그럼 제가 찬양 선교사가 될게요"라고 기도를 드렸죠.

    Q.
    그럼 신학대학교에 진학하셨나요?

    - 네, 그런 마음이 와 가지고…. 고등학교 졸업 후 신학대에 원서를 넣고 합격까지 했어요. 하지만 집안 분위기상, 갈 수가 없었죠. 그땐 용기가 없어서 그냥 포기한 상태로 앞으로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당시 저희 오빠가 군대에서 막 제대하는 시기였는데요. 참고로 저희 집이 남아선호 사상이 꽤 강한 편이었는데요. 어머니께서 '넌 그냥 오빠 따라 가서 밥이나 해 줘라'라고 하시면서 저를 오빠가 있는 곳으로 딸려 보냈어요. 

    Q. 세상에…, 거기가 어디였나요?

    - 오빠가 원주 소재 모 대학 한의과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어머니께서 오빠를 보필하라고 저를 보낸 거죠. 그런데 결국에는 오빠가 제 밥을 해 주면서 살게 됐어요. 그때까지 한 번도 밥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웃음) 이후 일단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는데요.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 찬양 선교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거듭하다가 일단 노래를 배우기로 마음 먹었어요. 

    Q. 레슨을 받은 건 가요?

    - 오빠가 있는 지역에서 성악 레슨을 받고, 그동안 제가 모아둔 돈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Q. 단박에 붙었군요.

    - 운이 좋았죠. 그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을 조교로 일하다가 춘천에 있는 다른 대학교로 편입을 하게 됐어요. 이후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1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어요.
  • Q. 아르바이트는 어떤 걸 하셨나요?

    - 안 해본 게 거의 없어요. 패스트푸드를 비롯해서 닭갈비집, 일식집 등에서 서빙을 했고, 모델하우스에서 일한 적도 있어요. 피아노 치는 아르바이트도 했었고…. 그렇게 살면서 정말 저의 목표는 딱 하나였어요. 성악과에 들어간 것도 그렇고, 열심히 살았던 것도 다 하나님을 위해 찬양을 부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죠. 하지만 졸업 후에도 좀처럼 풀리지 않았어요. 문화 사역 간사에 지원하기도 하고, 찬양 경연대회에 나가기도 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죠. 문을 두드리는 것마다 다 막히는 느낌이었어요. 혼자 계속 그런 생활을 하다가 몸에 탈이 나서 다시 정선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Q. '탈'이라면?

    - 혼자 생활하다 보니 위가 많이 안 좋아져서요. 그렇게 돼서 정선으로 가는 꼬마 기차를 탔는데, 정말 그 안에서 펑펑 울었어요. 저는 진짜 헌신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했는데, 왜 길을 안 열어주시는 건지…. 그때는 정말 실패한 사람 같더라고요. 세상에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인 것 같고…. 기차 안에서 '아, 나 이제 뭐 하고 돈을 벌지? 학자금은 어떻게 갚지?'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중학교 친구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대화를 하다가 제 처지를 하소연하니까, 그 친구가 정선 군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면서 마침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고, 저보고 지원해 보라는 거예요. 원서 접수가 오늘까지인데 일단 자기가 서류 접수는 할테니, 내일 나머지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죠. 그 타이밍이 정말 신기했어요. 

    Q.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군요.

    - 네,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 거죠. 그렇게 파트타임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어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삶을 반복했는데요. 하다 보니 너무 무료한 거예요. (웃음) 원래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고…. 안 되겠다 싶어서, 무작정 이력서를 들고 지역 여성회관을 찾아 갔어요. 일단 제 소개를 한 뒤 '여기 합창반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합창반을 한 번 개설해 달라'고 말했어요. 무슨 용기가 생겼던 건지…. (웃음) 신기하게도 그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와서 합창반을 개설하게 됐어요.

