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동맹 이분법, 시대착오적이고 비현실적분열보다는 한마음으로 협상팀 뒷받침할 때美 확장억제 무너지면 韓의 모든 것이 흔들려韓, 우라늄 35% 러 의존, 원자력협정 개정해야韓日 정치·외교·경제·군사 분야 협력 강화 필요
  • ▲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자주와 동맹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비현실적 구분이다. 자주적 관점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인 평화와 통일은 동맹과 주변국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서성진 기자
    "외교 노선을 자주파와 동맹파로 갈라서 보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자주파-동맹파' 갈등의 한복판에서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장관 직에서 물러난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에서 되풀이되는 '자주파·동맹파'간 갈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윤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자주와 동맹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비현실적 구분이다. 자주적 관점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인 평화와 통일은 동맹과 주변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제시된 'E.N.D 이니셔티브'는 자주파와 동맹파 간 이견을 노출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한미 관세협상 교착이 겹치자 자주파 내부에서는 교착 책임을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에게 돌리며 압박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자주파 6인회'의 핵심 멤버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세미나에서 "지금 정부에 이른바 동맹파가 너무 많다"며 "직업 외교관들이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으면 되는 일이 없다. 이걸 시정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사실상 위 실장의 거취를 겨냥한 직설적 문제 제기로 해석된다.

    윤 이사장은 "한반도가 국제정치적 공백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북한마저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오랫동안 추구해 왔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이어져 온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그 와중에 한반도 상황도 유례없이 불안정한 최대의 난국에 놓여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국민은 분열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협상팀을 뒷받침해야 하며, 협상이 끝난 뒤에 평가하고 따지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 ▲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투자와 관세 협상은 다른 두 가지 주요 현안, 즉 동맹 안보 이슈와 산업 협력 이슈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단연 동맹 안보"라며 "북한의 위협이 지속적으로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 공약의 이행은 한국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서성진 기자
    다음은 윤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최근 북·중·러가 결속을 강화하면서 국제질서가 '신냉전적 블록화'로 흘러가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국제정세를 단순히 '신냉전적 블록화'라는 한마디로 규정하기에는 복잡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달 중국 베이징 전승절 기념행사에서 확인된 것처럼 북·중·러 간 유대는 강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한·미·일 협력 구도는 아직 견고하게 확정되지 못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가 냉전기처럼 민주주의나 자유라는 이념에 기반하지 않고, 철저히 경제적 실익을 추구하는 자국 우선주의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남은 중요한 외교 과제는 한·미·일 협력 구도를 어떻게 공고히 할 것인가에 있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도 직면한 과제라고 본다."

    -한국과 미국은 7월 말 관세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했지만, 미국이 제시한 3500억 달러 현금 투자 및 선불 조건으로 인해 협상이 교착돼 있다. 25%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현재, 한국이 반도체·자동차·조선업 등 핵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지켜내야 할 레드라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투자와 관세협상은 다른 두 가지 주요 현안, 즉 동맹 안보 이슈와 산업 협력 이슈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단연 동맹 안보다. 북한의 위협이 지속적으로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 공약의 이행은 한국에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이 축이 무너지면 다른 모든 것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은 한미동맹을 지속하고 강화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국정 목표인 미국 제조업 부활 프로젝트에 동참하려고 한다. 조선, 원자력, 방산, 반도체, 자동차 분야에서의 협력이 그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상업적 수익을 확보하는 동시에 안보적 효과도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현재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우리 측 대안을 미국에 전달했고, 답신을 기다리고 있다. 긍정적인 회신이 오고, 한미 간 합리적이고 상호이익이 되는 타협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한미 관세협상을 둘러싼 갈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직접적 원인은 지난 4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단행한 관세 부과다. 하지만 더 깊은 배경에는 미국 대외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세계에서 자국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리더십 역할을 내려놓고, 대신 단기적으로 정의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한 것이 근본 문제다. 관세 부과의 목적도 명확하다. 외국 기업들로 하여금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내에 직접 투자하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미국 제조업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복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안미경중'의 종언을 고했지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골자로 한 '동맹 현대화'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신중한 태도가 한미동맹 기류 악화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외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협상 원칙은 무엇이라고 보나.

