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15% 관세' 합의 … 항공기·반도체 장비 등 상호무관세

유럽연합(EU)과 미국이 27일(현지시각) 관세협상 종료시한을 닷새 앞두고 EU산 상품에 15％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무역협정을 전격 타결했다.

양측은 항공기, 반도체 장비 등 일부 전략적 품목에 대해 상호무관세에 합의했다. EU는 관세율을 기존 30％에서 15％로 낮추는 '대가'로 미국에 대규모 에너지 구매와 추가 투자를 약속했다.

블룸버그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약 한 시간 회동한 뒤 '15％ 관세율'에 합의했다고 각각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출되는 EU산 자동차도 15％ 관세율이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EU산 자동차 제품에는 현재 기존 2.5％에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수입 자동차에 도입한 25％ 품목관세를 더해 총 27.5％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유럽의 대미(對美) 수출 주력 업종인 자동차업계 입장에서는 일단 '최악'은 면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와 모든 제품에 대한 관세를 15%로 일괄 적용하는 데 합의했다"며 "사실상 폐쇄돼 있던 유럽 국가들의 시장이 개방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협정은 무역을 넘어 모든 분야에서 달성된 가장 큰 협정이라고 생각한다"며 "(EU가) 많은 국가를 대표하기 때문이고,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세계 최대 두 경제체제간의 무역협정이 체결됐다"며 "이는 매우 중요한 대규모 협정으로,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는 대서양 양측 기업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유럽 시장은 4억5000만명의 인구로 구성된 만큼 좋은 협정이며 어려운 협상을 거쳐야 하는 중요한 협정이었다"고 부연했다.

다만 15％ 관세의 적용범위를 두고는 두 정상의 말이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 앞서 의약품은 어떤 합의에도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회동이 끝난 뒤에도 의약품에는 15％ 관세율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미국 정부는 현재 진행 중인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에 근거해 향후 의약품과 반도체에 품목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반면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15％ 관세율이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을 포함한 대부분 분야에 적용될 것"이라며 "이것은 분명한 상한선(ceiling)"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약품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대한 추가 질의에도 "EU와 관련해선 의약품 관세 15％에 합의했다"며 "향후 전세계 의약품에 관한 전반적인 미국 대통령의 (관세) 결정이 무엇이건 간에 그건 별개의 이야기(on a different sheet of paper)"라고 답했다.

미국이 철강, 알루미늄 품목에 적용 중인 50％ 관세는 계속 부과된다.

양 정상은 이날 '전략적 품목'에 대해서는 상호무관세에 합의했다. 상호무관세 조치는 EU가 미국 측에 요구해온 협상 조건 중 하나다.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모든 항공기 및 관련 부품과 특정 화학제품, 특정 복제약(generics), 반도체 장비, 특정 농산물 및 천연자원과 핵심 원자재가 (상호무관세) 적용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린 이 목록에 더 많은 품목이 추가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U는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특히 연간 2500억달러씩, 향후 3년간 총 7500억달러(약 1038조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한다는 방침이다.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2028년부터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완전히 퇴출하기로 한 EU 계획에 맞춰 추산된 액수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EU가 6000억달러(약 830조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으며 "막대한 규모"의 미국산 군사장비를 구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시장을 관세 없이 개방하기로 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면서 "모든 (EU 회원) 국가가 미국에 관세 없이 무역할 수 있도록 개방되며 대규모 군사장비 구매에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린 (유럽과) 잘 지낼 것이며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와의 관계도 매우 좋다"면서 "나토 회원국은 국방비 지출을 (GDP의) 2~3%에서 5%로 증가할 예정이다. 오늘 협상을 타결한 것은 정말 훌륭한 일"이라고 말했다.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추가 투자와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산 AI 반도체는 우리의 AI 기가팩토리에 동력을 제공할 것이며 미국은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내달 1일부터 EU에 3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EU 역시 협상이 불발되면 내달 초부터 미국산 주요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계획이었다.

EU는 미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으로, 미국은 지난해 EU와의 상품교역에서 중국 2954억달러 다음으로 많은 2356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협상시한 종료를 닷새 앞두고 이날 전격적으로 이뤄진 회동에서 '톱다운 합의'가 이뤄지면서 대서양 무역전쟁 전면전은 일단 피하게 됐다.

현재도 미국에 수출되는 EU산 제품에는 평균 4.8％의 기존 관세와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도입한 '기본관세' 10％가 부과된다는 점에서 EU는 일단 '현상 유지' 수준으로 선방했다고 자평했다.

다만 기본관세 10％도 '불법적'이라며 수용할 수 없다는 종전 EU 입장을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율 15％를 협상의 '하한선'으로 정하면서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로 합의에 집중할 대상을 묻는 말에 "3~4개국과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이 3~4개국에 포함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재명 정부가 8월1일 이전 타결을 목표로 두고 미국 측과 협상을 진행 중인 만큼 한국을 포함해 인도, 캐나다, 멕시코 등 교역 규모가 큰 국가들을 염두에 둔 발언일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은 상호관세 유예 종료를 하루 앞둔 31일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최종 담판 성격의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베센트 장관의 경우 28~29일 미-중 무역협상이 예정됐고, 트럼프 대통령도 스코틀랜드 순방 예정이라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총괄 콘트럴타워' 역할을 맡은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막판까지 협상 총력전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구윤철 부총리뿐만 아니라 조현 외교부 장관도 이번 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면담 일정을 조율 중이고, 산업통상자원부 김정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미국에서 고위급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통령실이 연일 범정부회의를 열어 미국 현지의 협상 진행 추이를 보고 받고 대응전략을 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