    Q. 갑자기 낯선 사람이 찾아 와서 합창반을 개설해 달라는 것도 뜬금 없지만, 이를 덜컥 받아들인 것도 참 재미있네요. 

    - 그것도 하나님 은혜인 것 같아요. 그래서 퇴근하면 여성회관에 가서 주기적으로 합창을 가르치는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가 자신감이 생겨,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찾아가 같은 요청을 드렸어요. 신기한 건 그 학교도 제 제안을 받아들여서, 그 학교에 없던 어린이 합창반이 생긴 겁니다. (웃음) 그 이후로 정선에서 쓰리잡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하던 일들이 계약 만료 등으로 전부 끊기면서 다시 일자리를 잃게 됐어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됐죠.
  • #시련   

    Q. 고향에서 천생연분을 만나셨군요. 

    - 교회 사모님께서 좋은 남자가 있으니 한 번 만나보라고 하셔서요. 만났는데…. 어머니께서 '좋아 보인다'면서 결혼을 적극 권유하셨어요. 이렇게 등을 떠밀려서…. (웃음) 물론 제가 좋아서 한 선택이죠.

    Q. 보통은 이쯤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알콩달콩 잘 살았습니다'란 이야기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잖아요?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겁니까?

    - 신접살림을 차린 곳이 동해시였는데요. 이곳에서도 뭔가 시도를 해보고 싶었지만 환경적으로 참 어렵더라고요. 그러던 중 신랑이 세 달 만에 포항시청으로 발령 나면서 갑자기 포항으로 내려오게 됐어요. 

    Q. 시집살이가 시작됐군요.

    - 네, 맞아요. 그런데 저의 경우는 좀 혹독했어요. 거의 1년 정도를 들어가서 살았는데, 시어머니께서 제가 마음에 안 드셨던지, 좀 서운한 말씀들을 많이 하셨어요. 서로 상성이 안 맞았다고나 할까요? 한 열 달 동안 매일 울었던 거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울고, 밤에 자면서 또 울고…. 그땐 제가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지 괜스레 서럽고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게다가 남편이 심각한 '마마보이'라…. (웃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어디 마음 둘 곳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Q. 분가는 안 했나요?

    - 아이를 낳으면서 포항시 모처로 분가했는데요. 신기하게도 그 이후부터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아졌어요. 시어머니도 새벽 기도를 하시는 크리스천이셨는데요. 어느날 저를 크게 나무라시고 난 이후 먼저 전화를 하셔서, 기도하는 중에 당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셨다며 저에게 사과를 하셨어요. 이후에도 시어머니가 먼저 다가오셔서 '어제 그렇게 얘기했던 게 미안했다'고 사과를 하시는 일들이 반복됐어요. 나중에는 어머니랑 저랑 끌어 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화해했어요. 서로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극적인 화해를 하게 됐죠. 그때부터 시어머니가 멀리 있는 저희 엄마보다 더 엄마 같고, 정말 친한 사이가 됐어요.
  • Q. 카페 사업은 어떻게 하신 건 가요?

    - 그렇게 포항에서 지내다가 영일대라는 해수욕장에서 열린 플리마켓에 참여하게 됐어요. 제가 취미로 보석 공예도 배웠는데요. 거기에 제가 디자인 한 것들을 펼쳐 놓으니 사람들이 너무 잘 사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하면 되겠다 싶어서 남동생과 함께 힘을 합쳐 주얼리 카페를 차렸어요. 장사가 너무 잘 돼서 돈을 신나게 막 벌었어요. 나중엔 포항 카페 거리에 2호점을 낼 정도로 성장했죠. 카페에 전념하다 보니 자연히 수요예배도 안 가고, 금요예배도 안 가고, 주일예배만 간신히 드리는 수준이 됐죠. 그렇게 살다가 딱 3년째 되던 해에 갑자기 너무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손님들이 오는 게 막 귀찮아졌어요. 다 돈으로 보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보기가 싫어졌어요. 너무 피곤하고 몸이 이상해서 검사를 받아 보니 제 몸에 탈이 난 거였어요.

    Q. 어떤 질병에 걸리신 건 가요?

    - 몸 어디에 암이 생긴 건데요. 그나마 초기여서 다행이었죠. 그러면서 하던 사업을 다 접었어요. 제가 워낙 낙천적인 사람이라서 금방 회복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회복이 너무 안 되는 거예요. 한 달, 두 달, 세 달 지나도 회복이 안 되니까…, 처음에는 낙천적인 마음으로 지내다가 나중에는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면서 계속 누워 있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인생 끝났구나' 하고 체념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죠. 