    "동맹 현대화라는 의제에는 단순히 전략적 유연성뿐 아니라 주한미군 감축, 역할 변경, 전시작통제권 환수 등 중대한 문제가 함께 걸려 있다. 따라서 한국은 동맹국인 미국과의 협력에 충실하면서도 자국 안보를 신중하게 검토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대중국 억제에, 한국군은 북한 억제에 집중시키자는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 문제와 북한 문제는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다. 두 사안을 별개의 사안으로 떼어 볼 것이 아니라 포괄적 관점에서 큰 그림을 그리며 양국이 협력해야 한다. 역할 분담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은 막대한 대미 투자를 요구받으면서도 통화스와프 협상에서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의 통화스와프 요청에는 미온적이면서 아르헨티나 친(親)트럼프 정부에는 스와프 체결을 먼저 제안했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유럽 등 곳곳에서 극우 성향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다. 독일대안당(AfD)이 대표적 사례다. 아르헨티나 밀레이 정부도 그런 성격의 우파 정부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아르헨티나는 금융 위기라는 급박한 상황에 몰려 있다는 특수 사정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한국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은 극우 정권도 아니고 금융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을 설득하는 방식은 달라야 한다. 조선, 원자력, 방산 등 한국이 경쟁 우위를 갖고 있는 산업 분야에서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대신, 그 대가로 비자 문제나 통화스와프 체결 같은 현안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과 관련해
    ▲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과 관련해 "미국 내에는 한국의 핵개발 의도에 의심을 품는 인사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에, 경제적·상업적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서성진 기자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협상 과정을 잘 아는 일부 소식통은 한국 정부가 마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과장해 대중에 선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이 일본 수준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 사안은 상업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협정이 개정되지 않은 탓에 현재 한국은 원전 가동에 필요한 우라늄 원료의 약 35%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는 공급망 불안이라는 구조적 위험 요인을 안고 있는 셈이다. 협정이 개정되면 이런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또 협정 개정은 소형모듈원전(SMR) 가동에 필요한 새로운 타입의 연료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더불어 사용후핵연료 보관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른 현실을 고려하면 개정은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한국은 이러한 상업적 필요와 공급망 안정, 새로운 에너지 수요 대응 등을 근거로 협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미국 내에는 한국의 핵개발 의도에 의심을 품는 인사들이 여전히 많기에 경제적, 상업적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이 효과적이다."

    -경제적, 상업적인 목적의 원자력협정 개정을 안보 패키지로 분류한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요구대로 안보 패키지와 관세 패키지를 분리한 것은 협상 전략상 실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두 이슈를 연계해 협상하기 어려웠다. 각 부처 간 조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 현대차 기술 인력 체포 사건이 그 단적인 사례였다. 당시 이민 당국과 경제 부처가 서로 엇박자를 낸 것이 이를 보여준다.

