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들 증언 일치, 김 전 사령관만 부인 '고수'특검, 물증 확보…김계환, 위증 성립 가능성박정훈 대령 "끝까지 침묵 땐 기소 불가피"법조계 "격노 인정 시, 설(說) 아닌 사실"
  • ▲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채상병 사건 수사 방해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7일 서울 서초구 순직해병 특검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채상병 사건 수사 방해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7일 서울 서초구 순직해병 특검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채 상병 사건의 수사 보고를 받고 격노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이 사실로 굳어질 기로에 놓여 있다.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17일 특검 재출석을 앞둔 가운데 대통령실 핵심 참모 세 명이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직접 봤다"고 진술하면서, 김 전 사령관 역시 '인정할 결심'을 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까지 김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그러나 특검이 당시 회의 기록과 관련 물증을 일부 확보했고, 참모들의 진술까지 일치하면서 그의 기존 주장은 위증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전 사령관까지 기존 입장을 뒤집고 VIP 격노설을 인정하면 해병대 수사에 대한 대통령의 외압은 더 이상 설(說)이 아닌 사실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대통령실 참모들의 일치된 진술…김계환, 입장 바꾸나

    순직해병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이명현)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김 전 사령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불러 조사에 나선다. 이는 지난 7일에 이은 두 번째 소환 조사로, 특검은 진술 신빙성과 모해위증 혐의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앞서 대통령실 핵심 참모였던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이충면 전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은 특검 조사에서 모두 윤 전 대통령이 채상병 사건의 초동 조사 보고를 받은 뒤 격노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VIP격노설의 시작점으로 지목되는 2023년 7월 31일 대통령실 회의에 참석한 인물들이다. 왕 전 비서관은 지난 15일 "윤 전 대통령이 화를 낸 시점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이 사단장까지 입건 대상이라고 발언한 때"라며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 ▲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관련 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2024.7.19. ⓒ 이종현 기자
    ▲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관련 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2024.7.19. ⓒ 이종현 기자
    하지만 정작 당시 해병대 지휘부에 있었던 김 전 사령관은 여전히 "VIP 격노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전 사령관은 2024년 2월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항명 혐의 군사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VIP 격노설을 부인했다. 군 검찰 조사 때에도 김 전 사령관은 "(박 대령이) 지어낸 이야기"라며 해당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사실일 가능성이 커지면서 김 사령관의 진술은 힘을 잃고 있다. 특검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부터 사건을 이첩받는 과정에서 김 전 사령관이 통화 중 VIP 격노설을 언급하는 녹음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증까지 드러난 이상, 김 전 사령관은 모해위증죄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의 'VIP 격노설 부인'은 곧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가 대통령의 외압이 아닌 정당한 판단이었고, 이를 거부한 박 대령의 행동은 항명에 해당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박 대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진술이었다. 비록 박 대령은 특검의 항소 취하로 무죄가 확정됐지만,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불리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허위 진술을 했다면 모해위증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본다. 형법 제152조는 '피고인을 해할 목적으로 위증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전 사령관이 박 대령의 항명 혐의 재판에서 VIP 격노설을 부인한 진술이 박 대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는지가 모해위증 성립의 핵심 쟁점이다. 이날 특검은 공수처로부터 이첩받은 김 전 사령관의 모해위증 혐의도 조사할 예정이다.

    김 전 사령관이 받고 있는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박 대령이 특정한 8명의 혐의자를 2명으로 축소하는 데 관여한 혐의 ▲경찰 이첩 중단 지시 및 문서 회수 개입 혐의 ▲박 대령에게 "VIP(윤 전 대통령)가 격노하며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뒤 이렇게 됐다"며 VIP 격노설을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다.
  • ▲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국방부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2024.10.24. ⓒ이종현 기자
    ▲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국방부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2024.10.24. ⓒ이종현 기자
    ◆ 박정훈 대령 "김계환, 끝까지 침묵하면 법적 책임"

    박 대령 측은 지난 16일 특검에 출석해 약 4시간 동안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조사 후 김 전 사령관을 향해 "다른 사람들이 모두 VIP 격노설을 진술하고 있는데, 끝까지 진술을 회피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법적 책임을 경고했다.

    박 대령 측 김정민 변호사는 "김 전 사령관이 사태를 악화시킨 데 책임이 크다"며 "특검이 당연히 기소를 염두에 둘 것이고, 신병 처리를 가장 먼저 할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령은 항명 수사 과정에서 김 전 사령관에게 "윤 전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보다 더 격노한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VIP 격노설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VIP 격노설은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7월 31일 오전 11시 대통령실 회의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는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한 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해 이첩 보류 지시 등 수사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이 전 장관은 같은 날 오전 11시 54분 대통령실 명의의 전화(02-800-7070)를 받은 직후 김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하고 언론 브리핑을 취소한 바 있다.

    박 대령은 특검에 출석해 "조사에 성실히 임했고,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향후에도 특검이 부르면 성실하게 조사받겠다"고 말했다.
  • ▲ 정민영 순직해병 특별검사보가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특검 사무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혜영 기자
    ▲ 정민영 순직해병 특별검사보가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특검 사무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혜영 기자
    ◆ 위증 혐의 부담…"김계환까지 인정 시 격노설, 사실될 것"

    김 전 사령관은 앞서 VIP 격노설을 부인해왔지만, 모해위증 혐의로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기존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김 전 사령관까지 격노 사실을 인정하면 윤 전 대통령의 수사 개입 의혹은 수사로 입증된 '사실'로 굳어지게 될 것"이라며 이번 소환 조사가 수사의 중대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사령관의 진술이 바뀔 경우 대통령실 지시나 외압 여부에 대한 특검의 수사는 윤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국면으로 확대될 수 있다. 

    동시에 그간 정치적 공방으로 치부됐던 VIP 격노설은 실체적 진실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검은 이번 조사를 통해 김 전 사령관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 가능성이 높다. 진술 번복 여부에 따라 기소 여부와 수사의 향배가 결정될 전망이다.