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채-달러서 유로 표시 자산으로 '머니무브''안전자산 수요' 몰리며 유로화, 4년 만에 최고 수준강유로에 수출업계 경고음…저물가 고착 우려도 상존
  • ▲ 유로화와 달러.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220717 ⓒ연합뉴스
    ▲ 유로화와 달러.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220717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정책과 그에 따른 달러 약세로 유로화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새로운 안전자산을 찾아 나선 글로벌 투자자들이 유로화에 주목하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22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유로화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 캐나다 달러, 한국 원화 등 주요 통화 대비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1일 기준 유로/달러 환율은 1.1803달러로, 연초보다 11% 이상 상승하며 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0년 전 유로존 부채 위기 당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및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유로화가 달러와 등가 수준까지 떨어졌던 3년 전과 비교해 괄목할 만한 변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주도의 다자주의 질서가 흔들리면서 미국 국채와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가 위협받는다는 투자자들의 판단이 반영된 흐름이다. 대신 유로화와 독일 국채 등 유로 표시 자산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5월 독일 베를린 헤르티스쿨에서 열린 '분절된 세계에서의 유럽의 역할' 기조연설에서 "개방된 시장과 다자간 규칙이 붕괴하고 있으며 시스템의 초석인 미국 달러의 지배적 역할조차 더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세계 각국의 정부, 중앙은행, 투자자들은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미국 국채 등 달러화 자산을 선호해 왔다. 덕분에 미국 정부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미국 소비자들은 높은 구매력을 누릴 수 있었다.

    반면 유로화는 국제 거래나 보유 통화 비중 면에서 달러보다 한참 뒤처져 있었지만, 최근 주요 교역상대국 통화 대비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하면서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다만 유로화 강세는 유럽연합(EU) 수출기업에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수출 중심의 독일 기업들에 미칠 영향이 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수출제품의 수입국 가격은 더 비싸지고,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유럽의 주요 수출기업들은 이미 강(强)유로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최근 유럽의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오른 소프트웨어업체 SAP는 유로 환율이 1센트 오를 때마다 매출이 3000만유로(약 490억원) 감소한다고 밝혔다.

    스포츠의류업체 아디다스도 강유로가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했고, 트럭 제조업체 다임러는 유로 환율의 출렁임이 실적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은행 크레디 아그리콜의 통화전략가 발렌틴 마리노프는 "미국 관세와 EU의 수입확대정책으로 유로존 수출은 이미 위축이 예상되고 이는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로화 강세로 장기적 저물가가 굳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유로화 강세는 수입품 가격을 낮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ECB는 내년 물가상승률을 평균 1.6%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중기 인플레이션 목표인 2%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통상 금리인하로 통화 약세가 유도되지만, 유로화는 ECB가 최근 1년간 총 8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한 상황에서도 강세를 보여 정책 대응 여지를 좁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루이스 데 긴도스 ECB 부총재는 "유로/달러 환율이 1.20달러를 넘어서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