    Q. 그러다가 어떻게 회복하셨나요?

    - 저희 집이 20층인데, 그날도 멍하니 창문을 바라 보고 있었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들이 재빠르게 막 지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정말 하트 모양의 구름이 싹 지나갔어요. 그래서 속으로 '어? 하트네'라고 생각했는데, 더 큰 하트 구름 하나가 딱 지나가면서, 마음 가운데 '정민아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한다 힘내라' 그런 소리가 들렸어요. 그러면서 '근데 너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니? 네가 중학교 때 약속했던 거 지켜야지' 그러시는 거예요. 그때 무릎을 딱 꿇고 진짜 오열하면서 기도했어요. '제2의 인생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요'라고 다시 서원기도를 드렸죠.

    Q.
    그때가 언제였나요? 

    - 2019년 무렵이었던 거 같아요. '구름 사건'이 벌어진 게…. (웃음) 그 이후로 갑자기 회복이 빨라졌어요. 계속 누워만 있던 제가 어느새 일어나서 애 밥을 막 해 주고 있더라고요. 일어나지도 못 했던 제가 아이 밥을 하는 자체가 너무 감사했어요. 그날 식사 준비를 하면서 계란을 탁 터뜨렸는데 계란 모양이 하트가 됐고, 채소를 막 씻었는데 딱 보니까 하트 모양인 거예요. 또 계란국에 넣을 파를 송송송 썰었는데 딱 보니까 그것도 하트더라고요. 그때 마음이었냐하면 하나님이 저한테 '힘내라 내가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하고 응원한다'고 하시는 거 같았어요. 그제서야 기억이 났어요. 제가 한창 카페 사업을 할 때 아침마다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고 툴툴대면서 '하늘에 뭐 토끼 모양도 괜찮으니까, (제가 온전히 믿을 수 있도록) 뭐 아무거나 구름으로 하나 보여주시면 안 되냐'고 떼를 쓰듯 기도했었거든요. 3년 내내 출근하면서 아침마다 그런 철없는 기도를 했던 게 뒤늦게 생각났어요.
  • #응답 

    Q.
    그걸 잊고 있었던 거군요.
     
    - 그때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는데, 제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순간 하나님이 탁 보여주신 거예요. 

    Q. 그 이후에 가스펠 가수로 데뷔하신 건가요?

    - 2021년 CTS가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 K-가스펠'을 통해 데뷔하게 됐어요. 어떤 분이 계속 나가보라고 권유하셔서 나가게 됐는데요. (웃음) 그 대회를 통해 민호기 목사님 같은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됐고, 그분의 곡을 피처링을 하면서 '고정민'이라는 이름을 대중에 알리게 됐죠. 이후 민 목사님이 이끄는 찬미워십 팀에 들어갔고 간사 직분도 받으면서 3년 정도를 그분들과 함께 사역했어요. 

    Q. 이야기가 돌고 돌아 드디어 2집 앨범 이야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2023년 1집 CCM 앨범 '꽃 피우리'를 내셨고, 지난달 17일 2집 앨범 '선물'을 내신 거죠? 

    - 앨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CTS가 진행한 버스킹 공연에 참여했던 걸 말씀드릴게요. CTS가 '로드가스펠'이라고, 덕수궁 돌담길에서 버스킹 공연을 정기적으로 열었는데요. 제가 CTS 'K-가스펠' 출신이다 보니, 출연 섭외가 왔던 거죠. 그 공연을 3년째 나가게 됐는데요. 사실 하나님께서 다시 사명을 주셔서 시작은 했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던 시기였어요. 설 무대도 별로 없었고, 신인이다 보니 저를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몰랐어요. 혼자서 유튜브에 커버 영상도 올리고 나름 노력을 많이 했지만 돌아오는 건 거의 없었죠. 그러면서 점점 힘이 빠졌고, 나중엔 '하나님, 저 쓰시려면 쓰시고요. 그냥 말라면 마세요'라는 푸념까지 하게 됐어요. 지난해 12월 덕수궁 돌담길 버스킹을 마지막으로 '끝내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웃음)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 보자는 뜻으로 삼척에 있는 언니까지 불러 합동 공연을 펼쳤죠. 그때 이선일 대표님을 만난 거예요.

