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연휴 직전 수갑 채워 이진숙 연행 '무리수'法 '체포적부심' 인용에, 국힘 "정치보복 체포극"야권 안팎서 "'대구시장' 넘어 '대선주자급' 격상"'국정자원 화재' 후 대통령 부부 '예능 출연'논란여권 대응 미숙 아쉬움, '일그러진 국정' 보여
  • ▲ JTBC 예능 프로그램 '(추석특집)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 화면.
    ▲ JTBC 예능 프로그램 '(추석특집)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 화면.
    이번 추석 연휴 밥상머리에서 제일 많이 오갔던 화제는 단연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체포 사건과 대통령 부부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었다.

    연휴 직전 자택에서 체포됐다가 50시간 만에 풀려난 이 전 위원장의 행보는 휴일 내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연휴 첫날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의 활약으로 촉발된 대통령 내외의 '예능 나들이' 역시 밥상머리에 앉은 가족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리한 수사를 강행한 경찰에 대한 반감과 이 전 위원장에 대한 동정론, 대통령의 예능 녹화 시기가 적절했느냐는 여론이 끓어오르면서 '한가위 이슈 대전'은 승패에 앞서 야당이 좀 더 점수를 얻었다는 관전평이 많은 듯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로 유명한 이 전 위원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수 여전사' 이미지를 굳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간 정부·여당의 방송 장악 시도에 혈혈단신으로 맞서온 이 전 위원장은 갑작스러운 경찰의 체포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통령 위에 개딸 권력이 있느냐"고 외치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면서, 야권의 강력한 차기 주자이자 '대안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법원이 체포적부심에서 이 전 위원장의 손을 들어주자, 야권에서는 "정권이 오히려 스타를 만들어줬다.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후보를 넘어 대선후보급이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 전 위원장의 경우가 정부·여당 입장에서 '혹 떼려다 도로 혹을 붙인 격'이라면, 대통령 부부의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녹화 소동은 대응 미숙으로 외려 일을 키운 사례다. 

    여권으로는 8.9%에 이르는 시청률에 자족할지 몰라도, 국가 재난 시기와 맞물려 '공감 능력'에 대한 의문 부호를 남긴 것은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전대미문의 국가 전산망 화재가 발생한 지 이틀 만에 대통령이 '예능 나들이'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은 '가짜 뉴스'가 아닌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원로인데도, 야당에 대한 저격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박지원 의원이 "대통령실에서 솔직하게 잘 대응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표하고 나섰을까.   

    결론적으로 이 두 가지 문제는 대통령과 여권의 이미지를 구긴 자충수(自充手)가 됐다. 

    다시 이진숙 전 위원장 문제로 돌아가 보자.

    사실, 이번 고발건은 어찌 보면 조금은 해괴하다 싶을 정도로 사법 행정의 과잉이 불러온 사건(?)이다.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가 예상되지도 않은 시기에 이 전 위원장이 했던 몇몇 유튜브 발언이 이 대통령의 당선을 반대하기 위한 '사전선거운동'이라는 논리로 이 전 위원장을 고발했다. 그리고 경찰은 이 전 위원장이 공무원의 정치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체포 영장 집행에 나섰다. 

    물론 체포 영장 집행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은 맞선다. 하지만 전체 맥락으로 보면 경찰의 설명이 곤궁하다. 

    당초 영등포경찰서는 9월 27일 출석해 조사를 받는 것으로 이 전 위원장과 합의했었다고 한다. 일정이 명확히 설정돼 있는데, 경찰은 9월 9일과 12일에 추가로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이 전 위원장은 이 대목에서 '6회 출석 불응' 프레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경찰은 사전에 낸 '불출석 사유서'에도 아랑곳없이 이 전 위원장에게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로 연행했다. 전개된 사건의 흐름을 놓고 볼 때, 이 전 위원장으로서는 "경찰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됐고, '대통령실과 민주당, 공권력의 합작품'"이라는 논리의 절규를 충분히 할 만하다.  

    예능 녹화의 경우, 말 그대로 '예능'으로 끝날 일이 썩 '아름답지 못한 정치'로 막을 내렸다. 

    여권으로서는, 대통령의 모든 행위가 정치라 하지만, 한가위 명절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예능을 통해 이미지를 좀 더 친근하게 보이는 수준으로 끝났으면 될 일이 꼬이고 말았다. 차제에 하락세에 놓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고 싶었을 테고, 이 정도는 집권당이 지닌 프리미엄 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K푸드를 세계 시청자들에게 알리고 수출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나왔다"고 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이 넷플릭스에서도 나름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기에 외국인들에게도 선한 영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겨져 있다. 밤샘 복구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전산망 장애 담당 행정안전부 공무원이 투신해 사망하는 사건까지 벌어진 일련의 일들에서, 우리는 국정의 일그러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사태는 한편으로 '견제 없는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좋은 예가 됐다. 권력을 감시하는 눈이 흐려지면 민주주의는 쇠퇴하고 붕괴될 수밖에 없다. '선출된 권력'이 독재로 흐르는 것은 한순간이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뒤집어지고, 그릇이 가득 차면 기울어지기 마련이다(物極則反 器滿則傾). 권력자가 겸손하거나 절제하지 않고 남용으로 흐를 때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는 건 숱한 역사를 통해 봐 왔던 사실이다.

    지난해 말 전국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도량발호(跳梁跋扈)'였다. '권력이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는 행동이 만연하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가 연말에 또다시 채택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