    안보 문제와 통상 문제를 담당하는 부처가 애초에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방위비 분담이나 동맹 구조 같은 안보 사안은 국무부와 국방부가, 무역·투자 문제는 무역대표부(USTR)와 재무부가 각각 담당한다. 한국도 실무 차원에서는 이 구조에 맞춰 분리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안보와 관세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협상했더라면 한국 내부에서 정치적 파장이 컸을 것이다. '안보를 경제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제기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논란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 ▲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실무적으로는 사실상의 두 국가 관리에 나서되, 원칙적으로는 '하나의 민족, 잠재적 통일'이라는 프레임을 유지하는 방식이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서성진 기자
    -이처럼 한미 간 현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핵심 변수는 북한 문제다. 향후 미국과 북한 간 대화가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핵군축 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핵 문제는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은 비핵화 이야기가 테이블에 오르면 아예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렇다고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계속 고조되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미국 내 핵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한반도의 핵전쟁 가능성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전쟁 방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안킷 판다 더디플로맷 편집장, 지그프리드 헤커 전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소장, 밥 칼린 전 국무부 분석관 등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대화를 추구하는 데 개인적,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해도, 당사자인 한국 입장에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긴장 완화다. 미·북 대화를 통해 현재의 위기 상황을 완화하고 핵전쟁 가능성을 낮추면서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는 반드시 고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을 한미가 함께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한국 정부가 내놓은 E.N.D 구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한미의 기본 전략은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하면 교류와 관계 정상화로 보상해 주겠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로 E.N.D 구상이 등장했다고 본다. 물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우리가 먼저 인정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의 E.N.D 구상이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 순서로 추진돼야 한다며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른바 '두 국가론'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 헌법은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어 법적으로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국제법적 현실과 헌법적 규범이 충돌하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두 국가론을 인정하면 통일정책의 기본 전제와 부딪히게 된다. 통일 의지를 포기하고 분단을 영구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실주의적으로 보면 두 국가론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일정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측면은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두 국가론에는 현실적 장점이 있지만, 헌법적, 정치적 제약 때문에 공식화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실적 선택은 이중 전략일 수밖에 없다. 실무적으로는 사실상의 두 국가 관리에 나서되, 원칙적으로는 '하나의 민족, 잠재적 통일'이라는 프레임을 유지하는 방식이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본다."
  • ▲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특히 동맹인 미국이 안보 공약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여기에 한국의 국방력 강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며 "한국은 자신의 상황을 성실하고 끈질기게 설명하며 설득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감정적인 대응은 배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성진 기자
    -지금 한국 외교안보 라인이 '자주파'와 '동맹파'로 갈라져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노선 갈등이 단순한 내부 견해 차이를 넘어 실제 외교·안보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흔들 수 있다는 커지고 있다.

    "지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이어져 온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그 와중에 한반도 상황도 유례없이 불안정한 최대의 난국에 놓여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국민은 분열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협상팀을 뒷받침해야 하며, 협상이 끝난 뒤에 평가하고 따지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자주와 동맹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비현실적 구분이다. 자주적 관점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인 평화와 통일은 동맹과 주변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반도가 국제 정치적 공백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북한마저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오랫동안 추구해 왔다. 따라서 외교 노선을 자주파와 동맹파로 갈라서 보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약 4년간 트럼프 2기와 이재명 정부 임기가 겹치는 시기에 한국 외교는 북핵 문제, 미·중 전략 경쟁, 통상 갈등 등 중첩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대한 과제이자 동시에 가장 큰 기회는 무엇이라고 보나.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이 지향해야 할 전략적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동맹인 미국이 안보 공약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여기에 한국의 국방력 강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이러한 동맹 공약 유도를 위한 방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한미 간 제조업 분야 협력 심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MAGA 프로젝트'의 핵심인 제조업 부활에 한국이 조선, 원자력, 방산, 반도체 분야에서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비자 문제와 같은 장애 요인도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한국은 자신의 상황을 성실하고 끈질기게 설명하며 설득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감정적인 대응은 배제해야 한다. 동시에 외교적 시야를 한반도와 주변 4국에만 한정하지 않고 더 넓혀야 한다.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해 국제 질서 속에서 새로운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우선순위는 일본과 인도다. 일본과는 정치·외교뿐 아니라 경제·군사 영역까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인도와의 협력은 한국 외교를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해 나가는 데 발판이 될 것이다. 이어 유럽, 호주, 캐나다 등과의 연대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 ▲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1951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 대학원(SAI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캠퍼스 정치학과 조교수로 재직했고, 1990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대 외교학부 교수로 활동하며 한국 외교안보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이끌었다.

    현재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제32대)으로 취임해 2004년 1월 15일까지 북핵 문제, 한미동맹 재조정, 이라크 파병 등 주요 외교 현안을 주도했다. 이후에도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2010~2012)을 역임하며 학문적 활동을 이어갔고, 『외교의 시대: 한반도의 길을 묻다』, 『21세기 한국정치경제모델』, 『한국외교 2020 어디로 가야하나』 등 다수의 저술을 통해 한국 외교 전략과 국제정치 변화를 분석해 왔다.

    2023년 3월 23일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에 선임된 그는 한반도 안보와 동북아 국제정세를 주제로 학술·정책 연구를 이끌며, 학문과 정책을 잇는 대표적인 외교안보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