    Q. 그게 누군가요?

    - 부천에 있는 '볼베어파크'라고. 엄청 큰 테마파크를 운영하시는 분인데요. 운명처럼 그분을 만나서 앨범까지 내게 됐어요. 원래 첫째 날 공연을 마치고 CTS 이사님을 만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약속이 틀어져서 저와 언니의 시간이 벙 뜬 거예요. 서울 시내에 아는 사람도 없고 던킨도너츠에 들어 가서 그냥 멍 때리고 있었는데 이사님이 전화를 주셔서, 당신 친구분이 하프 공연 티켓이 있는데 같이 볼거냐고 하시더라고요. 딱히 계획이 없던 저와 언니는 대학로로 가서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죠. 카톡으로 받기로는 '이선일 박사님'이라고 씌어 있어서 머리가 좀 희끗희끗하신 분인 줄 알았어요. 만나 뵈니 예상보다 젊으셔서 놀랐어요. 
  • 여기까지 질의응답이 오갔을 때 옆자리에 있던 이선일 씨엠지코리아 대표가 "지금부터는 제가 설명드리겠다"며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이 대표는 수도권 최대 규모 실내 스포츠 테마파크인 '볼베어파크'를 운영하는 사업가다. 이 대표는 과거 서울음반에서 '김광석' '여행스케치' 등의 음반을 기획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사업가로 전향한 이후엔 '뽀로로 뮤지컬' '뽀로로 체험전' '토마스와 친구들 체험전' 등을 히트시키며 키즈엔터계의 마이더스로 불리는 인물이다.

    Q. 고정민 씨와 언니분에게 하프 공연을 보여 주신 분이 이선일 대표님이시죠?

    - 그렇습니다. 그날 친구한테 '지방에서 올라온 여성 두 분이 있는데 공연 좀 보여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을 받았어요. 그래서 티켓을 주러 대학로에 갔는데, 거기에서 고정민 씨 자매를 만난 거죠. 딱 보는 순간, 뭐랄까 수십 가지가 막 '지지직'하고,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에 나오는 거 있잖아요. 사람 뇌끼리 텔레파시도 통하고, 서로 연결돼 있는 거요. 정말 희한했어요. 뭔가 시너지가 날 것 같은데, 이대로 티켓만 주고 헤어지면 기회가 날아갈 것만 같았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제가 티켓을 쥐고만 있고, 정민 씨에게 주질 않았어요. (웃음) 그래서 옆에 있던 제 일행이 "뭐야?" 이러면서 제 손에 있던 티켓을 뺏어서 정민 씨에게 줬죠. 결국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혹시 저녁 드실래요?"라고 말을 건넸어요.

    Q. 그날 공연을 함께 보시고, 이튿날 정민 씨의 버스킹 공연도 보러 가신 거죠?

    - 사실 오래전부터 CCM 앨범을 제작하고 싶었어요. 주위에 수소문도 해보고 시간이 날 때마다 괜찮은 가수들을 물색해 왔는데 마땅한 가수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날도 제 후배에게 가수들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때마침 정민 씨를 만나게 된 겁니다. 하프 공연을 보고 식사를 마친 후에 정민 씨 자매 분을 제 차로 숙소까지 태워다 드렸는데요. 운전하는 동안 제 차 안에서는 계속 CCM이 흘러나왔죠. 그걸로 마음 문이 열렸는지, 정민 씨가 자기가 CCM 가수라고 소개하더군요. 제가 애타게 찾던 CCM 가수가 떡하니 나타나서 정말 놀랐죠. 집에 들어와서 '고정민'이라는 이름을 검색하고 본인이 유튜브에 올린 커버 영상들도 다 봤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걸었죠. 
  • #운명 

    이때 다시 고정민이 '이야기 바통'을 이어받았다. 

