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객석 경계 허문 이머시브 공연, 충무로 대한극장 개조…250억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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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립노모어 서울' 공연.ⓒ미쓰잭슨
이머시브(관객참여형) 연극의 대표작 '슬립노모어(Sleep No More)'가 뉴욕과 상하이에 이어 서울 충무로에 상륙했다.'슬립노모어'는 2003년 영국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2011년 미국 뉴욕 첼시의 5층 건물에 '맥키트릭 호텔(McKittrick Hotel)'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관객과 만났으며, 같은 해 2011년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에서 '독창적인 연극적 경험 부문'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중국 상하이로 확장해 현재까지 오프런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작품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매혹적인 느와르 스타일로 재구성했다. 극 분위기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서스펜스 영화를 연상시킨다. 제목은 맥베스가 스코틀랜드의 던컨 왕을 살해한 후 불안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내뱉는 "더 이상 잠들지 못하리라! 맥베스는 잠을 죽여버렸다(Sleep no more! Macbeth does murder sleep)" 대사 중 일부다.펀치드렁크 창립자이자 연출가인 펠릭스 바렛은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세상이고, 관객을 그 중심에 뚝 떨어뜨려 놓는다. 관객은 살아 숨쉬는 세상 속에서 자유롭게 모험을 떠난다. 맥베스나 주변 인물을 따라갈 수 있고, 건물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주어진 환경을 따라 갈 수 있다. 옳고 그름이나 정답은 없다"고 강조했다.이머시브 콘텐츠 기획·제작사 미쓰잭슨은 지난해 7월 영국 제작사 펀치드렁크와 한국 독점 IP 계약을 체결했다. 미쓰잭슨은 전시, 공연, 영상, 게임 등 멀티 장르와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넘나드는 실감·몰입형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2016년부터 세계적인 소셜 다이닝 축제 '디네앙블랑'을 기획·주최해 왔다. -
- ▲ 박주영 미쓰잭슨의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중구 매키탄호텔에서 열린 '슬립노모어 서울' 미디어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미쓰잭슨
박주영 미쓰잭슨 대표는 "2013년 뉴욕에서 '슬립노모어'를 처음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꿈 같은 장르가 탄생해서 정말 반가웠다. 그 기쁨을 한국의 열정적인 관객과 나누고 싶다는 일념으로 10년 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슬립노모어'는 대사 없이 음악과 퍼포머의 연기와 몸짓·춤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무언극, '논버벌(non-verba)' 공연이다. 관객은 3시간여 동안 흰 가면을 쓴 채 건물 전체를 무대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와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따라다니며 이야기 속에 참여한다.맥신 도일 공동 연출 겸 안무가는 "'슬립노모어'의 아름다움 중 하나는 움직임과 안무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 없이 다양한 문화·국가에 닿을 수 있다.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18개의 드라마가 이 건물 전체에 걸쳐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서울 프로덕션은 2024년 66년 만에 문을 닫은 대한극장을 전용 공연장으로 개조했다. 기존 11개 상영관이 있던 극장은 약 250억 원을 투자해 1939년 스코틀랜드 배경의 '매키탄 호텔(McKithan Hotel)'로 탈바꿈했다. 이름은 히치콕 영화 '현기증'에 나온 '매키트릭 호텔'에 '대한극장'의 '한(han)'을 결합했다. 7층 규모의 공간에는 잘 꾸며진 100여 개 방으로 구성됐으며, 배우 23명은 각 공간에서 1시간 단위로 동일한 연기를 3번 반복한다.박주영 대표는 "관객이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매키탄 호텔이라는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 있도록 했다. 건축 설계부터 관객 동선, 미술, 조명, 음향, 가구, 소품, 먼지 한 톨까지 연출 의도가 담겨 있을 정도로 세세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대한극장의 헤리티지와 '슬립노모어'의 서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라고 말했다. -
- ▲ '슬립노모어 서울' 크리에이티브 팀.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펠릭스 바렛 연출, 데이비드 이스라엘 레이노소 의상디자이너, 사이먼 윌킨슨 조명 디자이너, 콜린 나이팅게일 프로젝트 어드바이저, 리비 보건 무대 디자이너, 맥신 도일 공동연출.ⓒ미쓰잭슨
공연은 서사 순서, 등장인물, 관람 방식 등이 정해져 있지 않고 관객의 선택과 이동에 따라 이야기가 완성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장면을 관람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옮겨 다닌다. 원하는 캐릭터를 따라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고, 빈 방에 놓인 소품을 들여다보며 숨겨진 단서를 찾아도 된다.박 대표는 관전 포인트에 대해 "관객이 그날 어떤 장면, 어떤 캐릭터를 마주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독특한 형태의 공연이다. 어느 한 캐릭터를 쫓아가기보다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 자신의 시점에 서사를 즐기면서 스토리텔러가 돼야 한다"며 "공간 자체도 스토리의 일부다. 공간 전체를 탐색하면서 단서를 찾아가는 것도 또 다른 재미"라고 귀뜸했다.이어 바렛 연출은 "'행운은 대담한 자의 편에 선다'는 말이 있다. 관객들이 더 많이 모험하길 바란다. 호기심을 갖고 탐험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퀀스를 찾을 수 있다. 한 장면을 보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 한산한 곳으로 가라. 다른 곳에서 비밀을 찾을 기회"라고 덧붙였다.핏물이 흥건한 세면대와 욕조, 배우들의 전라 노출 등 상징적이면서 파격적인 장면으로 인해 19세 이상만 관람할 수 있다. 뉴욕과 상하이 버전에 없는 새로운 장면도 등장하고, 배우가 관객 한 명을 선택해 은밀한 공간에서 일대일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박 대표는 "맥베스는 인간의 권력욕을 향한 원초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고전이다. 이런 테마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시각적인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관객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영감이 될 것"이라며 "관객이 단순히 콘텐츠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안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국내 제작진들의 창작 영역에서도 그만큼 새로운 시도들이 생겨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