    - 처음엔 그냥 친절하신 분인 줄로만 알았죠. 밥 먹고 숙소에 들어와서 핸드폰을 보니 9시 반쯤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선일 박사님'께 전화를 드렸죠. 그랬더니 대뜸 "아 저기, 제가 노래를 들어봤거든요"라는 거예요. 이 한마디를 하시는데, 거기에서 딱 전율이 흘렀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동안 기도했던 것들이 있었거든요. '저는 아는 사람도 없고, 홍보나 마케팅 능력도 없어요. 그냥 노래만 할게요.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저랑 마음이 맞는 그런 사람 한 명만 좀 붙여주세요'라고 매일 같이 기도했어요. 그런데 왠지 이 분이 저를 도와주실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서 자신의 회사가 부천에 있다며 내일 오전에 올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저는 이유도 묻지 않고 "갈게요"라고 답했죠.

    Q. 뭔가 통했군요.

    - 전화를 끊고, 갑자기 막 흥분 상태가 되면서 언니랑 눈이 딱 마주쳤어요. 언니랑 아무 말을 안 했거든요. 그런데 언니도 씩 웃고 저도 씩 웃었어요. 왜냐하면 언니가 누구보다도 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모든 기도 제목을 언니랑 나눴고, 언니가 진짜 저를 위해서 기도 엄청 해 준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언니도 느낀 거예요. 무엇인가를. 그래서 "야야야야" 이러면서 막 난리가 난 거죠.

    Q. 부천에 가선 어떠셨나요?

    - 사실 이게 너무 웃기잖아요. 이분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불러주는 주소를 보니, '웅진플레이도시'더라고요. 음반, 이런 것과는 관련이 없어 보였죠. 그래도 일단 언니와 그곳으로 갔어요. '와 진짜 크다. 이런 사업을 하시는 분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를 왜 불렀지?'라는 의문이 점점 커져갔어죠. 회사 구경을 다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니 이 대표님이 "CCM 앨범을 제작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있었다"며 "그동안 가수를 못 찾고 있었는데, 이번에 느낌이 좀 온 것 같다"고 말했어요. 단, 제 라이브 공연을 보고 최종 결정을 하겠다며 당일 오후에 있었던 버스킹 공연장에 오셨고, 공연 직후 계약을 멪게 됐어요. 

    Q.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이머시파이 오픈 무대에 초청 가수로 참여하고, 광화문에 20여만 명이 모인 부활절 퍼레이드의 피날레를 장식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대표님의 '맨파워' 덕분이죠. 신인 가수로서 서기 힘든 무대에 연달에 오른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KBS1 일일드라마 '대운을 잡아라'의 OST, '보내야 해'를 제가 부르게 된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죠. 이 노래는 '써클차트'에서 191계단 급상승해 화제를 모았었는데요.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와 무대에서 노래를 들려드릴 계획입니다.

    Q. 지난달 발매한 2집 소개도 부탁드려요.

    - 우리가 이미 갖고 있었지만, 놓치고 살았던 선물 같은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선물'이라는 타이틀곡은 제가 개인적으로 많이 지쳐있던 시기에 만든 노래인데요, 돌아보니 거저 받은 선물이 너무 많더라구요, 그중에서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인 것을 깨닫고, 그 마음을 담아 곡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저의 힘든 순간도 결국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약재료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구요. 제가 버티고 느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 닿을수 있다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제 마음을 담은 작은 감사인사이기도 합니다. 이곡을 듣는 모든 분들도 힘든 하루 속에서 작은 선물을 꼭 발견하셨으면 좋겠어요

    Q.
    앞으로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요?

    - 교회 안에서만 찬양을 하면 저희들만의 잔치가 되잖아요? 하나님은 분명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갇혀서 부르는 게 정답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바람은,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숨을 고르게 해주는 그런, 조용한 힘을 가진 음악을 계속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제공 = 벨라엔터테인먼트
    장소 제공 = 해방촌 카페 '꼮.남산(ggo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